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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기록서, 변호사와 의뢰인의 소통과 협력의 매개체

 개업변호사의 여정은 직업적인 자아를 발견하고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변호사는 다양한 의뢰인을 만나며,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상호작용한다. 의뢰인과의 인연은 법률사무소의 성격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개업하면서 ‘혼자 일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다. 법률적 지식이나 경험, 노하우는 개인적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지만, 적어도 업무와 관련해 의뢰인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단거리이든 장거리이든 이인삼각(二人三脚) 관계에 있다. 서로가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데, 양쪽이 발을 맞추지 못하고 한 쪽이 앞서거나 뒤처지면 넘어지기 일쑤이다. 변호사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로서 의뢰인의 속도를 조절해 주기도 하면서, 의뢰인이 넘어질 때 같이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도 해야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과의 협력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자신의 능력이나 판단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 대리인에 불과하며, 최종 결과는 늘 의뢰인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사건 수행의 중요한 분기점에 대한 선택은 의뢰인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사실, 개업을 하고난 다음 의뢰인의 상황을 어떻게 고려해야 가장 의뢰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이러한 질문은 오로지 해당 의뢰인의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만이 비밀유지의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문자답하는 은밀한 고민이기도 했다.

 위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기록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수고스러울 수 있지만, 최선의 노력이었다. 분량이 짧더라도 의뢰인과 상담한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상담 직후의 시간적 공백을 대략 30분에서 1시간 정도 확보한 다음 상담 자체를 복기(復棋)하듯이 기록을 남겼다. 중요한 쟁점이나 사실관계, 의뢰인의 진술이나 고민점, 그리고 제공받은 증거가 진실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의문이 있을 때, 지금 상황에서 내린 판단이 미래에도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각 변수들을 체크하여 기록했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면서, 상담에 참여한 대화자가 아니라 기록자의 입장을 취하면서 상담 현장에서 놓친 의문점을 발견할 수도 있었고, 조심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록서를 작성한 후에는 문서 내용을 핵심적으로 정리하여 암호화된 보안문서로 만들어 의뢰인만 열람할 수 있도록 보냈다.

 상담기록서를 작성한 후,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상담기록서가 변호사만이 아니라 의뢰인의 불안감도 줄여주었기 때문이라 본다. 예전에는 변호사가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해도, 그 기록이 메모지에만 남아 있는 경우 의뢰인으로서는 확인을 하기 어렵다. 의뢰인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담 내용을 기억하고자 하는데, 그 방법으로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변호사의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 녹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의뢰인이 변호사가 자신을 상담한 기록을 성실하게 작성하고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는 보안문서로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몰래 녹음에 대한 태도 역시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다.

 상담기록서를 통해 의뢰인은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의뢰인이 변호사의 글을 단순히 법적 절차에서의 공격과 방어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솔직하고 가감 없이 가능성과 우려점을 고려하여 작성한 글을 읽을 때, 자신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상황에 더 적합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는 의뢰인들의 경우, 그들이 변하는 과정이 상담기록서에 담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억울하거나 괴롭다는 감정에 휩싸여 별 소득이 없는 소송을 하려 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합의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기록을 시작한 동기는 불안과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로부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변호사는 상담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사건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으며, 의뢰인들은 자신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담은 단순히 수임을 위한 단계를 넘어 중요한 업무로 거듭났으며, 상담비용에 대한 의뢰인의 입장도 변화했다. 구두로만 상담을 받는 것보다 상담기록서를 제공할 때 의뢰인들이 더 기꺼이 상담료를 지불하고자 한 것이다.

 미지의 길을 탐색하면서 이전에 걸어온 길에 하얀 조약돌을 두어 나아간 것과 같이, 상담기록서는 변호사가 의뢰인과의 대화를 정확하게 기록하여, 의뢰인이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도구이다. 또한, 법률사무소의 성격에 따라 상담이 중요한 분야도 분명히 있다. 개인적으로 ‘법 상담학’이란 전공을 좀 더 연구해 보고 싶은데, 개업변호사들과 나름대로 상담에 관한 철학과 방법론에 대한 논의의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유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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