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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이슬람의 마카(Makka), 사우디 아라비아
2011년 LG 전자 사우디 현지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현지 파트너와 합작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중동지역에 LG 에어컨을 공급하여 온 터라 LG 전자의 위상이 높다고는 하지만, 판매와 유통을 담당할 판매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또 다른 큰 일이라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투자청 등 당국과의 실무 협의를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통상 이용하는 에미레이트항공 좌석을 구할 수 없어서 사우디 국적기인 사우디에어라인(SAUDIA)을 타고 리야드로 향했다. 기내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아랍어 기도소리와 함께 비행기 스크린에 코란 문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적잖이 놀라고 어색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안전한 운행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겠구나 하고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기내에서 맥주 한잔 할 생각은 깨끗이 잊었다. 

사우디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중동국가로서, 국토는(대부분 사막이기는 하지만) 한반도의 10배인 데 반해, 인구는 약 2천 9백만 명으로 남한의 60%에 불과하다. 외국인 노동자 및 근로자가 약 천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구는 2천만 명을 넘지 않는다.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서 최근 셰일 붐으로 미국이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바람에 경제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자원 부국으로 주변국 및 국제기구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하다.
이슬람교의 발상지로 이슬람교 최대의 성지인 메카가 있다. 성스러운 메카(Mecca)가 중심지를 뜻하는 보통명사(메카)로 쓰이는 것이 못마땅했던지, 사우디 정부는 메카의 공식 명칭을 ‘마카(Makka)’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사우디는 와하비즘을 근본으로 한다. 와하비즘은 청교도적인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이다. 이슬람 4대 학파 중 하나인 한발리 학파(Hanbali School)에 기초하여, 일체의 해석을 배제하고 오로지 이슬람 경전인 코란(Koran)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순나(Sunnah)에 따른 정통 이슬람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압델 와하브의 이름을 따서 와하비즘이라 불린다.
홍해 연안의 헤자즈 지방(메카 중심)과 중앙 고지로부터 페르시아만에 걸쳐있는 네지드 지방(리야드 중심)의 양대 부족 세력을 리야드 출신의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Abdul-Aziz bin Abdulrahman Ibn Saud)가 통일하여 근대 입헌군주국을 건국, 1932년 9월에 현재의 왕국명(Kingdom of Saudi Arabia)으로 바꾸었다. 국왕의 공식 명칭은 이슬람 두 신성모스크 수호자(The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로 국가원수직과 총리직을 겸임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의회와 정당이 없다. 대신 의회와 유사한 기관으로 국정자문회의(Majlis Ash-Shura)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데, 이 슈랴위원회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첫날 일정으로 현지 로펌 세 곳과 미팅을 하고, 사우디 아라비아 투자청(SAGIA)과 미팅도 진행했다. 첫 출장이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만나는 사람들은 아랍어를 주로 쓰는 데다가, 내 영어도 아직은 초보단계이다 보니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해외 유수의 로펌이 현지 파트너와 공동사무실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해당 변호사들은 이미 사우디 사람이 다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Kingdom of Saudi Arabia’를 대변하고 있었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왕국의 구성원들은 급할 것이 없으며, 크지 않은 이득을 위해 사건을 수임하려 하지도 않았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이해가 된다. 그들은 급할 것이 없다. 
출장 첫날을 마치고 나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참 재미있고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호텔로 복귀해서 처음 찾은 것이 시원한 맥주였는데, 역시 있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사우디에서 맥주를 마실 줄이야!’하고 냉장고에 있는 맥주 두 캔을 순식간에 마시고, 샤워도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점심을 먹으면서 LG 직원에게 “그래도 맥주 한 잔 하고 잘 잤습니다.”했더니, 의아해 하는 것이었다. 사우디는 술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 내가 호텔에서 마신 맥주는 무알콜 맥주였다고 했다. 원효대사의 일화가 떠오르는 듯했다. 

그 이후에도 사우디는 여러 차례 방문했고, 방문할 때마다 색다른 경험을 했지만, 주재원 집에 저녁 초대를 받은 경험은 잊을 수 없다. 음료수 페트병을 몇 개 가지고 나오더니 따라 주는 것이 아닌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음료수들은 모두 자체 제조한 술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날 그 집에 있던 술을 거의 해치운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리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조니워커의 최대 (비공식) 수입국이 ‘사우디’라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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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주재원 친구 집에서 먹어 치운 술. 왼쪽부터 맥주,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첫 방문 이후로도 수 차례 리야드와 제다를 방문하여 법인설립을 마무리했고, 그 이후에도 다양한 이슈로 사우디는 내 집 드나들 듯이 다녀왔다. 어느 때부터인가 비자 신청이 반려되는 것이 이상해 한국에서 다시 신청했더니 장기 비자가 허용되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신청하는 곳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내다니…….

LG 전자의 사우디 대형 거래선과의 계약협상을 통해 나는 협상가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계약 체결을 위해 협상 시나리오, 협상 차트를 만들어서 수차례 협상을 하고,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이후에도 계약서 문구 하나하나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계약서를 수차례 보내고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계약서에 서명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매우 중요한 계약이다 보니 법리적 분석뿐만 아니라 사업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해 협상의 진수를 배웠고, 아랍사람들과 사업하기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Win-Win’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계약 성사도 중요하지만 사업적 의사결정이나 장기적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신뢰와 인간관계를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협상의 상대방이 항상 사우디인이었던 것은 아니고, 한국인이 거래선의 주요 임원으로 협상장에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쪽이 나오든지 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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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협상을 마친 후 사우디 직원들과 저녁 식사. 웃고 있지만 웃는 것이 아니다.


2005년 8월 왕위를 계승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Abdullah bin Abdul-Aziz Al-Saud) 前 국왕의 정치 및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알사우드(Al-Saud) 왕가의 장기 집권, 반미 정서, 높은 실업률(특히 청년층) 및 빈부 격차 등에 기인한 반정부 및 이슬람 강경 세력의 저항으로 치안이 불안정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아버지이자 창건자인 압둘아지즈가 총애한 부인 수다이리가 낳은 7형제(Sudayri Seven)가 형제상속을 하는 것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5대 파드 국왕이 칙령으로 직계상속도 허용했다. 다행히 압둘라 국왕의 서거 이후 이복동생인 살만이 왕위를 계승 받았고, 압둘라 왕의 유지를 따를 것으로 공표하였다. 살만 국왕의 지도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우디의 행정 및 법률 시장은 최근 5년 사이 몰라보게 개선되어 가고 있다. 법원체계에 변화가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 투자청의 수장이 바뀌면서 외국 투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및 일을 처리하는 시스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인터넷이나 시스템을 통한 업무 범위가 광범위해지고 있다. 업무처리를 함에 있어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는 것이 민원창구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최근 영국계 글로벌 로펌이 사우디에 독자적으로 사무실을 열었다. 사우디의 법률시장은 개방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터라 적잖이 놀랐다. 사우디 정부 역시 개방의 물결을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랍의 봄을 아무 탈 없이 흘려 보냈지만, 다음에 올 위기를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01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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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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