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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국 변호사 인터뷰


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984년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했습니다. 사법시험을 합격한 지는 이미 30년이 넘었고, 변호사 생활도 벌써 30년 가까이했네요(웃음). 그래도 제가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해 보았으니 후배변호사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1994년 연수원 수료 후 재조 아닌 재야를 택하신 특별한계기가 있으신가요?

 사법시험에 300명 합격하고, 200명 정도가 임관이 되던 시절입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연수원 시절을 조금 편하게 지냈어요. 제가 수험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합격하니 너무 즐겁더라고요. 치열하게 경쟁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자연스럽게 재야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Q. 변호사가 되신 후에 어떤 사건을 많이 하셨나요?

 제가 처음 들어간 사무실에서 공제조합사건을 많이 하고 있어서 초반에는 공제조합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건설공제조합이나 전문건설공제조합을 비롯하여 많은 공제조합들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민법이나 기본3법에 나오는 법리가 아닌, 각각의 특별법이나 고유의 법리들이 있었거든요. 하자보증이나, 이행보증, 선급금 이행보증 같은 것들을 새롭게 공부하고 관련 사건들을 처리했습니다. 처음에는 개념도 모르고 구조도 어려웠습니다. 선급금인지 선금급인지도 헷갈렸으니까요(웃음).

Q. 소속변호사로 계시다가 자연스럽게 파트너 변호사로 승급하신 것인가요?

 처음 들어간 법무법인에서 2년 정도 소속변호사로 일할 때였는데, 법인에 들어온 큰 조세 관련 행정사건을 제가 단독으로 수행해서 승소했어요. 당시 소가로 15억이 넘는 금액이었으니 제법 큰 사건이었죠. 잘 아시다시피 조세사건은 미리 세금을 내고, 승소해서 부과처분이 취소되면 이자를 포함해서 돈을 돌려받습니다. 의뢰인이 크게 기뻐하면서 성공보수를 꽤 많이 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월급제로 일하는 소속변호사다 보니, 법인에서 저에게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했나 봐요. 법인에서 저에게 바로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승급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제사건들이 나름 고유의 법리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에 전문성이 쌓였습니다. 열심히 업무를 하다 보니 대법원 승소 판결도 이끌어내고 처음 대법원 법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고객인 조합들도 굉장히 고마워하고, 선순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자문보다는 소송을 위주로, 주변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돕는 사건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Q. 처음 법조인이 되셨을 때 어떤 생각과 마음이셨나요?

 제가 수험 기간이 제법 길었습니다. 80학번인데 사법시험을 세 번째 1차 시험에서 결국 최종 합격을 했습니다. 돌이 되기 전 화재로 오른팔을 잃고,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어려운 사법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주변에서 저를 아끼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에 대해서 “김선국이가 밥은 먹고 살겠다”라는 위안과 위로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는 ‘이제 나만 보지 말고, 남들도 좀 돌아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Q. 28년 전의 생각에 변화가 있으신가요?

 그때랑 생각에는 큰 차이는 없습니다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변화는 있겠지요. 그래도 꾸준히 상황에 맞추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여도 상대적인 것이지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웃음).

Q. 과거와 비교할 때, 요즘 서초동은 어떻게 달라진 것 같으세요?

 사실 예전에는 복잡한 사건들도 물론 많았지만, 정말 단순한 사건들도 꽤 많았어요. 소장을 내기만 해도 쉽게 이기는 사건들도 어렵지 않게 제법 들어왔어요. 제가 개업한 초창기에도 사람들이 사건을 들고 와서 “변호사님, 이것 좀 해 주세요”라고 하면, 비용을 좀 저렴하게 받고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변호사 업무를 하는 보람이 있었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변호사 업계가 많이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어떠신가요?

 처음에 조사위원을 하면서는 변호사가 변호사를 징계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같은 변호사끼리 징계를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었어요. 그런데 조사위원회 활동을 몇 년 하다 보니까, 소수이지만 정말 징계가 필요한 변호사들이 있더라고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변호사들 전체가 자꾸 욕을 먹는구나’, ‘우리가 자체적으로 자정을 하지 않으면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변호사에 대한 신뢰는 한없이 떨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사위원회 활동과 징계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Q. 상근조정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대법관 표창도 받으셨습니다.

 매주 월요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열심히 해서 대법관 표창을 받긴 했는데, 좀 더 조정률이 높았다면 대법원장 표창을 받았겠지요(웃음). 조정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만 상근조정위원으로 조정을 하면서 제3의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임대차사건의 조정을 많이 하고 있는데, 임대인, 임차인 각각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해서 양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조정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사업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정안을 제안하면서도 감정을 잘 다독거리는 것이 나름의 조정 노하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서울지방변호사회 축구단 회장을 10년 넘게 맡아 이끄시고, 최근에는 세계변호사월드컵 사상 첫 우승을 이끄신 열열한 축구광이십니다.

 주 2회 축구를 합니다. 축구를 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업무 스트레스도 모두 날아갑니다.

Q. 변호사가 아닌 인간 김선국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성실하지 않지만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Q.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머니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자식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해서 아들딸들을 전부 출가시키셨지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는 지금도 항상 자식들이 잘 되기를 소망하고 계시는데, 이런 소망과 기도가 저에게 미쳐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Q. 변호사님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자.

Q. 변호사님이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소소하지만 축구 경기를 하다가 골을 넣었을 때 행복을 느끼지요. 특히, 제1회 대한변호사협회장배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고 MVP가 되었던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남지요. 그다음으로 행복한 순간은 ‘아들, 딸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는데, 아이들이 돈을 낼 때’입니다(웃음).

Q. 자녀분들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을 권하시나요?

 ‘아빠가 변호사이고 나름의 노하우도 있으니까 변호사 한번 해 보지 않겠냐’고 아들에게 권한 적이 있습니다. 아들은 적성에 안 맞는다고 거절하고 회계사가 되었습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저연차 김선국 변호사를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인가요?

 앞으로 변호사 시장이 안 좋아진다. 2020년쯤 되면 사건이 없어서 목말라질 수도 있으니,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귀어라.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2년의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한 해에 1,800명씩 신규변호사가 배출되니 경쟁이 정말 치열합니다. 그래도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나 실력적으로나 한 번에 확 늘지는 않겠지만 고객에게 감동을 주면 그 고객은 10년이 지나서 찾아오더라고요. 나한테 온 사건을 열심히 하되, 너무 조바심은 안 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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