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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마니아들, 그리고 하루키의 음반 사랑

클래식 음악에도 마니아들이 존재한다

 수백 년 전의 음악을 듣기 위해 일부러 고가의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싼 가격에 음악을 다운받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가의 음반을 소장하려고 발품을 파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을 마니아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영미권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는 MANIA를 우리는 좋게 말해 ‘애호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명한 사실은 클래식 음악에도 적지 않은 마니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LP를 모으는 마니아들도 있지만, 오디오기기가 내는 소리의 품질에 집착해서 매킨토시 진공관과 탄노이 스피커 등, 다 갖추면 수천만 원이 넘는 오디오기기를 구비하는 마니아들도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서울 시내 아파트에서 위와 같이 비싼 오디오기기를 갖추는 실익이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저렴하고 관리도 쉬운 CD만 열심히 모으는 필자 같은 사람은 수백 장이 넘는 CD가 있어도 마니아 축에는 들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오래된 클래식 음반이라도 찾아다니는 마니아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많은 젊은 이들이 영혼을 불태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하기 어려운 고가 음반의 구매는 투자가 목적일 때도 있다

 지금 우리가 즐겨듣는 명곡들의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주와 이를 녹음한 음반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마니아들은 같은 곡에 여러 종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마니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필자 같은 경우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관해서는 카잘스나 푸르니에의 명반 외에도 지난 기고에서 소개하였던 안느 빌스마나 미샤 마이스키의 음반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CD로 발매되었던 장 막스 클레망의 음반까지 가지고 있다(클레망의 연주는 레퍼런스가 될 만한 모범적 연주는 아니지만, 파격적 해석과 시원하고 개방감있는 연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어 추천할 만하다. 사진 1). 진정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마니아들은 안느 빌스마의 음반도 1979년의 첫 녹음과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한 두 번째 녹음을 모두 소장할 정도이고, 빌스마의 제자로 최근에 가장 각광받고 있는 비스펠베이의 연도가 다른 3가지 음반을 모두 가진 분도 있다고 들었다. 

 인기가 많은 명곡인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의 경우, 클래식을 처음 접근하는 분들이 가이드북이나 카탈로그를 통해 손에 넣는 명반은 주로 쿠벨릭 아니면 노이만이 지휘한 음반일 것이다. 카라얀의 연주가 음반을 구하기 쉽지만, 진정한 마니아들이 찾은 음반은 노르웨이 출신 지휘자인 피엘스타트가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1958년도연주인데, 이 연주는 국내에서 음반으로 구하기 매우 어렵다(사진 2). 이 피엘스타트의 연주는 시원하면서도 질박한 노르웨이풍의 선율을 잘 살려내기도 했지만, 고역이 화려하고 또렷한 DECCA 사운드의 음질도 좋아서 인기가 많다.

 피엘스타트가 연주한 페르귄트 만큼이나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지만, 마니아들이 반드시 구하고자 하는 음반으로 유명한 것에 이스트반 케르테츠가 연주한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있다. 케르테츠의 명연에는 두 가지가 있고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1966년 음반도 높은 평을 받고 있지만, 비엔나 필하모닉을 지휘한 1961년 음반이 전설적인 오디오 파일과 동시에 명연주로 손꼽힌다(사진 3).

 이처럼 구하기 어려운 명연들의 경우 CD를 국내에서 구입하기도 쉽지 않지만(일본에서는 조금 더 구하기 쉽다), 오리지널 원반으로 LP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특히 고가의 LP로 유명한 음반인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EMI)는 원반 자체를 구하기가 어렵고, 마니아들도 일본에서 나온 리이슈 음반으로 접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마르치에 못지않은 명연주인 셰링이나 그뤼미오의 음반은 CD로도 어느 정도 저렴한 가격에 접할 수 있어 다행인데, 최근에는 빅토리아 뮬로바가 연주한 CD도 매우 훌륭해서 많이 추천되고 있다(사진 4).

 클래식 마니아들이 모든 곡들의 음반을 고가로 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명연의 경우는 CD보다 LP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CD와 스트리밍에 밀려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었던 LP가 최근에는 CD보다 더 많이 팔리는 세상이 된 것을 보면, 세상은 정말 돌고도는 것 같기도 하다. LP 음반이 재유행하면서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시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중고음반 시장도 다시 활황을 맞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클래식 음악의 경우 스테레오 LP 음반은 더 이상 생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구하기 힘든 고가의 음반들은 감상이 아니라 투자의 목적으로도 수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코간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 시리즈는 이베이에서 1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마니아들이 열심히 찾는 초고가 음반들은 주로 처음 찍어낸 초반(원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수한 애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얻은 정보

 지난 기고에서 여러 권의 클래식 가이드북을 추천했던 필자로서는 또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라는 수필집(?)이다. 유명 소설가인 하루키가 오랜 세월에 걸쳐 명반을 486장이나 구입한 스토리를 책으로 썼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음반 소장의 이유가 명반이라서가 아니라 “재킷이 멋있어서”, “또는 너무 싸서”라는 것이라 재미있기도 한 책이다. 그런데 재킷이 멋있어서, 또는 가격이 너무 싸서 하루키가 구입했다는 음반들은 대부분 지금 구하기 쉽지 않은 명반들이고, 한 곡에 관해서 여러 장의 음반을 듣고 쓴 감상문의 수준도 초보자의 레벨이 아니라서 다음과 같이 참작할 만한 가치가 있다.

1) 유진 포더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멘델스존의 협주곡과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관해서는 그 인기만큼이나 많은 명반이 나와 있다. 평론가들은 전통적으로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의 명연을 첫 번째로 드는데, 당연히 마니아들은 같은 오이스트라흐의 음반도 오먼디가 지휘한 명반은 물론 콘비츠니 지휘의 더 구하기 힘든 음반도 소장하려 한다. 그런데 하루키의 이 책에서 하나 건질 수 있는 것은, 20대에 꽃을 피웠으나 마약과 술에 절어 대중으로부터 빨리 잊혀진 유진 포더라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명연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하루키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에 관해서도 일반적인 애호가들이 잘 알기 어려운 하이먼 브레스의 명연을 추천하고 있는데, 이 음반을 국내에서 구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것을 보면 하루키는 절대로 초보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 가격이 싸서 구입했다는 토스카니니의 그랜드캐년 모음곡
 현대에 작곡된 미국 음악임에 불구하고 인기가 있는 그로페의 그랜드캐년 모음곡 역시 많은 음반이 나와 있고, 국내에서는 주로 피들러나 도라티가 연주한 음반을 구입해 듣는 애호가들이 많다. 그런데 하루키는 미국 중고가게 매대에서 토스카니니가 연주한 그랜드캐년 모음곡 음반을 보자마자 바로 구입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가격이 1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하루키는 투자 목적으로 음반을 구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지만, 정작 그가 구입한 토스카니니 음반은 지금 구하기 힘든 매우 유명한 명반이라 할 수 있으니 운도 참 좋은 분인 것 같다. 이 음반 외에도 하루키는 미국의 중고음반 가게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명반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서, 나중에 필자도 미국에 가면 중고음반 가게부터 들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 쿠폰을 모아 보너스로 받았다는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여기서 더 재미있는 기술을 또 언급하게 되는데, 하루키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 중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쿠폰을 모아 보너스로 LP를 받았다는 부분이다. 쿠폰으로 받은 음반이라서 그렇게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우울한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참 특이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키가 이 곡을 정말 좋아했던 것은 사실인지, 프레빈의 연주 외에 번스타인의 연주까지 소장하면서 감상한 느낌을 자세히 적어 놓았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가 매우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후반부에서 하루키가 직접 연주를 들었다는 아르헤리치의 음반에 대한 기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음반은 하이든의 협주곡과 커플링되어 두 곡이 매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데, 오히려 필자도 이 음반을 좋아해서 이미 오래 전 구입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죽기 전에 들어야 할 클래식 1001에도 선정된 음반이다. 사진 5).

 

잘못된 언론보도 때문에 일반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들

 이번 기고를 통해 필자가 변호사님들에게 꼭 알리고 싶은 사실로 2가지가 있다. 우선 언론에서 자꾸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제목으로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루크너, 말러 등이 교향곡을 9개밖에 작곡하지 못한 점을 부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베토벤과 슈베르트에게만 국한된 사실이다(사실 베토벤과 슈베르트에게도 완성만 되지 못했을 뿐, 10번 교향곡의 초고는 존재한다). 브루크너에게는 자신이 습작으로 취급한 0번 교향곡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며, 말러에게는 9개의 교향곡 외에도 <대지의 노래>와 말러 사후에 후진이 완성한 10번 교향곡이 더 존재하고 있다.

 다음으로 필자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가 음반을 많이 구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알려진 8개의 곡 중에 진짜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은 1번부터 5번까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래에는 6번과 7번도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왔고 그에 대한 연주도 존재해 왔는데, 최근 연구를 통해 진정한 모차르트의 작품은 1번 내지 5번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또 한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알려진 <아델라이데>는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1932년 카사데우스가 우연히 발견하여 화제를 일으킨 명곡이었는데, 1977년 카사데우스가 저작권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위작임을 밝힌 해프닝이 존재한다. 즉 아델라이데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셈인데, 초연을 했던 메뉴인의 명연을 들어보면 작품성은 상당히 괜찮다는 평이다(사진 6).

 최근 안 변호사님의 소개로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로 인한 재미가 쏠쏠해서, 부족한 기고를 통해 조심스레 추천해 보았다. 클래식 마니아들이 음반에 보이는 열정에 대한 이야기가 고가의 음반으로 흐른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데, 부족한 부분은 또 다음 회를 기약해 본다.

허중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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