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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너머의 이야기


“오늘 낮 12시경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빌딩 살인사건의 피고인에게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두 문장 중 어느 쪽에 더 눈길이 가시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건팀 기자였던 저는 첫 번째 문장에 정신이 번쩍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건팀 기자는 사건의 발생과 진행 상황을 챙기게 됩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취재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죠. 반면 법원을 출입하는 법조팀 기자는 사건의 피고인이 기소되어 재판에 넘어온 뒤 내려지는 선고를 주로 챙기게 되는데요, 사건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건의 ‘처음’을 챙기던 제가 사건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부서로 이동했을 때 혼란은 적지 않았습니다. “기사만 좀 다르게 쓰면 되지 뭘 그래?”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기자에게 출입처 변동은 사실상 업무의 ‘A to Z’가 바뀌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출입처 취재원부터 업무, 주요 현안, 작성해야 하는 기사 내용까지 전부가 바뀌게 되니까요.

 그리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시시각각 기사로 다루었던 제게 법원의 판결 기사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낯설기 그지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낯선 마음에서 태동한 당황스러움은 회의적인 태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참 오만한 생각이지만 ‘다른 언론사에서도 많이 쓰는 선고 기사를 굳이 나까지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며 스스로에게 속 편한 핑계를 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법원을 출입한 지 한 달쯤 지난 때였을까요, 도주 치사 사건으로 피해자를 사망케 한 피고인의 재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습니다. 알고 보니 사건팀에서 근무할 당시 현장에서 취재했던 사건이더라고요. 경 · 검찰 조사가 끝나고 기소되어 법원으로 넘어온 것이지요. 재판에선 판사의 질문을 통해 사건 초기 단계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 추가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의 유족은 지방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거의 매 재판마다 법정을 지켰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따로 만난 유족은 사건과 관련해 자주 입장을 밝혔습니다. 피해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에게 엄벌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는 깊이 숨을 고르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20분가량의 짧지 않은 시간 내내 유족은 손을 가늘게 떨었습니다. 그날 그걸 보지 않았다면 가늘게 떨리는 손이라는 표현이 참 실감 나는 표현이라고, 정말 그럴듯한 문학적 수사라고, 계속해서 그리 알고 살았을 것입니다. 매번 법정을 찾아 가해자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게 힘들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유족은 “(피해자를) 잘 잊고 싶어 (가해자를) 마주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날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잊고 싶어 마주하는 삶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해당 재판의 선고 기일이 열렸습니다. 대개의 선고가 그렇듯 1심 재판부는 판결의 요지를 간략히 언급하고 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재판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가 작성해야 하는 선고 기사의 무게는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해당 사건의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는 상황이 되니 피고인에게 왜 이러한 형벌이 내려졌는지, 재판부의 판단은 어떠하였는지 한 자 한 자 무겁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조하게 느껴지던 선고 내용이 누군가에겐 생을 바치고 싶을 만큼 엄중한 판단이라는 사실을 몸소 지켜보고 나니 마냥 관성적으로 작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회의감은 재판으로 나온 결과만을 옮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너머의 이야기까지 듣고 이해하려할 때 판결의 무게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도요. 

 사실은요, 업무 특성상 사건을 이해하기도 전에 변호사님들께 냅다 결론부터 여쭙는 질문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래서 몇 년 형이 선고된 건지, 승소인지 패소인지, 항소할 계획인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의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취재 과정에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들은 종종 후회로 남더라고요. 앞으로는 판결 너머에 담긴 이야기와 마음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좀 더 귀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이들을 위해 힘쓰는 법조인들의 노력이 왜곡되지 않도록 사안을 제대로 알고, 바르게 전달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최미송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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