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법정 풍경의 연장선상이자, 또 다른 법정으로 비유할 수 있는 현장 감정기일에 관한 경험입니다.

 저는 올해 3년 차 변호사로 어느덧 법정에서의 변론기일에 참석하는 것은 나름 익숙해졌습니다. 처음 참석할 때는 시나리오와 대본까지 준비해 갔던 제가, 이제는 프리스타일로 구술 변론을 하고(물론 고용변호사로서 재량권의 한계는 있습니다) 특별히 부담되거나 긴장되지 않는 ‘외출’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러다 지난 봄, 의뢰인 회사를 대리하는 사건 중 두 개의 사건에 관하여 공교롭게도 가까운 간격으로 각 현장 감정기일이 지정되었고, 제가 대리인으로서 해당 기일에 참석하기로 하였습니다. 현장 감정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전문영역에서 감정 결과가 발휘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하니 부담이 되었지만, 법정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일하러 나가면서 따뜻한 봄날에 창밖으로 꽃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하게 되었습니다.

 첫 현장 감정사건은 완공된 건물에서의 시공 하자를 감정하는 것이었고, 자동차를 몰고 조금 일찍 현장에 도착하여 관계자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해당 건물에 입주해 있던 상대방 회사에서 피고 대리인인 저는 빈 회의실로, 뒤이어 도착한 감정인은 임원진 방으로 따로 안내하였고, 그곳에서 상대방 임원이 감정인에게 감정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고 불리한 내용에 관하여 항의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혹시 그로 인하여 이번 감정 진행 및 결과가 공정하지 못할까 우려했지만, 다행히 감정인은 노련하게 상대방의 항의에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고, 이유 없는 항의에는 잘 방어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피고측도 도착하였음을 알리자 위 대화는 금방 중단되었고, 양측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대회의실로 이동해 그곳에서 감정 방향을 회의한 후, 문제가 된 공사 현장으로 이동하여 감정인이 사진을 촬영하고, 몇 가지 규격 및 소요 시간 등을 측정한 뒤 감정기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참석하였던 현장 감정은, 건축물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 및 진동으로 인하여 인근 목장의 가축 피해가 발생하였는지를 감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해당 감정을 위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인 소음 및 진동 기술사님과 수의학 박사님이 감정인으로 참석하였고, 먼저 목장에서 가축 피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뒤 건축물 현장으로 이동하여 간단한 공사 현황 및 주변 환경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기술사님께서 감정 중 헬기가 날아다니는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소음 환경으로 체크하시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 수의학 박사님께서 목장을 둘러본 뒤 목장주에게 가축 피해에 관한 추가 자료를 요청하였고, 그렇게 또 다른 사건의 현장 감정은 이전 감정과 달리 나름 평화롭게 진행되며 무사히 끝났습니다.

 이후 도착한 각 감정서는 비교적 객관적인 자료 및 감정인의 중립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방 당사자의 주장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였던 제 당초 우려와 달리, 베테랑 감정인들은 변론에서의 재판부와 같이 양측 당사자의 공방 가운데에서 늘 공정성을 염두에 두며 중립적인 감정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기준으로도 현장 감정을 포함하여 다른 사건에서의 감정기일이 곧 예정되어 있습니다. 문제가 된 해당 현장에서 생생하게 사건을 파악하고 대응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현장 감정에 저도 점점 익숙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단, 법정에서의 증인신문기일과 같이 당사자가 준비하는 정도에 따라 사건의 결과를 크게 좌우할 수 있어 부담이 큰 현장 감정기일은 제외해야 할 것 같네요.

박지선 변호사 ●법무법인 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