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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행기 - 上. 빙하와 호수의 남섬

 학부 생활이 끝나갈 무렵 친구들과 함께 처음 뉴질랜드를 여행했고,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같이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뒤,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으로 뉴질랜드를 찾았고, 둘이서 “다음에 꼭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오자”며약속했습니다. 다시 10년이 지난 올해 2월, 저희 가족은 뉴질랜드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만 일곱 살, 다섯 살의 두 아이와 함께였습니다.

 

여행 준비

 뉴질랜드는 커다란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면적은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큽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위주의 다채로운 관광지가 두 섬 곳곳에 퍼져 있어서, 일주일 정도의 일정이라면 한 섬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난 두 번의 여행에서 북섬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기에 이번에는 큰맘 먹고 보름이 넘는 일정을 확보했습니다. 무작정 오클랜드로 가는 항공권부터 예매해 놓고 몇 주 동안 수도 없이 계획을 갈아엎은 끝에, 남섬에서 SUV를 빌려 7박을 한 후 북섬에서는 캠퍼밴을 타고 9박을 하는 일정이 완성됐습니다.

 뉴질랜드의 2월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로, 일교차가 크지만 낮에도 너무 덥지는 않아서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게다가 밤 9시가 넘어야 어두워질 정도로 일조시간이 길다는 점도 여행자에겐 축복입니다. 그런 만큼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기이니, 빠른 예약은 필수입니다. 작년 8월에 일정만 정해 놓고 잠시 잊고 지내다가 10월 말에 숙소를 알아보니 인기 있는 곳들은 이미 예약이 마감된 곳이 많았습니다. 며칠 동안 열심히 검색해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겨우 예약할 수 있었고, 곧이어 국내선 항공편과 렌터카 예약까지 마쳤습니다.


아슬아슬했던 국내선 환승

 뉴질랜드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숫자의 양이 사는 것으로 유명한, 청정 자연의 낙농업 국가입니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의 입국 절차 중 식품에 대한 검역은 까다롭기로 악명 높습니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검역에만 몇 시간이 걸려서 남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식품을 아예 안 가져가는 것이 정답이다 – 라는 후기가 종종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 그런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지요. 즉석밥과 라면에서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 가루 등 반찬류, 거기다 없으면 큰일 나는 초콜릿과 사탕까지 바리바리 챙겨서 큰 트렁크 하나에 몰아넣고, 음식물의 목록과 간단한 설명은 물론 사진까지 붙인 리스트를 인쇄해 갑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부터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저희는 정시에 출발해서 아침 일찍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남섬으로 가는 비행기는 넉넉히 세 시간 뒤로 예매해 뒀으니 여유롭게 검역을 통과하고 국내선 터미널에 가서 간단히 요기까지 할 생각이었는데, 큰 착각이었습니다. 꼬불꼬불 기나긴 검역 대기 줄은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두 시간 만에 마주한 검역관은 제가 내민 리스트를 훑어보더니 성의가 가상하다는 듯 몇 가지 질문만 하고 통과시켜 주었지만, 이미 환승할 비행기의 탑승 수속 마감 시간이 코앞이었습니다. 1km 거리의 국내선 터미널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목숨(?)을 건 전력 질주를 한 끝에, 힘들어하기는커녕 신나서 앞서 달려준 아이들 덕에 겨우겨우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집념의 연어 낚시

 퀸스타운 공항에 도착해서 레이크 하웨아의 글램핑장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테카포 호수로 향했습니다. 바위산이 많고 건조한 남섬 중부 고지대의 여름은, 나무 한 그루 없이 광활하고 황량한 풍경이 티 없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내가 꼭 해보고 싶다던 연어 낚시를 위해서 유명한 연어 양식장에 들렸습니다. 본격적인 낚시라기보다는, 호숫가의 양식장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연어를 낚는 체험입니다. 낚은 연어는 그 자리에서 손질해 주고, 괜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멋진 동작으로 낚싯대를 던졌고, 아이들은 잠깐 구경하더니 이내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놉니다. 미리 찾아본 후기에서는 “연어가 너무 빨리 잡혀서 좀 아쉬웠어요”라고들 했었는데, 어째 한 시간이 넘게 한 마리도 미끼를 물지 않습니다. 도와주시는 직원분께 여쭈어보니 오후 시간에는 수온이 올라가서 연어가 잘 잡히지 않는답니다. 아니 그걸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을 던지니, 허허 웃으며 다음에는 아침에 오라고 합니다. 도저히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40분 거리를 달려가 재도전했습니다. 전날의 직원분이 정말 또 왔냐며 반겨주었고, 함께 필승의 각오를 다졌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커다란 연어가 금세 미끼를 물었고, 한참 밀당 끝에 4.4kg짜리 대물을 낚아 올렸습니다. 막 잡은 신선한 연어의 맛은 정말 각별했습니다. 그 연어는 회 쳐지고, 구워지고, 라면에는 물론 아내의 특제 똠얌꿍에도 들어가면서 며칠 동안 저희의 식단을 책임졌지요.

선한 목자 교회


별이 쏟아지는 테카포 호수의 밤하늘

 거대한 빙하 호수인 테카포 호수는 아름다운 물빛과 호숫가의 그림 그 자체인 ‘선한 목자 교회’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별이 가득한 밤하늘입니다. 물론 남섬 어디서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별을 볼 수 있지만, 특히 테카포 지역은 사방이 호수와 평야여서 시야가 탁 트여 있는 등 지형 조건이 좋고 인구가 많지 않은 데다 야간 조명을 최소화하는 노력까지 기울이고 있어, 밤하늘을 관측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합니다. 하늘만 맑다면 숙소 앞에서도 맨눈으로 은하수를 볼 수 있고, 스타게이징 투어를 예약하면 별자리 해설을 들으며 짧게나마 천체망원경도 사용해 볼 수 있습니다. 평생을 북반구의 밤하늘만 봐 온 저에게는, 오리온자리가 거꾸로 서 있고 남십자성이 빛나는 뉴질랜드의 밤하늘이 더욱 특별했습니다.


푸카키 호수와 마운트 쿡 트래킹

 쿡산, 혹은 아오라키 마운트 쿡은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인 뉴질랜드 최고봉입니다. 쿡산 주변의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고 고여 푸카키 호수의 영롱한 옥빛을 만듭니다. 푸카키 호수는 남단의 방문자 센터에서 바라봐도 좋지만, 쿡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Peter’s Lookout에서 조금만 산책해서 내려가면 더 가깝고 한적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비친 짙푸른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가히 환상적입니다.

 쿡산 주변의 산기슭에는 몇 개의 빙하 호수가 있고, 각 빙하 호수를 둘러보는 트래킹 코스가 유명합니다. 짧게는 왕복 한 시간 거리에서부터 길게는 며칠을 잡아야 하는 등산 코스까지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평소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무리하지 말고 가장 짧은 코스만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출발 지점의 주차장에서 내린 아이들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무리 그래도 한 시간 코스는 너무 짧지!”라면서 얼마든지 걸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칩니다. 덕분에, 내심 기대했던 후커 밸리 트랙에 도전했습니다.

마운트 쿡, 후커 밸리 트랙

 후커 밸리 트랙은 해발 약 700m의 출발점에서 해발 약 900m의 후커 호수까지 다녀오는 코스로, 왕복 거리는 10km 남짓입니다. 잘 정비된 길을 산책하듯 걸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언제나 여행객들로 붐비는, 가장 인기 있는 트랙입니다. 처음 보는 들꽃들과 다가오는 설산, 계곡의 신비로운 물빛에 감탄하며 쉬엄쉬엄 두 시간을 걸었습니다. 마지막 언덕을 넘자, 큰 호수에 바위 같은 얼음덩이들이 둥둥 떠 있는 모습에 아이들이 먼저 탄성을 지르며 달려갑니다. 말 그대로 ‘얼음물’인 차가운 호수에 발을 담그고, 떠내려온 커다란 빙하 조각을 건져내서 만지고 부셔 보고 심지어는 와그작 씹어먹기도 하며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도 돌아가기 아쉬운지, 자기 얼굴만 한 얼음덩이를 하나씩 집어 들고 한국까지 가져가겠다며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왕복 네 시간의 산길을 투정도 부리지 않고 씩씩하게 잘 걸어준 아이들이 너무도 고맙고 대견했고, 서로를 칭찬하며 완주 기념으로 멋진 가족사진을 남겼습니다.

 참, 아이들이 가져온 얼음은 햇볕에 녹아내려 곧 주먹만 하게 작아졌는데, 마침 음식을 담아갔던 보냉 가방이 있어 숙소까지 소중히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까지 가져올 방도는 없어, 며칠간 여행을 함께한 뒤 와카티푸 호수에 놓아주며 눈물의 작별식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비나 눈이 되어 다시 아이들을 찾아와 주겠지요.

퀸스타운, 와카티푸 호수


액티비티의 천국 퀸스타운과 평화로운 휴양지 와나카

 와카티푸 호숫가의 퀸스타운은 인구는 3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매년 1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무척 활기찬 도시입니다. 도시 근처의 카와라우 협곡에서 번지점프가 처음 탄생했고, 협곡 아래를 흐르는 샷오버 강에는 무려 시속 90km로 달리는 제트 보트에 탄 관광객들의 즐거운 비명이 끊이지 않습니다.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산 위에서 두둥실 떠내려오는 패러글라이더도, 짧고 짜릿한 추락 끝에 낙하산을 펼친 스카이다이버도 금방 눈에 띕니다. 과연 ‘액티비티의 천국’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습니다. 물론 호숫가의 공원에 앉아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물멍만 해도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거대한 침엽수들이 늘어선 키위 파크에서는 멸종위기종인 날지 못하는 새 키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똑똑한 앵무새인 케아와 장난감을 주고받으며 장난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퀸스타운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만 달리면, 와나카 호수를 낀 작은 휴양지인 와나카가 있습니다. 조금 더 한적하고 평화롭게 휴가를 즐기고 싶다면 퀸스타운보다 와나카를 추천할 만합니다. 지형의 영향이 있는지 혹은 그저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저는 와나카에서 석양에 빛나는 신비로운 구름을, 그리고 부슬비가 내리는 아침 호수 위에 뜬 선명한 무지개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근교에서는 와이너리 투어도 즐길 수 있고, 호수 옆의 로이즈 피크나 가까운 어스파이어링산으로 향하는 트래킹 코스도 유명합니다. 아이들은 2층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미로를 탐험할 수 있는 퍼즐링 월드를 가장 즐거워했습니다.

와나카의 구름
와나카의 무지개

 

이승훈 변호사
● 법무법인 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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