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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어떻게 보면 정년이 없는 직업이잖아요. 저도 꾸준히, 늙어서도 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최재웅 배우 인터뷰

Q. 많은 분들께서 배우님과 <비밀의 숲> 장건 역으로 안면을 트게 되신 것 같아요. 당시 시나리오 속 장건이라는 캐릭터를 배우님께서 어떻게 연기하고자 하셨는지, 또는 장건 형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비밀의 숲〉 극본 자체는 당시 이수연 작가님의 데뷔작이었는데, 캐스팅이 또 잘된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비밀의 숲〉에서 제가 맡은 장건이라는 캐릭터는 대본상에서 유일하게 심각하지 않은 캐릭터였고요.

 촬영할 당시에는 경찰 팀, 검사 팀을 나누어서 촬영을 했는데 검사 팀의 캐릭터들은 심각한 분위기에다가 캐릭터들도 대부분 무게가 있는 그런 역할들이었어요. 이에 반해 경찰 팀은 상대적으로 활기찬 느낌이 있어서 촬영 때에도 분위기가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장건 역할에 대해서는 대본상 농담도 많이 건네고 되게 자유롭게 연기하라는 디렉션도 있었습니다.

 다만 기존에 경찰 캐릭터들을 이미 훌륭하게 연기하신 선배님들도 많았기에, 제 나름대로 경찰 캐릭터를 연기할 때 실제 경찰 분들을 많이 만나서 배우려고 했었어요. 제가 MBC <더 게임>에서 한동우라는 강력1팀장 역할을 맡았을 때에는, 광화문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에 가서 실탄 사격도 직접 해보고 그랬습니다. 경찰 분들도 실제 경찰 업무나 역할을 알려주시는데 굉장히 협조적이셨고, 그래서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경찰 분들이 있어요. 이런 걸 하면서 장건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직업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자연스럽게 그리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Q. 그래서 시청자분들에게도 장건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을 것 같아요. 좀 편한 캐릭터, 자연스럽게 농담 건네는 캐릭터가 있으면 극 전체적으로는 심각한 이야기들이 흘러가더라도 딱 그 캐릭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시청자들도 마음이 좀 편해지잖아요.

 그렇죠. 감독님께서도 검사 쪽 스토리는 좀 무거운 가운데 경찰 쪽은 좀 자유롭게 가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에 분위기도 되게 좋았어요. 조승우 배우와 배두나 배우는 모두 동갑이고 지금은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어요. 데뷔작임에도 작품도 워낙 잘 되어서, (시청률보다도) 특이한 드라마가 나왔다고 화제성이 많았습니다.


Q. 작품마다 맡게 되는 배역이 다를 때, 이를테면 차가운 성격의 캐릭터를 맡았다고 하면 촬영장 밖에서도 그런 성격을 좀 유지하려고 하시는 편인가요?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과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딱 그 인물로 들어가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역할이든 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작품마다 좀 다르게 가져가려고 합니다. 최근 하고 있는 <아트>라는 연극은 코미디니까 제 스타일대로 변주를 주기도 하고, 좀 심각한 뮤지컬 같은 경우에는 가오를 잡기도 해요(웃음).


Q. 배우님께서 2003년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하신 후 20년이 넘었어요. 거의 공백기 없이 한 길만 꾸준히 걸어오셨는데, 비결이 있나요?

 <모자와 신발>이라고 대학교 때 알바로 했던 아동극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는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제 데뷔작이 맞습니다(편집자 주: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된 한국 뮤지컬계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독일의 뮤지컬 <Line 1>이 원작이나 2001년에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독일로 역수출하기도 하였으며 황정민, 설경구 등의 배우들도 거쳐 간 작품으로 유명함). 극단 학전에서 제작한 것인데, 김민기 선생님께서 최근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현재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무튼 제가 어렸을 때에는 예고라고 하면 안양예고랑 계원예고 딱 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제가 마침 계원예고를 가게 되었어요. 조금 일찍 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니 감히 뭐 다른 걸 한다거나, 한눈을 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롯데월드 예술극장이라고 거기에서 뮤지컬을 많이 했는데, 중학교 학생들이 공연 단체 관람을 많이 갔어요. 저도 멋모르고 갔다가 <레미제라블> 뮤지컬을 보고서, 이 길로 접어들게 된 거죠.


Q. 좀 애매했다면 이제라도 공부해야지, 이런 생각을 잠깐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탄탄대로를 걸어오신 것 같아요.

 대학교 연극영화과도 당시에는 몇 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우리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가 서울에 있으니까 거길 가라, 라고 하셔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가게 되었고 운이 좋아서 하나 공연이 끝나면 다음 작품도 이어서 하고 그렇게 됐어요. 대학교 때부터 연극한다고 유학 가고 그랬으면 아마 다른 길도 접해보고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아무것도 모를 때,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하게 된 연기가, 인생에 이게 다 인가보다 하고 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운이 좋았던 게, 남경읍 선생님께서 제 은사셨어요.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분을 제가 선생님으로 만났던 거죠. 원래라면 제 전공이 연극, 연기, 정극 이런 것이었는데 2천년대 들어서면서 뮤지컬이 붐을 일으켰거든요. 지금 제 실력이면 뮤지컬을 하지도 못했을 텐데 그때 산업이 부흥하면서 마침 제가 뮤지컬을 배우고 또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운이 좋았죠. 요즘 후배분들을 보면 실력이 너무 좋아 저도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Q. 물 들어올 때 노를 잘 저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렇게 느껴지긴 하네요. 그래도 오래도록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공연하는 것이 저는 재밌습니다. 공연 3시간 전에 가서 연습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스케줄이 자유로운 것도 좋습니다. 물론 밤늦게 끝나기는 하지만요.


Q. 10년 전 한예종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꾸준히 활동하고 재밌게 작업하는 것이 계획이다’라고 하셨는데요.

 그건 아직도 유효합니다.


Q.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각 장르에서 필요한 역량이 다를 것 같습니다. 배우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요즘에는 장르가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이 제일 재밌어요. 노래하고, 춤추고, 그런 게 저에게 제일 편합니다. 뮤지컬이 시작하면서 프롤로그에서 오케스트라 음악이 처음 딱 나올 때, 아직도 가슴이 떨립니다.

 그래도 기본은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전공이 연극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다른 장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극, 뮤지컬이 좀 더 라이브한 편입니다. 관객석에서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고, 어제 공연한 것과 오늘 공연한 것도 차이가 있거든요. 또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웃고 하면서 관객들의 참여가 늘어났는데, 저는 이게 속이 시원해요. 그전에는 웃겨도 막 관객분들이 애써 참고 그랬거든요. 연기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는 오케이 사인이 날 때까지 계속 찍을 수 있으니 최상의 퀄리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거의 쉬지 않고 촬영하고, 영화도 하루에 2 ~ 3가지 씬을 집중해서 찍습니다. 다만 제가 2007년에 <불꽃처럼 나비처럼> 영화를 처음 찍을 때 모든 스텝들이 나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Q. 배우님의 다른 인터뷰를 보니, 대배우답지 않게 부끄러워하시는 성격이 있으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도 은근히 샤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MBTI I인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제 친구들도 그래요.


Q. 아, 조승우 배우님과 친분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조승우 배우님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이제는 친하다기보다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그런 개념조차 없어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친한가, 안 친한가, 이런 생각을 더 이상 안 하죠. 25년, 30년 된 친구는 실제로 만나도 별 말도 안 하고, 그냥 같이 있으면 편해요.


Q. 이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뮤지컬 <그날들>의 ‘무영’이 본인과 가장 비슷한 성격이라고 하셨어요. 밝고 유쾌한 성격의 인물로 극 중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데리고 위협으로부터 도망친다고 하던데, 이러한 점이 배우님과 닮았나요?

 저는 긍정적이고 별로 걱정이 없는 사람이에요.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냥 오케이, 해보자 했는데 그동안 살아왔던 걸 보면 운이 좋아서 이런 성격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막내셔서 집에서 오히려 신경을 덜 썼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도 자유롭게 자란 편입니다.

 사실 제 나름대로 걱정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제가 예고에 간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당연히 반대하실 걸로 예상을 하고 어떻게 말할까 고민, 고민을 하다가, 정말, 정말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한번에 오케이를 받았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그래, 잘해보렴’하고 응원을 해주셨어요.

 또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 연극 세트 만들고 학교에서 잔다고 그랬던 적도 많았습니다. 전화로 ‘자고 갈게’ 하면 부모님께서 그런 것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고등학생이 외박을 한다는데 알았다고 하시는 부모님이라니, 당시 기준으로 보수적이지 않으신 부모님이셨어요. 이런 것들로 인해 지금 제 성격, 긍정적이고 걱정이 없는 이 성격이 지금 장착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뮤지컬 <그날들>은 당시에 초연이었고 제가 10년 넘게 공연을 했습니다. 작가분께서 제일 농담도 잘하고,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스타일로 무영이라는 캐릭터를 그려주셨어요. 그땐 저도 어렸으니까 그런 역할을 하고, 또 제 성격과도 맞았던 것 같아요.


Q. 차기작을 고를 때 보통 창작, 초연 작품을 선호하신다고 하던데, 이번에 연극 <아트>의 세르주 역은 3번째로 하시네요?

 연극 <아트>는 대본이 대학생들 교재로도 사용될 만큼 정말 좋습니다. 등장인물이 딱 3명만 등장하는데 셋 다 성격이 정말 다르고, 대본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잘 짜여 있습니다.

 좋은 대본이란 배우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대본이기도 합니다. 제가 창작을 선호하는 이유는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라이선스 뮤지컬 같은 경우에는 이미 짜인 것을 똑같이 따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해야 할까요. 어느 시점에서 노래하고, 움직여야 할지가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서 조명/음악도 다 이미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배우 입장에서는 노래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무대입니다. 이에 반해 창작 작품의 경우에는 리딩 때부터 계속 연출을 신경 쓰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제가 작품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좋습니다.


Q. 요즘에는 장르 구분도 없고, 작품들도 한층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고전 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각 잡고 딱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인데, 요즘 작품들은 조금 더 열려있는 편인 것 같습니다. 뮤지컬 같은 경우에도 예전에는 <42번가>, <레미제라블> 같은 것들이 대세를 이끌어갔다면, 요즘에는 정말 작품이 다양해요. B급 뮤지컬, 퀴어 뮤지컬 등 마이너한 작품들도 국내에 많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변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배우 입장에서도 상황이나 작품에 딱 맞는 역할, 어떤 하나의 통일된 정답을 소화하는 게 아니고, 새로운 텍스트들을 접하면서 그걸 파악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시장 전체적으로도 30 ~ 40년 된 정통적인 작품들을 넘어서서 다양한 사회 변화를 포용하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이런 것들을 통해 다른 수요층들이 또 생기는 것이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예술 장르가 다양해지면 이에 맞게 다양한 수요가 생겨날 것 같습니다.


Q. 아무리 베테랑 배우라고 해도 촬영이 힘든 점들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공연 같은 경우에는 두 달 동안 연습을 하지만, 촬영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호흡을 맞춰야 할 때도 많아요. 그래서 리허설을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52시간 근무가 도입되고, 사전제작이 늘어나면서 촬영 현장도 많이 좋아졌어요.

 전에는 촬영하면서 동시에 같이 방송되다 보니 찍고 내보내기까지 많이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OTT가 본격적으로 오면서 드라마 시리즈도 거의 영화처럼 사전제작으로 작업하니까, 좀 더 여유가 있고 퀄리티도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16부작이라고 한다면 1부부터 16부까지 대본이 이미 다 나와 있고, 소위 말하는 쪽대본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Q. OTT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외국 작품 출연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도 외국에 나갈 때마다 외국 공연을 보면서 많이 느끼고 배웁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국내 작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행을 가도 저는 우리나라가 좋아요. 이 복잡하고 답답한 빌딩 숲, 광화문이 전 좋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데 가도 2 ~ 3일은 좋은데 곧 집에 가고 싶더라고요(웃음). 그게 제 체질인가 봐요.


Q. 이후에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인물이나, 아니면 다른 것들이 있을까요? 어디 산에 등산가기 뭐 이런 활동들도 포함해서요.

 저는 늘 똑같은데, 옛날부터 그냥 꾸준히, 재밌게 하자는 것이에요.

 작년에 <아트>를 이순재, 백일섭, 노주현 선생님 세분이서 같이하셨는데, 연습하시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는 올해 구순이시거든요.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대사를 까먹든 말든 간에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어떻게 보면 정년이 없는 직업이잖아요. 저도 꾸준히, 늙어서도 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정리 : 유승연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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