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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디스토피아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톨스토이가 썼던가. 우리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미래인 유토피아보다는, ‘저마다의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이 불행한 미래인 디스토피아를 더 흥미롭게 여긴다.

 1973년에 공개된 공상과학영화 〈소일렌트 그린(Soy lent Green)〉에서 모두가 불행해지는 원인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이다.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이 그린 이 디스토피아 추리극에서 영화의 배경인 뉴욕시 인구만 4천만 명, 그중에서도 2천만 명이 맨해튼에 모여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늘어난 인구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모든 가용한 환경자원을 소모했으므로 전 지구가 사막화되었고 가축은 물론 곡식과 과일도 경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인구는 빈민으로 전락하여 대기업 소일렌트 사(社)가 제조하고 정부가 배급하는 대체식품인 소일렌트(화장실 타일 혹은 큰 건빵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며, 영양가는 모르겠으나 맛은 별로 없어 보인다)에 의존하고 있다. 오로지 소수의 부유층만 24시간 경호를 받는 널찍한 아파트에서 온수 샤워와 신선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뉴욕시 경찰 수사관 로버트 쏜(1970년대의 액션 스타 찰턴 헤스턴이 연기한다)은 소일렌트 사의 중역인 윌리엄 사이먼슨의 살해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이먼슨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러 간 것을 확인하고 해당 신부를 방문하여 마지막으로 사이먼슨이 남긴 말이 무엇이었는지 추궁하지만, 넋이 나간 듯한 신부는 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암살범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다. 상부의 정치적 압력을 받은 쏜의 상관은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말고 종결할 것을 명령하지만 쏜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직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머지않아 자기 자신도 암살범의 추적을 받으며 여러 차례 위기에 처한다. 

 마침내 쏜은 자신의 보조자이자 은퇴한 노교수인 솔로몬 로스(78세였던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연기했다. 이 영화는 촬영 당시 방광암을 앓고 있던 로빈슨의 마지막 작품이었으며, 로빈슨은 촬영 종료 2주 후에 사망했다)와 함께 소일렌트 사의 가공할 비밀을 알게 된다. 원래 소일렌트는 해양 플랑크톤을 이용하여 만드는 식품이었는데, 해양생태계의 파괴로 플랑크톤도 절멸하여 더 이상 소일렌트를 만들 원료가 부족했다. 이에 소일렌트는 신형 식품인 ‘소일렌트 그린’을 제조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소일렌트 그린의 원재료는 플랑크톤이 아니라 죽은 시신의 인육이었다. 진실을 발견하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로스는 과거의 평화로운 광경을 보며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안락사를 선택하고, 마지막 유언으로 쏜에게 진상을 밝혀 책임자들을 징벌할 것을 부탁한다. 

 쏜은 시신들이 안락사 센터에서 소일렌트 사의 공장으로 운송되어 소일렌트 그린 제조과정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그는 소일렌트에서 고용한 암살범들에게 추격당해 사이먼슨이 고해성사를 한 성당으로 도주하고, 성당에서 암살범들을 모두 죽이지만 자기 자신도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그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실려가며 피투성이의 쏜은 이 영화의 명대사를 외친다. “저들에게 알려야 해, 소일렌트 그린은 인육이야!(You’ve gotta tell them! Soylent Green is people!)”

 


 〈소일렌트 그린〉이 인구 폭발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것과는 반대로,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은 인구 감소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런던.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전 인류가 불임에 빠졌고, 지난 18년간 새로운 출생이 없었다(P.D. 제임스의 1992년 원작 소설에서는 불임의 이유가 드러나 있으나 영화에서는 이유가 드러나지 않았다. 쿠아론은 영화의 핵심은 서사이며, 모든 사건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혐오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세상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쟁과 환경파괴로 무너졌고, 영화의 배경인 영국은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극도로 권위주의적인 경찰국가로 변질되었다. 그래도 영국이 세상에서 몇 안 되게 유지되는 나라이므로 전 세계의 난민들이 영국으로 향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불어난 난민들을 수용소나 난민촌에 몰아넣고 탄압하고 있다. 

 한때는 사회운동가였지만 이제는 냉소적인 관료가 된 테오 패런(클라이브 오언)은 어느 날 길거리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는데, 이들의 정체는 이민자들과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뭉친 무장투쟁조직 피시스(Fishes)이다. 피시스의 지도자는 테오의 전 아내인 줄리안 테일러(줄리안 무어). 줄리안은 테오에게 돈을 줄 테니 서아프리카 출신 소녀 키(클레어-호프 애슈티)를 위한 통행증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고, 테오는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 키를 위한 통행증을 발급받는다. 테오는 더 많은 돈을 대가로 피시스 조직원들과 함께 키를 목적지까지 동행하지만, 이들은 도중에 갱단의 습격을 받고 줄리안은 총에 맞아 사망한다. 남은 피시스 조직원 루크(추이텔 에지오포)와 테오, 키는 안전가택으로 이동하고, 여기서 키는 잔뜩 부른 배를 보여주며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테오에게 밝힌다. 영국 정부와 피시스 모두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키를 이용할 계획임을 눈치챈 테오는 키와 함께 오랜 사회운동가 친구이자 히피인 재스퍼 팔머(마이클 케인)의 집으로 은닉하고, 루크와 피시스의 추격을 받게 된다. 

 인류의 불임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과학자 집단 ‘인류 프로젝트(Human Project)’의 선박이 키를 구출하러 영국 남부의 해안도시 벡스힐(Bexhill)로 오는 것을 알게 된 테오는 키와 함께 의도적으로 벡스힐의 악명 높은 난민촌으로 들어가고, 이 안에서 벌어지는 고문과 빈곤, 억압 등 끔찍한 지옥도를 목격한다. 난민촌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키는 딸을 출산한다. 

 키가 딸을 출산한 다음 날, 난민촌에서 영국 정부에 대항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죽어간다. 테오와 키는 딸을 데리고 함께 지옥이 된 벡스힐 난민촌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무려 6분 18초의 롱테이크 컷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탈출 장면을 촬영하는 데는 모두 14일이 걸렸고, 재촬영 한 번에만 5시간이 걸렸다) 영국군과 무장봉기를 일으킨 난민들, 그리고 피시스에게 포위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키의 딸아이를 발견한 양측은 모두 경이로움에 빠져 싸움을 멈추고, 세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홍해 바다처럼 갈라선다. 마침내 테오, 키, 그리고 딸 모두 허름한 배를 타고 인류 프로젝트의 병원선을 향해 나아가며, 키는 테오에게 딸의 이름을 (테오와 줄리안 사이에 태어났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딜런’으로 이름지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총을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은 테오는 서서히 죽어간다. 


 〈소일렌트 그린〉이 그린 2022년과, 〈칠드런 오브 맨〉이 그린 2027년은 각각 재앙적인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024년은 두 영화에서 그린 미래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이다. 그러나 〈소일렌트 그린〉에서 묘사한 지구 온난화와 환경파괴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직접 다가온 재난이다. 당장 2023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였으며, 앞으로도 극단적 기상이변은 우리의 생명과 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그린 미래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자국 우선주의와 전체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선진국들은 이민자와 난민들을 배척하고 탄압하고 있다. 과연 오늘날 세상과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의 배경이 된 영국은 영화 개봉 10년 후인 2016년, 유럽으로의 이민을 배척하며 유럽연합으로부터 탈퇴하는 투표를 거쳤고, 현재 집권 중인 보수당 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을 르완다로 추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전쟁과 가난, 독재와 환경파괴를 피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이동하고 있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자국의 빗장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이러한 폐쇄성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보다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 난민 약 7,100만 명 중 선진국은 16%만을, 개발도상국은 84%를 수용하고 있다.

 영화는 영화라고만 말하고 싶지만, 현재 우리의 현실은 두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그린 환경파괴와 민주주의의 후퇴, 그리고 타자의 배척을 모두 닮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2024년 현재가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

윤태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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