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 본부장님에 대한 간단한소개를 부탁드린다.

 1992년 통상 분야에서 공직을 시작해서 약 30년 동안 국제 통상 업무를 했다. 주요 국가와 양자 간 협상을 비롯해서, 15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FTA인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몇십 개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 및 다양한 국제 통상 이슈를 다루면서 평생을 보냈다(웃음). 공직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통상 분야의 수장인 통상교섭본부장(Minister for Trade)을 2019년부터 2021년 중반까지 약 2년 반 역임했다. 그 기간 중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하여 최종 결선 라운드까지 진출했었다.

Q. 한ㆍ미 FTA 개정 협상 수석대표를 비롯해 한ㆍ싱가포르, 한ㆍ아세안 FTA, 이번 RCEP 협정 타결까지 굵직한 협상을 직접 겪으셨다. 협상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본 협상 자체보다 사전 준비 과정이다. 사전에 협상의 대상이 되는 내용과 관련 이슈에 관해서 철저히 분석한다. 관련 국내 산업과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산업과 이해관계자, 그 외 국제 산업 동향을 철저히 분석한다. 산업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분석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상대국의 제도나 법규, 국제규범의 현황과 동향도 분석 대상이다. 철저한 분석, 사전 준비 과정이 본 협상보다 더 많은 시간과 중요성을 차지한다. 기계적인 계획에 짜 맞춘 준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협상은 살아 숨 쉬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모두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한다. 협상은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일주일 전부터는 사고 구조를 영어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어는 기어를 변속하듯 스위치처럼 변환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주일 전부터는 천천히 머릿속 사고의 구조 자체를 영어식 사고로 바꿔야 한다.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영어를 사용하고, 혼자 생각할 때도 영어로 생각한다. 내 나라 말이 아니다 보니 영어로 얘기하면 에너지를 더 쓰게 되고, 훨씬 피곤하다. 온종일 시나리오 없이 즉석에서 대응하고 반박해야 할 때 언어가 따라오는 속도가 느려지면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은 내가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외교관으로 일할 때 함께 살아서 영어에 익숙하다. 그래서 해외 출장이 잡히면 일주일 전쯤부터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한다. 미리 감을 익히기 위해서 내가 영어를 쓰자고 하면, 아이들은 ‘엄마 또 출장 가?’라고 물어본다. 영어에 왕도는 없는 것 같다. 공직에서 떠난 지금도 매일 영어 공부를 한다. 특히 영어로 된 외국 신문 5가지를 읽는다. 사설과 칼럼은 반드시 읽는다.

Q. 협상 준비 기간은 보통 어느 정도 되는가.

 한ㆍ미 FTA 같은 협상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중요성도 있지만, 국회와 국내 언론의 관심도 크다. 국회 대응과 공보 업무도 준비에 포함된다. 협상에 따라 준비 기간이 다르지만 보통 수개월 이상 걸린다.

Q. 협상 단계는 통상 어떻게 나눠지는가.

 크게 나누면 사전 단계, 협상 단계, 이행 및 국회 비준 단계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사전 단계에서는 정부 간 주요 이슈에 대해서 물밑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정부 부처 내부의 의견과 관련 산업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다. 이후 협상 단계가 시작되는데 정말 짧으면 6개월 만에 끝나기도 하지만, 길게 가는 협상은 몇 년도 걸린다. 타결 근처까지 간 것 같다가 원점보다도 뒤로 후퇴하기도 한다.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같은 협상은 16개국이 시작했다가 인도가 빠지고 15개국이 협상 타결하는 데 7년이 걸렸다. 타결 이후는 국민께 결과를 알리고, 국회 비준절차를 진행하며 이해관계자들에게 협상의 성과를 공유해서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Q. 7년은 정말 길다. 마감 기한을 정해두고 진행하지 않는가.

 마감 기한을 정하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감 기한을 정해두고 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웃음).

Q. 산업통상자원부 70년 역사 ‘제1호 여성 차관’이시고, 대외적으로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에 오르셨다. 여성으로서 리더의 지위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책임감과 부담감. 내가 후배들에게 길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잘하면 제2, 제3의 후배들이 생길 수 있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조그만 실수라도 하거나 내가 잘하지 못하면 오히려 자라나는 후배들이 뻗어나갈 수 있는 길에 누가 될까봐 부담감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소수이기 때문에 잘하면 잘하는 만큼, 못하면 못하는 만큼 그대로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 관련 국감을 하면 산업통상자원부 간부, 관련 공기업들 기관장들이 한 50명 참석했는데, 이 중에 저 혼자 여성이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동물원의 원숭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Q. 부담감을 잘 이겨내신 것 같다. 비결이 있으신가.

 특별한 비결은 없다. 마이크를 잡고 우리나라 팻말이 올라가면 그 순간부터는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충 준비할 수가 없다.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으로 보여주고 평가받는 것이 저의 생존전략이었다. 수석대표가 이야기하면 10여 개 관계부처 공무원들로 구성된 대표단 2 ~ 30명이 따라와서 지켜본다. 국제 통상 업무는 30분짜리 행사에 30분짜리 스피치를 준비해서 읽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시나리오나 각본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평가받는 자리다. 우리 수석대표가 상대국 수석대표에게 좀 밀린다 싶으면 대표단이 바로 안다.

Q. WTO 사무총장 후보 최종라운드 최후 2인에 오르셨다. 위대한 도전이라는 평가다. 아쉽지는 않으셨는가.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선거 운동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164개 회원국 중 아프리카 회원국이 44개다. 아프리카 후보는 약 25% 표를 확보하고 시작하는 셈이다. 후보 중 장관을 10년째 하는 쟁쟁한 사람들도 상당했다. 우리의 경우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도 생각이 다 다르다. 무소속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은 한 세대 안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유일한 경우다. 개도국, 선진국 경험을 전부 보유하고 있고, 어느 나라를 만나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우리만의 장점이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우리가 교역을 통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스토리로 하나하나 직접 만나 설득했다. 뚜벅뚜벅 걸어 나가면서 한 표 한 표 얻었다. 선거 과정 중 제네바에서 외신기자로부터 “언더독이었던 당신의 지지율이 점차 올라오고 있다. 밑바닥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뭉클하고 고무적이었다. 우리 스토리에 전 세계가 공감대를 이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힘으로 결선까지 갔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더 큰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에는 제 경험을 밑거름과 발판으로 삼아 국제기구 수장을 맡을 사람이 충분히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Q. 한국은 통상규모에 비해 국제적인 역할이 적다고 하셨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WTO 회원국은 164개국이고, 사무국 직원이 640명이다. 무역 규모에 따라 분담금을 부담하는데, 한국은 무역 규모로는 8위다. 2020년 기준으로 약 74억 원의 분담금을 내서 분담률은 2.9%인데, 직원은 4명으로 0.6%에 불과하다. 비슷한 분담금을 내는 프랑스는 사무국 직원이 100명이 넘는다.

 국제기구에서는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전후 질서를 논의하던 국가들의 힘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무역규모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G7, G10 회의에 초청받았고,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BTS로 문화적인 힘도 보여주었다. 우리는 신흥 강국이 되었지만,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에 있어서는 아직 괴리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몫을 찾아야 한다.

 이제 통상이 국제 패권을 다투는 주요 수단으로 격상됐다. 젊은 후배들이 국제무대에 진출해서 새로운 분야의 국제 규범을 주도해 만들어 나가면서 전 세계 룰이 파편화, 분절화되지 않고 가급적 수렴되게 역할을 하는 ‘룰 메이커’로 한국이 등장해야 할 시기다.

Q.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로스쿨에서 JD를 하시고, 미국(뉴욕) 변호사 자격을 소지하고 계시다. 본부장님께 법률가란 어떤 의미인가.

 법률가는 어떤 사실관계하에서도 논리를 구성해서 해당 사실관계가 관련 법리에 합치되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지 등에 관하여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이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법률가는 주어진 현실을 바탕으로 사안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 법에 합치하는 방향의 대안을 제시하는 준법지원업무를 할 수 있고, 정부와 입법부를 포함해서 현재 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을 제안할 수 있다.

Q. 선행 인터뷰에서 일과 가정의 균형에 관해 커리어 시기별로 나누어 설명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초기 몰입은 필수적이다. 커리어 초기, 특히 30대 시절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아이가 어려서 그런지 병원에도 많이 간다. 문제가 터지면 그냥 비가 내리는 게 아니고 폭우가 내린다(웃음). 가장 바쁜 시기다. 이때는 균형을 생각할 것이 아니고 최대한 몰입해서 어떻게든 버티면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초기 몰입이 있어야 이후 조금 소홀해도 주변에서 ‘저 사람은 원래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뭔가 사정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균형을 생각하기보다 견디고 버텨야 한다. 균형은 그 이후에 찾는 것이다.

Q. 주말이나 쉬실 때는 무엇을 하시는가.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의 밀린 글들을 읽고, 주변에 공유한다.

Q. 마지막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 변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법률가는 주어진 현실을 바탕으로 사안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귀중하고 유용한 자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 변호사님들께서 어느 자리에서 계시든 소중한 자산을 바탕으로 좋은 역할들을 하시길 바란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