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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와 법원 개혁

 정의 실현에 목말라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걸까요. 다시 법정 드라마 전성시대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선두 주자입니다. 자폐가 있는 신입변호사의 성장기로, 어찌 보면 단순한 구조인데 빠져들게 되더군요. 이 외에도 변호사나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들이 봇물을 이룹니다.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정의 구현’. 법정 드라마는 이 도식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꾸준하게 인기인 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현실에서 정의에 다다르는 과정은 지난합니다. 드라마처럼 간단명료하지 않죠. 특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중요 재판은 뚜렷하게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이 대표적입니다.

 2019년 1월 법조팀을 떠났다가 최근 돌아왔는데, 3년여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은 걸 보고 의아했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요. 임 전 차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과 함께 받고 있는 다른 재판은 본궤도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이 있었는지, 실체적 진실 확인은 당분간 요원해 보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5년 넘게 피고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재판에 뒤이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의 기일이 내년 1월까지 잡혀 있더군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재판 역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판 장기화는 중요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21 사법연감’을 보면 형사사건 1심과 항소심(고법 기준) 기간 모두 길어지고 있습니다.

 1심 합의부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2018년 4.9개월, 2019년 5.3개월, 2020년 5.9개월로 늘었습니다. 2020년 1심 단독 재판부 사건 중 2년을 초과한 경우는 2,108건에 달했습니다. 고법 항소심의 경우에도 2016년 4.1개월이던 평균 처리 기간은 2020년 5.3개월을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정의 실현이 지연되는 데 따른 피해,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해자를 엄벌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다만, 하염없이 결과를 기다릴 피해자들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인 입장에선 헌법상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 추정 원칙에 반하는 일입니다.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운신의 폭이 제한되는 피해를 감수해야 하죠. 공소 유지를 하는 검찰도 절차 지연은 문제라고 말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재판 장기화는 사회 변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 읽힙니다. 판례가 없는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 생겨나고, 그 내용도 복잡다단해 심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공판중심주의 강화로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법관의 업무 부담이 과중한 현실도 주된 원인일 겁니다. 2019년 법관 2,966명이 1인당 464.07건의 민·형사 본안 사건을 맡았다는 조사 결과가 보여 줍니다.

 이 지점에서 ‘법원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법조계에선 법관 증원 등 법원 개혁 중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국민적 관심은 크지 않습니다.

 그나마 법원 개혁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상고제 개선 논의도 공전을 거듭하는 실정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죠.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을 위한 인적 ·물적 여건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취임했습니다. 사법행정자문회의를 통해 방안을 찾고 있지만 임기 내 결과물이 나올지 미지수입니다.

 이쯤 되면 정작 법원, 사법부는 왜 사법 개혁 논의에서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지 의문이 듭니다. 법원은 개혁할 부분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사법부가 성역이기 때문일까요.

 역사를 되짚어 보면 매 정부가 사법 개혁을 주창해 왔습니다. 검찰과 경찰만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 과제에도 법원 개혁은 없습니다. 국회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또 만든다는데, 오는 9월 시행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후속 조치를 위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대법관을 지낸 한 법조인 분은 “법원은 개혁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무엇을 개혁해야 할지 자체가 지금 애매하다”며 “상고심 사건 적체만 해도 여러 방법이 나왔지만, 어느 것도 과반수 지지를 못 받는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시더군요.

 언론도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입법·행정부 못지않게 검경 개혁에만 열을 올리는 건 고질적 문제입니다. 이제는 사법 개혁보다는 법원 개혁 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박진영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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