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규모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설공사에 있어서 착공 이후 준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토목공사의 경우에 준공까지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건축공사의 경우에도 3 ~ 5년은 걸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최근에는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해 공사기간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고, 발주자의 사정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거나 일시정지되면서 준공시점이 늦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공사계약에서는 대체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은 기본적으로 공사기간 발생하는 물가변동과 관련된 위험(Risk)에 대한 부담주체나 부담범위에 관한 문제입니다. 계약자유의 원칙상 발주자와 수급인은 공사계약을 체결함에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 가부나 조정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둘 수 있습니다. 또한 대법원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인 경우에도 그 법적 성질이 사법상의 계약인 점을 존중하여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합의를 한 경우에도 특별히 강행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판결). 그렇기 때문에 민간건설공사에 있어서 이른바 ‘ESC 배제 특약’이라고도 불리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 배제조항 역시 강행규정에 반하여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유효합니다.

 한편,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은 ‘계약체결 이후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로서 계약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인 경우 등에는 그 부분에 한하여 계약내용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 규정이 민간건설공사에서 ESC 배제 특약을 무효로 할 수 있는 강행규정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에 ‘계약체결 이후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로서 계약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인 경우’에 해당하는지입니다. 

 그런데 부산고등법원은 최근 민간건설공사와 관련하여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상의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특약을 둔 경우에 있어서 해당 특약조항의 효력 유무가 다투어진 사안에서, 수급인의 귀책 없이 발주자의 사정으로 인해 착공이 연기되었고 그사이에 철근가격이 2배로 급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원자재 가격의 대폭적인 인상을 도급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해당 특약조항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에 따라 무효로 한다고 보았습니다(부산고등법원 2023. 11. 29. 선고 2023나50434 판결). 그러자 발주자 측에서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기각판결을 선고함에 따라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특히 COVID-19 사태 발생 이후로 계속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가 급등하면서 그 이전에 체결된 공사계약상의 ESC 배제 특약의 효력유무가 현재도 치열하게 다투어지고 있습니다. 건설업체의 입장에서는 건설원가 구조가 망가지다시피 한 현 상황에서 기업의 영속성 문제와 직결되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물론 반대로 발주자의 입장에서는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을 강조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건설공사의 경우에 공사기간이 일반적으로 장기간이라는 점, 경제상황이나 경제여건의 변동 등으로 인해 물가급등의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 비록 수급인이 ESC 배제 특약에 합의하였다고 하더라도 예상한 범위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의 물가변동 위험도 감수하려는 의사까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단순 시공의 경우에는 이익률이 대체로 낮아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 가부가 시공이익률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이 상당히 큰 점, 건설산업기본법이 건설공사의 적정한 시공과 건설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민간건설공사에 있어서도 ESC 배제 특약이 수급인 귀책 없이 발주자의 사정으로 인해 물가변동 위험에 노출되었거나 공사계약 체결 당시 수급인이 예상한 수준을 유의미하게 넘는 경우에도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을 배제하는 의미로 해석된다면 아는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에 따라 해당 부분에 한하여 무효로 된다고 봄이 합리적입니다. 앞서의 부산고등법원 판결은 ESC 배제 특약이 수급인 귀책 없이 발주자의 사정으로 인해 증가된 물가변동비에 대해서도 그 효력이 미친다면 이는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에 의해 무효가 된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안에서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ESC 배제 특약이 위와 같은 사안 외에 또 어떠한 경우에 무효가 될 수 있는지, ESC 배제 특약이 무효가 되는 세부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ESC 배제 특약이 무효인 경우에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조정액은 어떻게 산정하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법리가 판례를 통해 형성될 필요가 여전히 있습니다. 

 이에 ESC 배제 특약이 있는 경우에도 해당 특약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등 강행규정에 반하여 무효라고 평가될 여지는 없는지를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준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