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은 일본을 다룬 책 중에서도 가장 객관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책이다. 책 제목인 “국화와 칼”은 일본의 국화를 사랑하는 평화의 이미지와 칼을 숭상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를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전쟁을 벌이던 미국은,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공격을 한 ‘카미카제’나 미국의 포로와는 전혀 달랐던 일본 포로들의 태도를 보면서, 이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일단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여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이에 대한 연구를 위촉하면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루스 베네딕트는 그 당시 전쟁 중인 상황으로 인하여 일본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오직 미국에 머무르고 있던 일본인의 인터뷰와 기존 일본에 대한 문서나 영상자료 등만을 통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고, 이러한 점이 오히려 이 책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우선, 저자가 생각하는 일본이란 ‘각자에게 알맞은 위치’를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본인은 대동아 지역에서 미국, 영국, 소련을 각자의 알맞은 위치로 쫓아내기 위하여 2차 세계대전을 벌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계층제도의 중시는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분수에 해당하는 덕을 실현해야 올바른 질서가 형성된다는 정명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임에도 그 당시 저자의 상황에서 이러한 동양사상까지 파악하기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의 문화가 서양과는 다른 원인으로 일본의 계층제도의 중시 및 물질력보다 정신력이 우월하다는 주장, 계층제도의 정점에 있는 천황제도의 존재 등을 꼽고 있다.
특히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이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채무 또는 무거운 짐을 의미하는 일본말 “온”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최근 보도된 신문기사의 “20년 전 일본 고베대지진 당시에 피해자 가족들이 슬픔으로 인하여 오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구조대를 향하여 ‘감사합니다. 수고합니다’를 외치는 모습이나 IS에 희생된 가족들이 오히려 ‘폐를 끼쳐 죄송하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모습은 한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위와 같은 일본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온”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온”의 의미에 대하여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해야 하는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은혜를 받음으로써 채무자가 되는 것은 대단히 괴로운 일로 여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인은 슬픈 상황에서도 온을 입은 것에 대한 수치심으로 인하여 슬픔을 감추고 침묵을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위와 같은 설명이 현대 사회의 일본에까지 적용할 수 있을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문화의 영속성 측면에서 본다면 가끔씩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의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일종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책은 바쁜 생활 속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일본의 근대화를 알고 싶으나 이 책을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추천하고 싶다.
배진혁 변호사
사법시험 제53회(연수원 4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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