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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원열 교수 인터뷰

Q. 회보의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법대 84학번이고, 사법연수원을 19기로 마쳤습니다. 법무관을 마치고 판사 생활을 15년 하다가 로펌으로 옮겨서 변호사를 7년 반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수를 7년 정도 하고 있습니다. 판사 15년, 변호사 7년, 교수 7년 정도로 살아왔네요.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Q. 1993년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으셨습니다. 법원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검찰 시보 때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당시 부산지검 차장검사님께서 시보를 마칠 때 따로 불러서 검찰로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하기도 하셨는데, 사실 검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판사와 변호사 중에 생각해 보았는데, 당시에는 경력법관 제도 같은 것이 없던 때다 보니 판사를 하다가 변호사를 할 수는 있지만 반대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도 아들이 판사가 되는 것을 워낙 보고 싶어 하시기도 하셔서 법원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Q. 2008년 재판연구관을 마지막으로 법원 생활을 마치셨습니다. 약 15년의 법원 생활을 한마디로 자평하자면 어떤 법관이셨습니까?

 기록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한 판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사건 당사자의 이해관계나 배경을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항상 남더라고요.


Q. 그래서 법복을 벗게 되신 건가요?
 그렇죠. 그리고 사실 저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입니다(웃음). 말씀드렸다시피 사실 변호사도 원래 진로 검토 대상 중의 하나였고요.


Q. 일찍부터 대학원 박사과정을 다니셨습니다.

 판사라는 직업이 주는 무게감과 그 임무의 중요성에 끌려서 법원을 가게 되었지만, 판사 초년 시절부터 박사과정을 다녔습니다. 요즘 젊은 분들이야 박사과정 진학을 많이 합니다만, 예전에는 법조인들이 일찍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대학원을 가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얻는 여러 가지 즐거움, 새로운 것을 깨닫는 기쁨이 좋았습니다. 양창수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셨는데, 교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것들도 많고 즐거웠습니다. 

 교수는 바로 되는 방법이 없다 보니 처음부터 대학에 가는 것을 고려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법복을 벗으며 변호사로 옮길 무렵에는 교수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좀 했었습니다.


Q. 그런데 바로 대학으로 가시지 않고 로펌으로 가셨습니다.

 사실 법원을 나올 때 교수로 바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다이내믹한 실제 사건의 배경을 알고 싶다는 생각과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책임을 조금 더 이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로펌으로 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경제적인 여유가 약간 생겼고 실제로 사회 현실을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사회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거래 당사자들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앤장에서 특히 금융 관련 송무를 많이 했었는데, 금융기관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운영형태 파악에도 많은 도움을 얻었던 장점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변호사 생활은 어떠셨나요?

 신문에 많이 나는 다이내믹한 사건들을 많이 하면서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거래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라든지, 기업이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금융기관과 일반 제조업 회사는 좀 성격이 다릅니다. 금융기관의 내부 권력 관계라든가, 정부의 통제 같은 것들을 좀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파생금융상품들이나, 회귀분석 같은 것들도 꽤 깊이 있게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단순히 법 이론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거래 현실과 그에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도구 학문들에 대한 공부들을 꽤 진행했습니다. 평생을 놓고 보았을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김앤장에서 주로 하신 사건들은 어떤 사건들이었나요?

 금융기관 송무와 공정거래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도산 사건들도 조금 했고요.


Q. 변호사 생활 중 기억나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특정 사건이 기억이 난다기보다는, 일을 하다 보면 사실관계나 법리 측면에서 패소할 수가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패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사자는 너무 억울하게 되고, 이런 사건들은 계속 머릿속에 남게 됩니다. 정말 몇 달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죠. 변호사업이라는 것이 판사를 설득하는 일이고, 재판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히 제도상 수긍해야 할 일이겠지만, 저는 판사들이 좀 더 절차에 있어 오픈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변호사 업계의 법원에 대한 불만의 원인 중 큰 부분이 결국 왜 증거신청을 다 안 받아주냐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했는데 왜 그걸 판사가 제대로 간파를 못 하나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절차적으로 너무 통제하려 하지 말고 좀 더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러려면 판사 인력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Q. 유사한 취지에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영미와 우리는 재판개념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미국식 디스커버리는 증거 자료 등을 많이 내놓게 하긴 하지만 판사는 다 안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일단 양측이 많이 내놓게 하고, 허위 자료 같은 것이 있으면 서로 공격합니다. 최종적으로 사건에서는 증거를 굉장히 추려서 내놓고, 판사나 배심원들은 추려진 증거만 보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냥 마구 증거를 내고, 증거에 대한 탄핵은 충분히 안 되면서 판사에게 전부 읽으라고 합니다.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것처럼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사소송 절차를 보면 그런 부분들이 좀 있는데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 상고사건도 전부 대법관 이름으로 판결을 선고한다는 것은, 조금 나쁘게 과장하면 실제로 다 못 읽은 것을 다 읽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Q.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도입은 정말 필요합니다. 자료를 숨긴 상태에서 재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제도에 따르는 단점과 부수적인 효과들을 사회 전체가 이해하고 수용한 상태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장점도 많지만 사실 단점도 많습니다. 그 단점들까지도 전부 열어두고 토론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미국식 디스커버리는 증거를 숨기거나 속인 부분이 발견되면, 소송에서 패소시켜 버리고, 심한 경우 당사자나 대리인을 구금까지 시켜 버립니다. 만약 한국에서 판사들에게 그런 권한을 준다고 한다면, 변호사들이 그 절차에 쉽게 동의를 할까요?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려면 의도적으로 숨긴 자료 등이 발견될 시 패소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절대 제도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비용 또한 매우 많이 듭니다. 비용이 없는 사람들은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그에 수반하는 판사의 절차 진행에 관한 재량과 권한, 소송비용의 증가 등에 관하여 충분히 논의하고, 이 부분을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Q. 결국 대학으로 옮기셨습니다.

 대학으로 옮기기 1 ~ 2년 전부터 내가 로펌 변호사를 평생 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연차가 쌓이게 되면서, 일의 내용에 파묻혀서 법리를 탐구하고 사실관계를 분석하는 일보다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들이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은 제 적성에는 잘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조금 늦었지만, 차라리 지금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굉장히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변호사 시절에도 사법연수원에서 외래교수로 민사실무를 3년 가르쳤습니다. 그때 학생들과 밥 먹으면서 한 이야기도 ‘사람들이 인생에서 명예든 권력이든 자유든 부든 각자 여러 가치를 추구할 텐데, 사람마다 중시하는 정도가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자유를 제일 중시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이었어요.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야 나에게는 가장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가장 자유로운 직업은 역시 교수거든요.

 물론 자유라는 것은 매일 놀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렇지만 교수는 자기가 할 일들을 어떤 내용으로 어떤 시간에 할지와 같은 내용들을 자신이 스스로 정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유도가 높은 직업은 없는 것 같습니다.


Q. 대학에서는 강의, 연구, 대외활동, 기타 보직 활동 등을 겸하셔야 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안분하시는 기준이 있으신지요?

 절대적인 시간이 제일 많이 요구되는 것은 연구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이 강의나 대외활동 순서입니다. 대외활동이라는 것은 많다가 적다가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Q. 최근 집단소송 관련 연구로 한국법학원 논문상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독일, 일본, 한국의 소송법이 전제로 삼았던 19세기 말의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었습니다. 대량 피해라는 것들이 끊임없이 발생을 하고 있는데, 이런 대량 피해들을 사회적으로 해결을 제대로 못 해주고 있다면 사회제도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도입하자는 이야기는 상당 부분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집단소송제 역시 판사의 엄청난 재량권을 전제로 해서 작동하는 제도라는 점은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과 일반 집단소송법은 다릅니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은 원고의 범위가 100% 정확히 확정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집단소송은 차원이 다릅니다. 미국의 일반적인 집단소송은 피해자가 누구인지 원고가 몇 명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소를 진행합니다. 대표 원고들이 판결을 받게 되면, 원고 대리인인 변호사가 돈을 나눠줍니다. 클래스에 속하는 사람인지 여부를 원고 대리인인 변호사가 판단하게 됩니다. 판결에서 기준은 제시하지만 실제 해당하는지는 원고 대리인이 판단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관념에서는 판사가 해야 하는 일을 판결 확정 이후에 원고 대리인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고가 최종적으로 몇 명이 올지 정확히 알 수도 없고, 피고로부터 받은 돈이 모자랄 수도 있고, 7 ~ 80% 이상 남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 남는 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지금 법무부(안)을 보면 피고한테 돌려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나요? 미국은 판사가 재량으로 관련 이슈에 관한 연구기관에 다 주라고 정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재량이지요. 우리 법관념에서 상상이 될까요. 이런 부분에 관하여 터놓고 이야기하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러야 합니다. 디스커버리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 이야기이지요.


Q.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즐거우신가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생들도 피드백을 비교적 잘하는 편이고 늘 열심히 잘합니다. 그런데 조금 딱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이렇게나 똘똘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인데, 졸업 후 사회에서 그 리워드를 충분히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진전되고, 법조인 수가 많아지면서 평균 리워드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만, 요즘 보면 너무 대우를 못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Q. 평소 하시는 운동이나, 취미가 있으신지요?

 늘 뛰려고 노력합니다. 이틀에 한 번 정도 양재천이나 학교 체육관에서 4km 정도 뜁니다. 주말에는 6 ~ 8km 정도 뜁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미시시피 버닝(Mississippi Burning)>이나 <미션(The Mission)> 같은 사회성 짙은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는 주인공들의 노력과 이런 노력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여러 가지 반응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처 같은 것들을 잘 묘사해 놓은 영화들 입니다.


Q. 지금까지 어떠한 좌우명 혹은 가치관으로 살아오셨나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Q. 교수님께서 앞으로 꼭 이루자 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착실히 공부하고 학생들과 잘 소통하는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교수님이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거나, 막연히 알고 있던 것들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성취감이 큰 것 같습니다.


Q. 자녀분들에게 법조인을 권하셨나요?

 아이 둘 모두 이과이고, 둘 다 법조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저 역시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이 없습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것인가요?

 공부를 하는 것은 대체로 저에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물론 법을 공부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이나 공학을 공부해서 세상을 바꾸는 발명같은 것을 해보면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1993년 초임 판사 전원열을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를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조금 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워라. 나머지 하나는 주변 사람을 조금 더 배려해라.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2년의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코로나19 직전 학기에 강의를 하다가, 중간에 농담을 한마디 하려고 잠깐 멈췄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너무도 진지하게 타이핑을 하려고 긴장 상태로 있는 거에요. 그걸 보니까 갑자기 학생들이 너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학생들에게 “여러분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쪽 구석에는 ‘안 되면 말고’ 정신을 가지고 있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 힘들어요.”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결국 진인사대천명이지요. 후배변호사님들께도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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