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커뮤니티 지난 연재
[특별기고] 카툰 인문학
 
 속도의 충돌
 
 
수정됨_속도의충돌(윗부분만).jpg

 
학교는 어느 정도 전통과 명성이 쌓이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제 발로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고, 정당조직은 선출직 공직자를 배출하는 독점적 통로가 된다. 재판은 오래 끌고 집행력이 부실하여 승소해 봐야 별 이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독점 관료주의와 타성에 젖어 있는 조직은 살아남기 어렵다. 앨빈 토플러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으므로 변화의 흐름을 읽고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맹목적 속도
 
 
수정됨_맹목적 속도(아랫부분).jpg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사막에 사는 스프링벅이라는 산양들은 20∼30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며 풀을 뜯어 먹다가 점차 수가 늘어나 몇만 마리에 이르는 거대한 무리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다가 서서히 전진하면서 풀이란 풀은 모조리 뜯어먹는다. 행렬의 뒤쪽에 있는 양들은 먹을 풀이 없어지게 되어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하고 이 움직임은 앞의 양들을 떠미는 꼴이 되어 파도처럼 앞으로 계속 전해져서 앞에서 걷던 양들을 뛰게 하고 앞에서 뛰니까 뒤에서도 따라 뛰게 한다. 뒤에서 달려오니 앞에서는 더욱 필사적으로 달음박질을 할 수밖에 없고 모두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집단자살을 하는 것처럼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처럼 목표와 방향이 분명하지 않는 맹목적 속도는 파국에 이르게 된다. 
 
 
 
과학기술의 속도와 인간의 삶
수정됨_과학기술의속도와인간의삶(아랫부분).jpg

 
찰리 채플린의 1929년 작품인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는 대공황 이후 산업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모습을 코믹하면서도 슬프게 그리고 있다.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는 단순반복 노동을 하는 주인공은 공장의 조립선 앞에 서서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한다. 주인공의 손은 일이 끝난 다음에도 저절로 움직이고 급기야는 앞에 가는 여자의 옷에 달린 단추를 조이려고 달려든다. 공장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찰리 채플린은 갖가지 사건에 휘말리며 취직과 해고당하기를 반복하고, 정신병원과 감옥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만난 고아소녀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쭉 뻗은 아스팔트길 역시 인간을 억압하는 다른 길로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모던’은 속도의 광기에 사로잡힌 시대이며 노동자는 자유와 자율성을 잃고 기계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산업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속도의 역설
 
수정됨_속도의역설(뒷부분만).jpg
지중해의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가난한 어부를 보고 도시에서 온 관광객이 “낚시를 하여 돈을 모아 작은 배를 사고, 배로 더 많은 고기를 잡아 더 큰 배를 사고, 더 많은 고기를 잡으면 많은 직원을 거느린 사장님이 될 수 있는데 왜 이곳에서 한가하게 낚시질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어부는 관광객에게 당신이라면 사장이 된 후에 어떻게 지낼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언젠가는 바닷가에 와서 한가하게 낚시질이나 하면서 지내겠다”고 대답하였다. 결국 도시에서 온 관광객이 꿈꾸는 생활을 어부는 지금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속도를 숭배하며 노심초사 초조해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는 언젠가 느리게(여유있게) 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설과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수정됨_전변사진.jpg

 
전왕 변호사
사법시험 제32회(연수원 22기)

전왕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