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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의 목적 달성을 돕는 것처럼

 스타트업에서 준법감시인으로 근무할 때 내 목적은 회사가 사소한, 또는 중대한 규제 이슈로 인해 성장에 제약받지 않도록 돕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은 17년 만에 새로운 금융산업이 법률로 제정된 업권인 만큼, 아직 어떤 종류의 사고가 발생할지 분명하지 않다. 업권에 대한 감독 당국의 신뢰나 시장의 성숙도가 부족하다 보니, 발생가능한 사고나 규제 이슈를 파악하고 대비하고자 했다. 예컨대 법령상 공시나 광고 규제, 설명의무 등과 같이 조금만 세세히 신경 쓰면 달성할 수 있는 규제들은 답안지의 득점 포인트처럼 정리하여 자주 체크하고 정비하곤 했다. 회사는 비즈니스 성장과 자금조달, 전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어렵게 취득한 라이센스를 보호하고 회사의 성장에 규제 이슈가 큰 화두가 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업무 목적이었다.

 대형 금융회사에서 사내변호사로 근무할 때는 약간 달랐다. 영업점이 4,000개가 넘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회사의 성장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목적에 부합하는 자문을 했다. 즉, 거기서 내 목적은 직원 개개인의 업무를 돕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사한 건이라도 질문하는 직원의 수행 업무에 따라 답변에는 온도차가 있었다. 예컨대 영업점의 개인고객 수신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면책되도록 상당히 보수적인 답변을 했다. 그들을 위한 내 고민의 방향은 고객 편의나 보호가 아니라, 회사의 면책과 직원 보호였다. 한편 여신 담당 직원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답변을 했다. 채권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집행방법을 고민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은행 계좌에 여러 채권자들이 존재하는 경우, 그 순위가 분명하더라도 은행 직원에게는 후순위 채권자들의 민원 가능성 차단을 위해 공탁하라는 답변을 드렸다. 공탁금 회수를 위해 고객이 치러야 할 번거로운 절차를 이해하더라도 말이다. 한편 여신 담당 직원에게는 선순위나 상계적상 등을 분명하게 해석하여 채무자의 다른 채권이나 은행이 보유하는 예금채권 등에 대하여 은행이 신속히 집행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가급적 사업을 벌리기 싫어하는 본부 직원들에게는 규제를 보수적으로 해석하여 사업이 어려운 논리를 구성하여 자문하고, 가급적 사업을 벌리고 싶어 하는 임원에게는 규제의 취지, 해결 방법, 회피 방법 등을 고민하여 사업이 가능한 방법을 자문한다.

 최근 개업을 하여 수년 만에 다시 송무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의뢰인의 목적을 고민하게 된다. 의뢰인들의 목적, 그러니까 변호사를 찾아오는 이유는 결국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민사소송이든 형사소송이든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뢰인이 보다 많은 돈을 보다 신속하게 받도록, 또는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른 법원의 판단을 리서치 하고, 주장 가능한 법리들을 고민하고, 공들여 서면을 써서 제출하는 그 모든 행위들의 목적은 결국, ‘떼인 돈 받아 드립니다’가 아닐까 한다. 가끔 이 소송의 목적은 재산권일까, 수감자의 시간 때우기일까, 누군가의 분풀이일까 싶은 정도로 무용한 주장들이 범람하는 것도 보기는 하지만, 소송이라는 제도가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재산권으로 제한된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중심을 잘 지키고 싶다.

 흥미로운 일이다. 사적인 영역을 돌이켜보면, ‘목적’에 대해 잘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의 목적에는 답을 낼 수 없고, 사람을 만나는 목적을 생각하면 계산적이고, 존재의 목적은 철학적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좋은 기분으로 건강하고 성실히 살면 그뿐, 이유나 목적 탐구는 에브리맨의 사고 수준 밖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이 에브리맨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온통 타인의 목적들인 것 같다. 나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타인의 목적을 이해하느라, 내 개인의 목적은 발견‘되’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지. 개업 초기 막무가내 및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일들을 수행하면서 우선순위를 고민하다 보니, 문득, 드디어, ‘나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삶이나 존재의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가 의뢰인의 목적을 이해하고 돕는 것처럼, 내가 나를 도와 지금 두 발의 목적지가 어디를 향하는지 의식적으로 점검해야겠다.

반승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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