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 헌재가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정부의 위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세월호 희생자 · 유가족 이름으로 청구된 ‘신속한 구호 조치 등 부작위 위헌확인’ 사건에 대해 “이 사건 구호 조치는 심판 청구가 제기되기 전 종료되었으므로 심판 청구는 권리보호이익이 없었던 경우에 해당한다”며 5:4로 각하결정을 했다.(헌재 2024. 5. 30. 2014헌마1189 결정) 세월호 유가족은 국가가 사건 당시 신속하고 적절한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침해했다며 2014년 12월 31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의 최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였던 이 사건에 대해 언론에서는 비판적 시각이 많은 듯하다. 다만 재판관 4인의 위헌의견은 “구조 작업이 적절한 방법에 따라 효율적으로 진행됐다면 인명 피해를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보 파악과 취득, 현장 구조 방식, 해경지휘부의 판단 및 지휘,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에 관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였으므로 이는 과소보호금지원칙(너무 적게 보호하면 위헌)에 위배해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국가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구성되었으며, 개인의 목적과 국가의 목적은 같고, 따라서 바람직한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이다. 국가는 도덕적 행위의 정점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은 이성적 의지와 일치되고 사회의 각 부분은 전체의 번영 속에서 성장한다.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 제2조와 미국 독립선언(1776) 등에서도 국가권력의 존재 목적이자 정당성의 근거가 바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 학계 역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 대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국가의 임무로서 아래와 같은 헌법 조항들을 통해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헌법상 국가의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 조항

 우리 헌법상 대한민국은 국민에 대하여 어떤 의무가 있는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의 권리를 보호할 당연한 의무가 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관련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2조 제2항). ②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③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26조 제2항). ④ 국가는 사회보장 ·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34조 제2항). ⑤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34조 제4항). ⑥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23조 제2항). 

국가의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에 관한 위헌심사 기준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란 기본권적 법익을 기본권 주체인 사인(私人)에 의한 위법한 침해 또는 침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여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말하며, 사인인 제3자에 의한 개인의 생명이나 신체의 훼손이 문제 되는 사안이 아닌 경우에는 이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 제2문에서 선언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는 국가가 국민과의 관계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국가가 사인 상호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사법(私法)질서를 형성하는 경우에도 헌법상 기본권이 존중되고 보호되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의 이행은 입법자의 입법을 통하여 비로소 구체화되는 것이고, 국가가 그 보호 의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행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입법재량의 범위에 속하므로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보호 의무의 위반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이처럼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 · 신체의 안전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심사할 때에는 국가가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이른바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심사기준으로 삼고 있다(이른바, ‘명백성 통제’). 그렇다면 보호 의무의 주체가 입법부가 아니라 행정부라면 더 강화된 심사기준인 소위 ‘타당성 통제’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헌법재판소는 변화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주목이 된다. 즉, 헌법재판소는 2019년 공직선거법에 대한 위헌확인사건(2018헌마730 공직선거법 제79조 제3항 등 위헌확인. 공직선거 선거운동 시 확성장치 사용에 따른 소음 규제기준 부재 사건)에서 “국가가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심사할 때에는 국가가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의 위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종래 선례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그에 더해 ‘그 보호조치 위반이 명백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대신 ‘그런데 어떠한 경우에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미달하게 되는지는 일반적ㆍ일률적으로 확정할 수 없고, 개별 사례에 있어서 관련 법익의 종류 및 그 법익이 헌법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상, 그 법익에 대한 침해와 위험의 태양과 정도, 상충하는 법익의 의미 등을 비교 형량하여 구체적으로 확정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앞으로는 적어도 과소보호금지원칙이 ‘명백성 통제’만이 아닌 ‘실효성 통제’로서 한 단계 더 높은 심사, 즉 해당 입법의 기본권 보호 수준이나 보호 정도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심사를 하겠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선고된 ‘세월호 신속한 구호 조치 등 부작위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소수의견 역시 위와 같은 심사방식을 적용하였다. 위 사건에서 소수의견은 정부의 어느 한 기관도 통합적으로 정보를 관리하지 못했고, 주도적 · 적극적으로 다른 구조본부나 현장구조세력에 전파하지 아니한 점, 현장구조세력의 구조방식 역시 헬기와 초계기 역시 선체 밖에 나와 있던 승객만 구조하는 데 그쳤고, 항공구조사들이 선내에 진입하여 통로를 개방하거나 승객들을 선체 밖으로 유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점, 해양경찰 지휘부의 판단과 지휘 역시 사고 규모에 맞는 후속 조치를 적절히 취하지 못한 점,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 역시, 현장에서 구조활동 진행 중인 해양경찰이나 구조업무를 지원하는 다른 국가기관의 가용자산들을 통합적으로 조정 ·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반하여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차제에는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부와 학계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을 ‘명백성 통제’, ‘타당성(실효성) 통제’, ‘엄격한 내용적 통제’로 세분화하는 등 보다 진화된 심사기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결론

 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권 보호 의무는 입법이나 행정과 같은 정치적 또는 행정적 사무에서의 형성권을 갖는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행위규범이요, 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기관에 대해서는 통제규범으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정작 지금까지 벌어진 어이없는 참사나 참극들을 볼 때 국가의 국민보호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오늘날 국가의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는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현대의 초고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가가 아닌 거대 기업과 사인 등 일반 사인집단에 의해 유발되는 개개 국민에 대한 생명 · 신체 · 건강 · 안전 · 재산 · 환경 · 프라이버시 등에 대한 위험이 갈수록 대두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는 한층 더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며, 그에 대한 위헌심사기준 역시 단순히 ‘명백성 통제’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정치하고 세련되고 엄중하게 진화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 비해 확연히 국가의 국민 보호 여건과 환경이 모두 개선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갈수록 고도로 진화되는 다양한 천재지변과 사악하고 교묘해지는 범죄 집단에 의한 기본권 침해 문제에 신속하게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고 더 피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는 국가의 의무이기 이전에 국가의 존립 이유 그 자체이자 존립의 근거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보호 의무는 국민 개개인에게 주관적 권리가 주어질 때 더 효과적으로 관철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국가에 대해 ‘보호청구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할 필요성도 크다. 다만, 다양한 이해관계나 법익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형성의 자유가 입법부와 행정부에게 어느 정도 인정될 필요가 있는 만큼,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으로서 과소보호금지와 국가의 국민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으로서 과잉금지원칙은 그 목표와 지향점이 다르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양 법익이 최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조화점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 심사척도에 관한 최근 일련의 헌법재판소 결정은 긍정적인 변화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고 그들 역시 여러 어려운 난관들에 봉착도 하겠지만 한결같이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음지나, 소외된 곳에서 말없이 고통받는 국민들에 대한 기본권 보호에 더욱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가야 할 것이다.

성중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