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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한민국 인턴! 살았는가(生), 죽었는가(未生)?
미생(未生)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바둑돌(棋石). 혹은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사람(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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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을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미생(未生)>은 우리 사회의 아픈 치부를 건드리고 있기에 공감과 화제를 몰고 왔다. 그것은 인턴과 계약직에 대한 얘기다.
눈만 뜨면 듣게 되는 비정규직, 기간제, 계약직, 용역, 파견 등등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나라 근로자의 상당수로서 우리 가족 중에도 한두 사람 정도는 꼭 있다.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겪는 차별의 아픔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비정규직조차 되지 못한 청년들이 새로운 깃발을 들고 분기(?起)하고 있다. 바로, 인턴(intern)으로 몇 개월 동안 조직의 쓴맛을 겪고 다시 실업(?業)자가 되는 수많은 우리 청년들 말이다. 
정규직인 선배들에 비해서 그들은 실력이 좋다, 적어도 학벌이나 어학능력이 좋다. 인물도 좋고 다재다능하다. 그런데 근로자도 아니고 곧 실직을 앞둔 인턴이다. 
정기평가를 맞아, 가는 체에 걸러질 인턴들은 사무실의 꽃이 되기를 진작 포기했다. 사무실에서 그들은 카피(copy)를 하고 커피(coffee)를 대접하며 결국 코피를 쏟는다. 원래 기성세대들은 꽃다운 인턴에게 “무상으로 연수와 교육을 시켜주면서 실무능력을 키워주겠다”고 달콤하게 약속했었다. 그들은 선배인 척 다가가 인턴에게 능력?스펙뿐만 아니라 조직친화, 근면성실 등등을 요구하면서도, 업무능력 향상과 무관한 잡무를 버젓이 시키곤 했다(다음은 필자가 정리한 인턴의 수행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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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턴의 8대 수행과제
① 전화·팩스 송수신(사무실 전화를 내 전화같이 하라)
② 식당예약(작전실패는 있어도 배식실패는 있을 수 없다)
③ 프린트, 복사(복사먼지와 오존은 너의 젊은 폐로 정화하라)
④ 물건배달(인턴이 힘들다고? 힘들다는 건 “힘”을 써야 적격인 말이다)
⑤ 다과접대(커피잔과 쿠키는 열을 맞춰서, 또한 상냥한 미소와 함께)
⑥ 사무실청소(사무실은 반도체공장?수술실을 넘는 무균?무진의 에코리움)
⑦ 의전·수행(하늘같이 높은 분을 가까이 함은 인턴연장의 지름길)
⑧ 워드, 엑셀, PPT 작성보조(역시 결과보다는 형식이 중요하다) 

직장에서 하늘같은 선배들은 하늘의 계시를 내린다. “○○○씨, 열심히 해 봤어? 죽을 만큼 열심히 해 봐.” 이 말에 인턴들은 희망을 얻었다. 죽을 만큼 해보고, 실제로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제 3개월 인턴생활의 막바지다. 와이셔츠와 블라우스는 땀내가 나고 바지는 주름이 가득하다. 피부는 푸석하고 탈모도 시작되고 있다. 회사에서 월급 대신 주는 교통비로는 정장할부금과 핸드폰요금을 내기에도 벅차다. 그렇게, 긴긴 여름밤을 야근으로 지새우고 8대 수행과제를 무사히 마친 인턴에게는 어떤 것이 기다릴까. 

○월 ○○일. 드디어 평가일이다. 인턴이 비정규직인 계약직으로 신분상승하는 날이다. 밤잠을 설친 인턴들은 훌륭한 상무님, 부장님 앞에서 온갖 기예技藝(?)의 향연을 펼친다. 하지만 약속을 남발한 선배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나요?”, “무슨 자격을 가지고 입사를 지원하는 거죠?”, “우리 회사의 미래를 위한 사업전략을 가지고 있습니까?”라는 무겁디 무거운 질문을 쏟아낸다. 
인턴들은 욱할 뻔했다. “기성세대여, 무슨 인턴에게 경력, 자격, 사업전략 등등을 운운하는가”, “그럼 당신은 입사할 때 그런 것들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물론 이렇게 묻는 인턴은 없다. 이제 그들은 자포자기 상태다.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난 인턴들에게 문자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그들은 갈 곳을 잃었다. 수십 명 중에 불과 3~4명에게만 짧고 화려한 통보가 갔다. 
“인턴 장그래, 원인터내셔널 2년 계약직사원 최종합격”
운이 좋은, 아주 운이 좋은 장그래는 당당하게 계약직 사원으로서 회사에 입성(入城)한다. 자, 이후의 이야기는 드라마 <미생(未生)>에 그 공을 넘긴다. 


그런데, 사라진 수많은 인턴들은 어디에 있을까. 살아남은 인턴 장그래, 살아남지 못한(未生) 수많은 인턴들. 그 미생들은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제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송호창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2014. 9. 26 발의, 의안번호 제1911890)」이 논의되고 있다. 이 법률안은, 인턴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교육?연수?훈련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며, 인턴에게도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노동법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서 생사(生死)?고락(苦樂)을 반복했던 미생(=인턴)에게 일말의 새로운 희망을 주는 입법이라 하겠다.
그동안 인턴은 우리 사회에서 참 흔한 사람들이면서도 노동법에서는 참 희귀한 존재였다. 그들은 살고 있으면서도 살지 못한 것이었고, 늘 “을(乙) 중의 을(乙)”이었다.
장구한 노동법의 역사에서, ‘개별적 근로관계법’,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거대한 축은 근로자(정규직?비정규직)와 노동조합 등 기성세대를 더욱 공고한 지위로 올려놓기에 바빴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아이들?후배들은 학벌, 스펙, 능력, 인물, 성품 등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대부분 “살아남지 못한 자?인턴”으로 숨죽여 지냈다. 앞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인턴에 대한 많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노동법의 뜨거운 생기(生氣)가 그 미생(未生)에게도 뻗어나가 우리 사회가 다시금 젊은 숨을 쉬게 되면 좋겠다. 

미생(未生), 우리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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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5회(연수원 35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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