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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환경지표생물



 환경지표생물

어느 날 신생아실에서
우는 한 아기의 울음소리에
더 크게 따라 우는 아기들을 보았습니다
쓸쓸한 가죽을 쓰고 태어난 이 세상 모든 연약한 생물들의
아름다운 동맹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울었던 울음은
우리가 맨 처음 누군가를 위해 울었던 본성을 기억하기 위한
마중물입니다
당신이 드라마를 보면서 꺼억꺼억 따라 우는 것은
아득한 기억에서 그날의 아름다운 동맹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음은 일종의 선약입니다
지금은 유빙처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떠내려가지만
언젠간 한 곳에서 만나 몸을 녹이며 악수를 청하게 될 것입니다

외로운 다큐멘터리처럼
지금 긴 침묵의 보호색은 배경을 의심하며
여기저기 소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투명한 침묵은
더 이상 천연기념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진
희미한 손가락을 꺼내
울음이 깃든 곳을 방문하고 가십시오
환경지표생물처럼
이 견고한 세계의 억양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가십시오

어쩌면 모든 것이 무효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요
그럼에도 불굴(不屈)하고
우주가 당신을 뱉어냈던 한 호흡으로
죽음에 임박한 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듯
이 세상 모든 연약한 생물들이 냈던 울음소리를 온몸으로 기록하고 가세요

당신의 그 쓸쓸한 가죽이 울음에 젖어 있는 동안
그 어떤 태양도 당신을 태우지는 못할 것이니




어느 날 다큐멘터리에서 환경지표생물이 나오는 것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우리는 환경지표생물을 통해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또는 오염되었는지, 몇 급수의 물인지를 알 수 있다. 각 생물의 존재 자체가 환경을 측정하는 감지기가 되는 것이다. 어떤 종의 출현이 커튼을 치고 있는 세계의 맨얼굴을 보여준다는 건 참 흥미로운 일이다. 만약 내가 환경지표생물이라면 이 세계의 맨얼굴은 어떠한가? 고백하건대 나는 지난 몇 년간 비정한 세계 안에서 울음소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미세하게 떨며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이 바쁘고 생활에 치이다 보면 간헐적으로 들리던 소리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기억 속에 정거장이 있다면 내가 가장 마지막에 울었던 곳에 내려 본다. 봄날, 4월의 봄날, 꽃은 천지사방 피었지만 서로 같은 내상을 입었던, 사무치게 미안하던, 경악스럽던 봄날. 

쉽사리 만질 수 없는 슬픔이 흘러내린다. 누군가는 남의 일이라고,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한다. 이 세계의 시간은 직선이어서 곡선으로 흘러내리는 일은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일이라 여긴다. 하지만 엄마의 품이 그러하듯 따듯한 생명이 깃든 것은 항상 곡선이었다. 선과 선이 포개져 어깨동무할 때 생명줄이 이어지고 사람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신생아들이 따라 우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울음을 통해 “사람”임을 증명 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아픔에도 반응할 수 있을 때, 연약한 이들과 함께 울음에 젖어 있을 때, 사람이라는 種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의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알고 또 그 울음을 껴안아 온몸이 젖어 있을 때, 그 어떤 폭압적인 태양이 오더라도 우리를 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수_김원경 사진.jpg

김원경
200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수상
서울예대, 경희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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