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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

 시간에 쫓겨 살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하루 24시간을 자유의사와 자유의지에 따라 온전히 보내고 있는지 자문하곤 합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인 헌법은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주거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 · 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경제상의 자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감히 비교 우위를 논할 수 없겠지만 신체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헌법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는지요.

 헌법에선 신체의 자유로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 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최근 논란이 된 ‘법정 구속’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청와대 특별감찰반 감찰 무마 등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 “범행을 인정하거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범죄 사실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지 않은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진지한 반성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며 조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도 법정 구속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함께 기소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으나 법정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원심과 똑같은 실형에 처해졌는데 구속되지 않은 건 국민들의 법감정으로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법원 내부에서도 “판결에 자신이 없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원심 및 당심 소송의 경과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들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항소 기각하면서 따로 법정 구속하지는 않는다.’ 재판부가 선고 당시 법정에서 밝힌 이유입니다. 대법원이 재판예규인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를 2020년 말 ‘피고인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할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로 개정해 이듬해 시행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뒤 법정 구속이 줄어든 것일까요.

 통계를 들여다봤습니다. 2020 ∼ 2022년을 기준으로 보면, 불구속기소 됐으나 법정 구속된 전체 피고인 수는 매년 1만 3,000명대를 유지했습니다. 개정예규가 시행된 2021년 소폭 줄었다가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예규 변화의 영향이 크지 않은 겁니다.

 심급별로 1심은 감소한 반면, 항소심에선 증가 추세입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0년 1만2,441명, 2021년 1만 2,034명, 2022년 1만 1,819명이1심 선고 시 법정 구속됐습니다. 같은 기간 항소심은각 959명, 1,064명, 1,53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상고심의 경우엔 2020 ∼ 2022년을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쯤 되면 조 대표가 어떻게 법정 구속을 면했는지 궁금해집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선고 당시 법정에서도, 190쪽 분량의 판결문에도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고 본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 않았습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고위 공직자 출신의 전직 대학교수. 조 대표의 이런 ‘사회적 지위’가 주효했던 게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1심 재판부도 조 대표를 법정 구속하지않은 이유 중 하나로 사회적 유대 관계를 든 바 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 앞엔 재판 지연 해소 못지않게 국민 신뢰 회복이란 중차대한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사법부가 최후의 보루라는 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유전무죄’, ‘전관예우’라는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습니다. 언론이 다룰 수밖에 없는 공인에게 더러 법의 잣대가 엄정히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 이유가 아닐까요.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절차적 정의, 즉 절차의 정당성과 공정성이 중요합니다. 법의 잣대가 달라서도, 법의 잣대가 사람마다 다른 고무줄처럼 보여서도 안 됩니다. 문제의 재판예규를 개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피고인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할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구속한다’,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형량을 선고받았는데도 누구는 법정 구속되고 누구는 종전과 같이 거리를 활보하며 신체의 자유를 누린다면, 과연 법치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법관은 피고인을 구속할 재량이 있지만 그 재량이 사회적 통념, 상식에 반해 합리적인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박진영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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