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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업변의 사소한 경험담

 많은 변호사들이 절차탁마 치열한 고민 끝에 개업을 결행할 테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처럼 홧김에 개업을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회사의 치열한 사내정치의 늪으로부터, 혹은 어느 법무법인의 가족 같은 단란함으로부터, 그것도 아니면 심신을 갈아 넣는 하루하루를 버티다 못해 결국 찾아온 번아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벼락같이 시작한 개업변 생활이지만, 그래도 초창기의 하루하루는 화창했다. 마치 퇴사 전 반차를 내고 오후에 텅 빈 버스에 올라 햇살을 맞으며 창밖을 바라볼 때처럼. 그러나 자객처럼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난관들, 이를테면 카드 대금 결제일, 직원 급여일, 4대 보험 납부일 같은 것들이 다가오면 가슴은 조여온다. 그러나 불안한 상태도 만성화되면 둔감해질 수 있는 것. 그렇게 어느덧 개업한 지 5년의 시간이 지났다.

 ‘개업상식’ 공유를 위해 주어진 이 귀중한 지면에 나는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부족한 내가 개업변으로서의 ‘상식’을 이야기하기가 감히 주제넘게 여겨져 조심스럽다. ‘무료 상담은 지양하고 상담료는 반드시 미리 고지하라’, ‘상담료를 아끼는 의뢰인은 수임료도 아낀다’, ‘전화로 수임료를 물을 땐 즉답하지 말고 방문하도록 유도하라’라는 등의 각종 암묵지(?), 마케팅, 외향성과 사교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는 여러 변호사님께서 앞서 다루셨으므로, 그와 겹치지 않는 개인적인 경험을 적어 보고자 한다.



피해자 대리의 추억

 우리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을 확장해 사건을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은 개업변의 특권 중 하나가 아닐까.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게 온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사기 피해자 대리 사건이었다. 

 우연히 소개를 받아 사기 피해자들을 대리하기 시작한 것이 4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여실히 깨달은 점은 나는 그저 쪼잔하고 소심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 선의, 의협심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몇몇 피해자들에게 서운함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차라리 가해자는 돈이라도 많이 주고 변호사에게 고마워하기라도 하는데, 내가 겪은 어떤 피해자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변호사에게 쏟아붓고 정서적으로 심하게 의존했다. 내가 변호사인지 심리상담사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일할 때는 분명 본전 생각 없이, 계약한 업무 범위와 무관하게 몰입했고, 그걸로 만족하면 그만이었겠지만, 한편으로 나는 피해자가 내 노력을 알아주고 고마워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피해자들이 내 노력과 헌신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계약하고 돈 받았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를 계약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할 때 극도의 서운함과 분노를 느꼈다. 서로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걸 확인하면 그만이었을까. 내 그릇이 딱 그 정도였는데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니 피해자 대리를 할 때는 위임계약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특히 위와 같은 투자 사기 사건의 경우, 진행 도중 예상치 못하게 업무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일하는 입장에서도 욕심이 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추가로 고소나 가압류를 하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런 추가 업무에 대해 일일이 피해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면 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피해자는 대체로 비용을 지불할 물적 · 심적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계약 체결 당시 예상치 못했던 추가 비용을 청구받을 경우 변호사에 대한 신뢰까지 깨질 수 있다. 따라서 피해자 대리를 하려면 애초 위임계약을 할 때 업무 범위를 세밀하게 나누어야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돈 받은 것보다 일을 더 할 각오를 해야 한다(‘계약에 실패한 변호사는 용서할 수 없다’). 내 경우 지금까지는 보통 후자로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기적과 다짐

 주지하듯이 변호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녹록지 않다. ‘국가가 마련해 준 정원 통제의 안락한 보금자리 내에서 달콤한 지대를 챙겨 먹는 고소득 직종’이라는 세간의 인식, ‘그래서 변호사를 먼저 죽이자’라는 외침들.

 변호사 업계 내부에도 절박함과 자조가 넘친다. ‘변호사’라는 단어를 살짝 비틀어 만든 ‘벼농사’, 그리고 ‘벼넥시트(영국이 EU를 탈퇴했던 브렉시트 사태에 빗대어 만든 용어로, 변호사가 법조계를 떠나는 것을 의미)’라는 용어가 이를 방증하는 듯하다. 말라가는 천수답 내에서 비를 기다리는 수많은 개업변들, 그리고 이들을 겨냥해 어느새 법조에 안개처럼 스며들어 이제는 장강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각종 마케팅, 그 와중에 누군가가 상류에 설치한 거대한 댐 때문에 하류의 물줄기가 마르기도 하고, 시중에는 육각수 먹여 키웠다는 정체불명의 농작물들이 버젓이 거래되기도 한다. 변호사가 된 이상 살아남는 방법은 사건의 객단가를 높이거나 박리다매로 사건을 수임하여 공장식으로 돌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변호사를 그만두거나(벼넥시트)라는 식의 자조적인 농담이 오간다.

 뒤통수를 치고 맞는 사람들의 일을 다루고, 때로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기도 하면서 씁쓸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개업변 생활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마치 기적과 같은 일들을 겪을 때가 많았다. 공들여 고민해도 답을 찾지 못하던 어느 날 아침 머리를 감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떨어질 때, 증거신청으로도 얻지 못한 입증자료를 불쑥 블로그를 통해 연락해 온 누군가로부터 받던 순간, 억울하게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한 사건의 첫 기일 재판장님이 핵심 쟁점을 콕 짚어주고 판결문에도 항소이유서에 기재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주었을 때의 감동. 그 외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감사한 순간들. 운과 기적 덕분이라고밖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그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도 아닌 나는 스스로를 ‘자영업자’라고 자칭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생계형’ 변호사로서 대가를 받고 용역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냉정한 법률가의 시선을 유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뢰인의 입장에 공감하고 때로는 빙의하면서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어쩌면 나를 변호사로서 일하게 해주는 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남들이 뭐라 하건 내가 성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믿기로 다짐했다. 

 변호사를 ‘산다’라는 말에 상처받고 변호사를 가리키는 경멸의 언사에 주눅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변호사는 분명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해결해 주는 사람, 성스러운 일을 하는 성직이 아닌가. 더 좋아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면, 비록 지금은 손해로 보일지라도 먼 훗날에는 반드시 큰 보람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지만 스스로를 단속하려 애써본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논에 물이 넉넉하길 바라 본다.

이상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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