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이리 와봐, 저 개XX가”

 도망갈 때 간혹 생기게 된다는, 뒤통수에 달린 눈으로 그가 보입니다. 불꽃에서 온도가 높은 부분은 빨간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고 하지요. 붉다 못해 푸르러진 얼굴에서 내뿜어진 섬뜩한 기운이 저의 등 전체를 휘감습니다. 그걸 풀어헤치고 떨쳐내듯, 저는 더 빨리 걸음을 내닫습니다. 

 큰돈이 걸린 약정서 한 장이 문제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달랑 세 줄짜리 사본 1장만 제출된 데 대해 그런 약정서 쓴 적 없으니 원본을 내라 반박했고, 재판장도 대리인 없이 혼자 나온 그에게 우선 원본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 보라고 하면서 그날 변론을 마쳤습니다. 막 재판정을 나와 긴 복도를 찬찬히 걷는데, 방금 전까지 목소리의 붉으락푸르락 한 버전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도 직업병의 하나인 걸까요? 갑자기 머릿속에 “공연성”이라는 단어가 강렬히 떠오릅니다. 걸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는데, 아뿔싸!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공연성이고 뭐고 이러다가는 말로 맞는 걸 넘어, 눈에 보이는 무언가에 의해 푸르락한 멍까지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은 덤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뛰진 않지만 “달아난다”는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오로지 앞만 보며 1층 로비까지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제는 법원 화장실에 그림과 함께 쓰여있는 격언이나 시구와 같이, 마치 배경처럼 흘려버릴 수 있는 일일 것도 같습니다. 께름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싶으면 서류 가방 정리를 아주 천천히 하고 나오거나, 아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법정을 나서 버리는 요령도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저는 1층 로비에 나와서도 한참을 더 경보로 걸어 택시를 잡아탔고, 그 후 며칠 동안은 잠도 잘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처음 맡은 사건은 어떤 건가요?”, “처음 승소한 소송은 어떤 사건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 보셨을 겁니다. 누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떠올려 보았던 일은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물음과 회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처음’이 주는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건을 맡았을 때의 진지했던 마음, 첫 승소 사건에서의 기쁨은 변호사로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실력의 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저에겐 첫 욕이 그랬습니다. 뾰족하고 선명했던 그날의 욕설은, 위협적인 말이나 심한 행동에 대응하게 될 때를 위한 면역이 되기도 했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 피해 가는 방법에 대한 배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삶에서 버릴 경험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딱 달라붙게 느껴지는 경우가, 저에게는 저 경험이었습니다. 

 첫 욕의 소송은 다행히 이겼습니다. 그는 원본이 있다는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했고, “저런 약정서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은데…”라는 의뢰인의 기억은 마땅한 자리를 찾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붉으락푸르락했던 이유는 제가 욕보다 더 뾰족하게 그의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오묘한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첫 욕을 풀어 놓아 봅니다. 초년 차 회원분들께는 참고가, 막 비슷한 경험을 했던 분께는 위로가, 선배님들께는 머리를 식히는 재미가 되었길 바라봅니다.

신상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