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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상념] 표준근로계약서
한동안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장년층의 공감을 자아내며 누적관객수 1,0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 그런데 <국제시장>은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 외에 한국 문화산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제작비 140억 원이나 투입되었던 이 영화가 제작 스태프들에 대한 표준근로계약서(이하 ‘표준계약서’)를 제대로 이행한 첫 번째 대작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영화 관계자들의 오랜 노력으로 지난해에도 표준계약서를 이행한 첫 영화 <관능의 법칙>이 나오기는 했지만, <국제시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획 단계부터 제작의 전 단계에 표준근로계약이 적용되어 만들어졌다. 또 그 적용범위에 있어 신참 스태프들까지 예외를 두지 않았고, 1,000만 명 돌파에 따른 보너스도 고루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배급사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안 들었던 추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표준계약서. 그러나, 윤제균 감독이 “표준근로계약을 통해 순제작비가 3억 원 가량 상승했지만 현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철저한 준비로 제작에 플러스가 됐다”고 말한 바와 같이, 그 필요성과 당위성에 의문이 없는 것이며 하루 빨리 문화산업계에 올바르게 정착되어야만 하는 제도이다. 
 
2. 열악한 현실에 따른 도입의 공감대
표준근로계약의 내용은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 제한, 12시간 넘길 시 초과수당 지급, 일주일에 1회 휴식일 보장, 4대 보험 가입’이다. 그런데 종전에는 노동법상 당연한 이 최소한의 권리조차 지켜지지 못했기에, 그간 우리의 문화산업 현장은 실질적인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젊은 스태프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는커녕 소위 ‘열정페이’란 이름으로 저임금과 부당노동행위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창작자들이 생계를 위해 현장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콘텐츠 시장에서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제작사들도 단가 후려치기, 부당한 수익분배, 낮은 저작권 인식 등으로 인해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디지털 콘텐츠는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고, 유통기한도 없기 때문에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유통업체는 제작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 마련인데, ‘을’의 지위에 있는 제작사는 불공정거래행위라는 이유로 이러한 사실을 신고할 수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하면 당해 계약 자체는 무효로 만들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도, 이후 그 시장에서는 다른 유통업체와도 아예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인력의 착취나 갑을관계의 구조적 문제는 방송 드라마, 공연 등의 분야는 물론 최근 논란이 불거진 패션업계까지 거의 모든 문화산업의 현장에서 만연해 왔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각 영역마다 ‘표준계약서의 제정’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다행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2013년 8월 이후 문화산업 분야별 표준계약서를 순차 도입했는데, 이러한 표준계약서는 영화 상영, 출판 방송영상 프로그램 제작과 출연 등 문화 콘텐츠의 제작과 배급·유통 과정에서 각 주체들이 맺는 계약에 관하여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예를 들어, 출판 표준계약서는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음을 명시하는 등 신인·무명작가의 보호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방송영상 프로그램 관련 표준계약서는 제작 일선에서 시간 단위로 임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3. 강제할 수 없는 한계
그러나 이렇게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 산업 전반의 불공정한 갑을계약관계를 없애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표준계약서가 현실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표준계약서가 정부의 ‘권고’ 사항에 불과, 강제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용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유통업체들이 유리한 계약서를 놔 두고 굳이 표준계약서를 쓸 이유도 없고, 을의 입장에 있는 영세 제작사가 먼저 표준계약서를 쓰자고 요구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이미 지난 2011년 5월 영화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표준계약서가 발표되었는데도, 현행 제도상 영화계 표준계약서 이행사항이 ‘권고’ 수준에 그쳐 사실상 영화제작의 현장에서는 표준계약서 사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또 대중문화예술·방송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정한 산업 생태계의 조성을 위해 콘텐츠산업진흥법 제25조에 의거, 문체부가 2013년 7월 30일 발표한 ‘방송프로그램 제작(구매) 표준계약서’와 ‘대중문화예술인(가수, 배우) 방송출연 표준계약서’ 제정안에 대해서도 동일한 지적이 존재해 왔었다. 이는 최근까지의 방송사와 대중문화예술인 간의 출연료 지급 시점과 기준 및 계약 불이행에 따른 조치, 권리 귀속 등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줄다리기 논의 끝에 최종 합의안으로 마련된 것이었는데, 이 표준계약서의 사용 자체가 강제성이 없다 보니 의견 대립이 가장 심했던 프로그램 저작권의 귀속 문제마저도 논의의 실익이 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문체부는 표준계약서가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 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상기 2013년 표준계약서 도입 시에 이용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도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 문화산업을 넘어 변호사 업계에도 
다행히 <국제시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표준계약서를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에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어 현재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영화산업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영화근로자들의 법적 보호가 절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상 영화진흥위원회는 표준계약서의 사용을 ‘권고만’ 해 왔기 때문에, 표준계약서 시행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발의된 이번 개정안의 내용은 매우 고무적이다. 영비법 개정안은 영화산업 근로자 복지 향상을 위해 영화업자가 영화근로자와 계약을 할 경우 임금, 근로시간 및 그 밖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함으로써 서면계약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영화산업 종사자의 처우가 개선되고 한국영화산업이 더욱 체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표준근로계약서의 좋은 점은 스태프들의 환경이 개선되면서 더 좋은 퀄리티의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국제시장>의 성공은 표준계약서 채택을 통한 제작의 좋은 선례로 남게 되었다. 투자배급사인 CJ E&M은 <국제시장>을 필두로 2013년 8월 이후 투자배급이 결정된 모든 작품에 표준근로계약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고, 제작사인 JK필름도 향후 중급 이상의 상업영화에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할 예정으로 현재 작업중인 이석훈 감독의 <히말라야>에도 표준계약서를 채택하는 등 앞으로 많은 배급사와 제작사가 표준근로계약서의 채택을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영화 <국제시장>의 성공을 통해, 문화산업계 전반이 표준계약서의 채택이라는 법적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변호사야말로 타인의 권리를 옹호하며 계약의 공정성을 준수해야 할 공익적 지위에 있는 전문가 집단일진대, 정작 법무법인이 고용변호사를 채용할 때에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곳이 아직까지 거의 없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무쪼록 2014년 11월 대한변협이 배포한 변호사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의 의무화가 빠른 시일 내에 실현되기를 희망해 본다.
 
허중혁20130427.jpg
 
허중혁 변호사
변호사시험 1회
TV조선 사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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