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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의 가치

 

 영국의 좌파 사상가이자 작가인 오언 존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소외를 상세히 서술한 저서 『차브족: 노동계급의악마화(Chavs: The Demonization of the Working Class. 이 책은 국내에서는 2011년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에서 영국의 노동계급이 받는 차별적 대우를 한가지 예를 들어 비교한다.

 2007년 5월 포르투갈에서 휴가 중에 리조트에서 실종된 3세 소녀 매들린 맥캔(Madeleine McCann)과, 2008년 2월 웨스트요크셔에서 실종된 9세 소녀 섀넌 매튜스(Shannon Matthews)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라는 점, 그리고 신속하게 구조되어야 할 아동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매들린 맥캔과 섀넌 매튜스의 실종사건이 영국 미디어와 대중으로부터 다른 취급을 받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속한 계급이었다. 매들린의 부모인 제럴드 맥캔과 케이트 맥캔은 둘 다 전문의였고, 매들린의 가족은 확고한 중산층이었다. 반면 섀넌의 어머니 캐런 매튜스는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이었고, 공영 임대주택에서 5명의 전(前) 배우자들 사이에서 낳았던 7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주부였으며, 그녀의 남자친구 역시 슈퍼마켓 어패류 코너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섀넌이 살던 잉글랜드 북부의 웨스트요크셔는 1980년대 보수당 정부의 공업정책으로 인해 탄광들이 문을 닫은 이후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도 상기하자. 존스가 뼈아프게 지적하는 바와 같이, 런던의 중산층 언론인들에게 잉글랜드 북부는 마치 외계와 같은 다른 세상이었다. 반면 언론인들은, 자신과 같은 계급에 속한 맥캔 가족에게 발생한 비극에는 더욱 동정적이었다(맥캔 부부가 실종 당일에 3세의 매들린과 2세의 아들을 방에 재운 뒤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외출한 점은 가볍게 용서가 되었다).

 매들린 맥캔의 실종사건 이후 2주간 영국 언론은 매들린의 실종과 관련된 기사 1,148건을 탈고했으며,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매들린의 생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소설가 J.K. 롤링, 기업인 리처드 브랜슨, 유명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뿐 아니라 영국의 대표적인 황색언론인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와 더 썬The Sun은 매들린을 무사히 돌려보내면 무려 2,600,000 파운드(약 43억 원)의 현상금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반면 섀넌 매튜스의 실종과 관련된 언론기사는 매들린의 실종을 둘러싼 기사의 양 대비 1/3에 불과했다. 섀넌 매튜스의 귀환에 대해 더 썬이 내건 현상금은 25,500 파운드(약 4,200만 원. 이 현상금은 5만 파운드로 증액되었다)에 불과했다. 존스의 말을 빌리자면, “돈으로만 놓고 보면 매들린 맥캔의 목숨은 새넌 매튜스의 목숨보다 50배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까지도 생사가 밝혀지지 않은 매들린과는 달리, 섀넌은 2008년 3월 14일에 무사히 발견되었다. 그러나 섀넌을 납치한 당사자가 바로 어머니 캐런 매튜스라는 사실, 그리고 캐런이 현상금을 노리고 이같은 어이없는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서 언론의 무관심은 순식간에 캐런이 속한 노동계급에 대한 증오로 변했다. 언론은 캐런 매튜스가 살던 듀스베리 무어(Dewsbury Moor) 마을 전체를 베이루트보다 더 못한 빈민촌이라고 모독하였고, 보수 언론을 읽는 구독자들은 캐런과 같은 노동계급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 못하게 단종 수술을 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댓글까지 달았다. 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같은 보수적인 황색언론은 범인인 캐런 매튜스가 직장이 없었고 정부 보조금에 의존했다는 점을 들어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영국의 복지국가 시스템 자체에 대한 맹공을 퍼부었다. 존스에 의하면 이런 노동계급에 대한 모욕적이고 부당한 수사(修辭)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보수당 정부의 긴축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영국은 아직까지 왕족과 귀족 작위가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조금 독특한 케이스지만, 계급에 따라 사람의 목숨의 가치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나라가 영국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모두 존엄하고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존엄하고 소중한 대우를 받는다. 우크라이나와 수단 모두 끔찍한 전쟁으로 인해 피로 물들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수단인들에게는 문을 닫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최근에 두 건의 큰 해양 사고가 발생했다. 6월 14일에는 그리스 메세니아 앞 해안에서 약 750명의 난민을 태운 어선이 침몰하여 난민 82명이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었고, 무려 500여 명이 실종되었다. 이 참사로부터 며칠 뒤인 6월 18일,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관찰하기 위해 5명의 승객을 태우고 심해로 잠수한 오션게이트 사(社)의 잠수정 타이탄호가 캐나다 뉴펀들랜드 앞바다에서 실종되었다.
사람의 목숨은 모두 귀중하고 존엄하다고 하지만, 두 사고에 대한 반응은 천양지차이다. 이탈리아를 향해 가던 난민선은 정원을 수백 명 넘게 초과했었고, 엔진이 작동을 멈춰 7시간 동안 침몰한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며, 심지어 선장이 도망간 절망적인 상황에서 수 시간 동안 구조를 기다렸으나, 배가 측면으로 쏠려 가라앉기 직전까지 그 누구도 그들을 구조하러 개입하지 않았다. 난민선에게 물과 음식을 공급하면서 난민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난민들이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난민 구조 NGO 단체들은 배에 탄 난민들이 구조를 요청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게다가,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CLOS) 제98조는 조난 위기에 처한 선박 또는 개인을 구출하는 것은 협약국의 의무임을 명확하게 못 박고 있다.

 반면, 타이탄이 잠수 후 대서양에서 연락이 두절되자 신고 후 신속히 캐나다 해군과 미국 해안경비대가 출동하여 잠수정을 탐색하기 시작했으며, 며칠 안에 영국과 프랑스의 구조자원까지 합세하여 다국적 구조 작전을 펼쳤다. 구조에 투입된 자원의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언론은 지중해에서 일어났던 비극보다는 연락이 두절된 잠수정에 월등히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TV 채널들은 실시간으로 모든 언론에서 잠수정에 남은 예상 산소량을 보도하고, 해양학자들을 포함한 심해 전문가들과 인터뷰하면서 잠수정에 탑승한 5명의 생사를 추측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바다에 수장되는 것은 일상이고, 대서양 앞에서 잠수정이 침몰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매들린 맥캔과 섀넌 매튜스가 속했던 계급의 차이가 그들의 실종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갈랐듯이, 두 사건에 대한 관심의 차이는 결국 국적과 계급에서 비롯된다. 난민선에 탔던 750여 명은 이집트, 파키스탄,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에서 전쟁, 억압적인 정부, 가난,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의 초토화, 혹은 이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하던 사람들이었다. 2015년의 난민 위기 이후 유럽 각국이 터키와 발칸 반도를 통해 육로로 난민들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지만, 삶의 터전을 부정당한 자들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리비아에서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넌다. 반면, 타이탄 잠수정에 탄 5명은 미국인, 프랑스인, 그리고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타이타닉의 잔해를 보기 위해 관광을 주관한 오션게이트에 1인당 25만 달러(약 3.2억 원)를 지급할 정도로 부유한 CEO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5명은 소위 VIP였고, 750여 명은 중요하지 않은 난민이었다. 지중해에서 수장된 사람들은, 지난 2014년부터 지중해를 건너던 중 죽거나 실종한 26,000여 명이라는 통계 수치 안에 집계된 숫자에 불과했다. 

 타이탄 잠수정 승객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거나, 그들을 추모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잠수정 승객 5명에게 쏟아진 관심과 구조를 위한 노력, 그리고 82명의 사망자와 500여 명의 실종자들에게 주어진 무관심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상식을 믿고 살아간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과 환경의 황폐화가 가속화될수록 살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버려야 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그리스 해안에서 일어났던 참사는 어쩌면 더 큰 규모로 반복될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정말 그런가?

 

윤태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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