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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엔 프리마

 인생 최초의 차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이야 혈관에 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흐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커피를 달고 사는 삶이다. 이제 나는 당이 좀 떨어졌다 싶으면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더블 에스프레소 칩 프라푸치노의 우유를 오트밀크로 바꾸고, 에스프레소 휘핑크림으로 변경한 후 통 자바칩 토핑까지 추가해서, 어지간한 식사보다 가격도 칼로리도 무시무시한 메뉴를 아무렇지 않게 주문할 수 있는 차가운 도시남자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차로 분류될 만한 음료를 마시게 되었을까. 자판기에서 150원을 넣고 뽑아먹던 걸쭉하고 달큼한 율무차일까, 아니면 초록색 깡통에 담긴 어릴 적 최애 음료 마일로일까. 아마 내 삶에서 처음으로 차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마도 ‘프리마’였을 것이다.

 누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말 대신 손가락으로 답하곤 하던 나이, 어른들이 마시던 커피의 ‘국룰’은 ‘둘. 둘. 둘.’이었다. 커피 둘, 설탕 둘, 그리고 프리마 둘. 크림이 너무 비싸고 귀하던 시절 커피용 크림의 대용품 프리마는 ‘커피엔 프리마’라는 카피와 함께 말 그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른들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 근처를 지분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커피잔에 프리마와 설탕을 티스푼으로 두어 번 넣고 남은 뜨거운 물을 쪼르륵 부어서 주셨다. 하얀 가루 위로 투명한 물이 떨어지고, 작은 수저로 살살 저으면 이내 컵 안의 액체는 우유와도 같은 흰 빛깔을 뽐내며 소용돌이치고, 뜨거운 김과 함께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올라온다. 유래 불명의 이 음료를 ‘프리마’라고 불렀다. 커피 가루를 메인으로 끓인 음료가 커피이니, 프리마를 메인으로 끓인 음료를 프리마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뜨거운 김을 후후 불어가며 잔 아래 살짝 덜 녹은 설탕이 보일 때까지 정신없이 마시다 보면 몸에 온기가 돌고 입 안에 단맛이 오래도록 남았다. 금방 한잔을 뚝딱 해치우고 조금 더 마실 수 없을까 눈치를 보아도 새 잔이 주어진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프리마를 실컷 타 마시는 것이 어릴 적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고소하고 느끼한 프리마의 달콤함은 마냥 달기만 하던 다른 음료들과는 다른 정서적 풍미가 있었다. 얇고 고급스러운 성인의 찻잔에 담긴 커피하고 비슷한 무언가를 그들과 함께 마시다니! 프리마를 홀짝이며 알아듣지도 못할 어른들의 대화에 짐짓 귀를 기울이던 그 순간, 혼자서 어른들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서 버린 꼬맹이의 기분은 입안의 달콤함보다도 몇 배 더 짜릿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자란다. 언제부터 프리마를 마시지 않게 되었을까. 프리마를 더 이상 마시지 않게 된 시점부터 나의 유년기는 끝이 났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면 대여섯 개는 보일 정도의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났고, 다들 아메리카노, 라떼를 찾는 시절이 되었다.

 그렇게 기억에서 프리마가 잊히고 있을 즈음,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프리마가 도시락 컵라면과 함께 큰 인기를 끌고, 카자흐스탄에서는 빵 반죽에 프리마를 넣는 등 중앙아시아에서 프리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지금은 세계 20개국이 넘는 나라에 수출되면서 오히려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외에서 현지화 전략을 통해 다양한 제품 개발로 각국의 수요를 충족시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보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잊고 있던 옛 친구의 성공 소식을 전해 들은 기분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퇴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한때는 너무나도 열광하다가 어느 순간 주위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된 것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 맞춰 역할이 달라질지언정 가치 있는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같이 혁신적인 인공지능의 소식들이 들려오며, 다양한 직종들의 위기와 함께 변호사 역시 위기라는 말도 들려온다. 하지만,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변호사의 가치가 사라지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방식이나 역할의 변화가 있다 해도 그 본질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요소다.

 아메리카노에 억지로 프리마를 넣을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새로운 역할이 있을 테니. 그 변화의 시기에 눈을 밝히고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어쩌면 그것은 또 다른 도약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김유중 변호사
●법무법인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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