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간단한 약력 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1986년 제30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198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정부에 들어와 통일부, 청와대에서 통일 · 대북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통일부에서 대변인, 남북회담본부장, 통일정책실장 등을 거쳐 2017년 6월부터 2년간 차관으로 일하다가 퇴직했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각각 행정관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실무를 담당했고 2018년 세 차례 열린 정상회담에는 통일부차관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개성에 설치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우리 측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매주 금요일 개성으로 출근했던 것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통일과 남북관계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Q. 1980년대 말에 공직을 시작하셨는데 통일부에 근무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법대를 나왔지만 공공부문에서 정책을 수립, 추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행정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므로 초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점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공직에 입문한 1987년은 격동의 한 해였고 여러 상황이 유동적이었습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과 함께 당시 국토통일원에 이홍구 장관님이 부임하셨고 저는 수행비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북한을 적대와 대결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상대방, 남북관계 개선의 동반자로 규정(“7.7선언”)하고,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북방정책)하면서, 내부적으로 여야가 합의하는 통일방안(“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장관님을 모시고 그런 일들을 추진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통일이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제가 공직에 있을 때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30여 년간 통일부에서 근무하시면서 남북관계에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과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2018년 대통령 특사단의 일원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 면담이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져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의 돌파구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중단되어 아쉽게 생각합니다.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역시 이산가족 상봉입니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헤어진 가족을 만나 아이처럼 즐거워하다가 다시 헤어지는 모습을 볼 때 저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가장 보람 있고 동시에 안타까운 순간들이었습니다. 

Q. 통일부에서 남북대화나 교류협력 업무만이 아니라 대변인도 오래 하신 걸로 들었습니다. 2년 넘게 대변인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과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통일부 대변인은 다른 부처 대변인과 달리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북한이라고 하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도 항상 고려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과 주목도도 높은 것 같습니다. 제가 대변인을 한 시기는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남북관계가 계속 악화되던 때였습니다. 대변인으로서 국민들에게 남북관계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북한 관련 보도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워서 추측 보도들이 많고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변인을 마친 다음인 2014년 2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여한 북한 관계자가 우리 기자들에게 과거 통일부 대변인들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저에 대해서 “어디다 강약을 줘서 말해야 하는지 아는 대변인이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워낙 경험이 많아 알아듣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상대방이 제 브리핑을 열심히 봤다는 얘기라서 기억이 나네요.

Q. 과거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많은 남북경협 사업들이 추진되었는데 그때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부처,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법률가들도 많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떠셨나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경협 사업들은 단순 교역과 달리 대규모 인적교류가 수반되는 협력사업들이라서 추진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관광객의 신변안전보장이었고, 개성공단도 우리 근로자들의 안전보장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남북 간 출입 · 체류합의서를 채택하기 위한 과정에서 여러 부처, 기관들뿐만 아니라 많은 법률가들의 자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제법을 적용하지 않는 남북 간 특수관계를 고려하되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년 6월 본 회보에 인터뷰하셨던 법무법인 태평양의 유욱 변호사님 같은 분들의 참여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북한도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의 출입, 체류 관련 법 · 제도 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Q.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5년 전 대북특사단의 일원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직접 만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셨나요?

 2018년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 일원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두 차례 만났습니다. 지금 상황과는 다르긴 합니다만, 그때 김 위원장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가겠다는 입장을 우리 특사단에 직접 표명하였고, 이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은 물론이고 북미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미 측에 전달해 줄 것도 요청하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북한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서 비록 우리와 입장이 다르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대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2019년 2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여러 상황 변화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게 생각합니다.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정상회담도 여러 차례 열리고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남북관계는 단절되어 있습니다. 어떤 소회가 드시나요?

 수많은 남북회담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들과 국제사회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역대 정부의 모든 노력들이 현재는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일은 매우 긴 과정이며,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사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분단은 비정상적이며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 개발, 무력 도발을 지속하고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우선 신뢰를 회복하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Q.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 상황, 한반도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통일이 가능할까요? 그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현실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처럼 갑작스럽게 통일이 올 수도 있지만, 독일 통일도 서독의 동방정책 추진 이후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20여 년간 교류협력을 지속 추진하였고 변화를 바라는 동독 주민들의 결단이 더해져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류협력 등을 통해 남북 간에 서로 신뢰, 동질감이 형성되어야 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사회 내부에서 소위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정립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Q. 최근 북한은 이제 남북은 같은 민족이 아니고 통일은 불가능하며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위와 같이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지난 연말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은 더 이상 같은 민족이 아니며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이므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정세의 변화, 최근 남북관계 단절 등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내부단속이나 체제결속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일희일비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비록 분단되어 있지만 원래 하나의 민족이고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건 변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 헌법에서도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 추진”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야가 합의한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원칙과 입장을 계속 견지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Q. 북한도 북한이지만,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의 남북관계 단절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이 바로 우리 내부에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는 2007년부터 우리 국민들의 통일인식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 2023년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3.8%로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29.8%로 가장 높았습니다. 20대의 경우 통일 불필요 응답이 40%가 넘어간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보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짓눌려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이 부담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통일 과정 및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법률가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변호사들이 남북관계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당국 간 합의를 거쳐서 경협 등 구체적인 사업들이 진행되고 민간이 참여하면 거의 모든 영역에서 법률가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교역, 투자, 협력사업 등 경제협력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들과는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모든 일들이 남북 간에는 별도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본격 발전하는 단계에서는 법률적 검토가 필수적일 것입니다. 계기가 을 때마다 변호사님들의 전문 분야, 관심 분야에서 보편적인 원칙과 기준을 토대로 하되 남북관계 특수성도 감안하면서 어떤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회담 등을 이유로 북한을 직접 방문하셨을 때 보신 북한 거리 및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하였나요?

 남북회담 대표 등으로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했지만 공식적인 참관지를 중심으로 다니다 보니 주민들의 생활상을 제대로 살펴볼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개성이나 금강산에서 열리는 회담, 행사에 참여해 보면 그나마 평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2004년에 경수로 건설 현장인 함경남도 신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속초항에서 배를 타고 신포 양화항에 들어가 나올 때에는 자동차로 함흥으로 이동해서 항공편으로 평양을 통해서 돌아왔습니다. 신포 - 함흥이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돌아가느라 서너 시간 정도 걸렸지만 주민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함흥냉면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함흥 신흥관에서 냉면을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냉면에 관한 함흥 사람들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북한과의 회담 당시 북측 담당자들에 대하여 느낀 점은 무엇이었고, 당시 특이한 에피소드는 어떤 것이 있나요? 

 남북회담에 나갈 때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이 있습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면 북한 대표들이 갖는 부담감이 저와는 또 다를 겁니다. 실제 회담에 임할 때 보면 많은 경험이 있는 대표들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저로선 당연히 우리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상대방 입장도 생각하면서 회담을 진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18년 3월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북한 측 수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리 위원장은 과거 군사실무회담 대표로 여러 차례 참가해서 저와는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회담 모두에 제 생일이 8.15 광복절이라는 걸 언급하면서 회담이 잘 되기를 기대한다는 덕담 차원의 얘기를 하더니, 나중에 회담이 끝나고 인사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올해 8.15 광복절은 함께 경축합시다”라는 얘기를 했는데요 그걸 옆에서 들은 우리 기자 중 한 명이 “남북이 광복절에 군축회담을 열기로 했다”라고 보도를 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오보 대응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북회담을 많이 하다 보니 제 생일이 화제에 오르는 일도 있었네요. 

Q. 개인적인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법조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현재 통일과 남북관계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데, 며칠 전 종강하고 몇 학생들이 남북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문자를 보내와서 나름 보람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강의도 하고 대북정책, 남북회담 관련 경험을 후진들에게 전달하면서 필요한 곳이 있다면 자문과 협력도 해나갈 생각입니다. 분단된 한반도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에게 통일과 남북관계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항상 통일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마시고 본인의 관심사항과 연결하는 고민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일 통일에서 볼 수 있듯이 한반도에서 통일을 이루는 마지막 과정은 법률가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

● 인터뷰/정리 : 황상현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