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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변호사의 조언] 장경욱 변호사 인터뷰
유우성 간첩사건 무죄, 그리고 그의 삶을 지키면서
- 장경욱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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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97 제39회 사법시험 합격
2000 변호사 장경욱 법률사무소 개소
2010 법무법인 상록 구성원 변호사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
전 관악구청 고문변호사
현 서울지방변호사회 당직변호사운영위원회 운영위원
현 비영리단체 "민들레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 운영위원
현 법무법인<상록> 구성원 변호사



1. 선배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변호사로서 정말 갈수록 더 분주히 지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고민해 보니, 결국은 제가 수임한 사건에 대한 무게 때문이더군요. 우리 서울회 회원분들 누구나 마찬가지이시겠지만, 수임 사건의 의뢰인과 어떻게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발전시킬 수 있을까는 가장 어려운 과제 아닙니까? 의뢰인과 함께 고민하며, 사건기록을 놓고 씨름하며, 사무실에서 법정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목표 달성이 힘들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계시죠? 요즘에는 제가 국가보안법 간첩 사건을 주로 취급하는 변호사로 소문이 나서인지 여러 제보성 상담이 많아 이를 물리치기가 어려워 더 바빠졌습니다. 

2. 사법연수원 수료 후 관악구에서 개업하신 걸로 아는데, 당시 흔치 않는 선택으로 보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서초동이나 법원 인근이 아닌 지역에 개업을 하려는 후배변호사들에게도 하실 말씀이 있으실 텐데요. 

2000년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개업했습니다. 저는 연수원에서 진로를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절대 취업을 하지 않고 개업하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취업을 하는 것은 뭔가 소극적으로 느껴졌고, 적극적으로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개업을 결심했습니다. 연수원 생활 내내 어떻게 하면 새롭게 도전의식을 발휘해 볼까 고민하면서 의뢰인에게 가까이 가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법원 주변에 변호사 사무실이 몰려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개업 장소를 고민하면서 동네 병원처럼 변호사 사무실도 의뢰인들 곁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제가 살아온 관악구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저는 관악구 개업 10년 만인 2010년에 도저히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동네변호사의 꿈을 일단 접고 서초동의 민변 선배변호사들이 계시는 법무법인 상록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제가 ‘동네변호사’로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법원 주변이 아닌 지역에 개업하는 후배변호사님들께 해드릴 말씀이 없어요. 요즘 ‘동네변호사’로서 자리를 잘 잡은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동네변호사’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기에 같은 꿈을 꾸는 후배변호사님들의 건승을 기원하고 변호사 직역의 새로운 모범을 많이 만들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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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국 사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많이 변호하셨는데 남다른 소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많은 어려움 그리고 보람도 느꼈을 텐데요, 어떠신가요?

저는 수임한 첫 사건부터 국가보안법 사건이었습니다. 소위 ‘백두청년회’라는 사건이었고 이후, 거의 매년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을 꾸준히 맡아 왔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간첩 사건도 원정화(2008년) 관련 사건부터 계속 이어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2013년), 보위부 직파 탈북자 간첩 사건(2014년) 등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 변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소위 ‘간첩 사건을 주로 취급하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변론활동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상식이 통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얘기가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입니다. 매우 당황스럽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허위자백에 의하여 간첩이 만들어지는데 이의를 제기한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 때가 가장 힘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제 자신을 먼저 잘 추슬러야 하고 어떻게 하면 제 생각을 더 설득력 있게 알려낼까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허위자백 피해자와 함께 노심초사하며 피해자를 일으켜 세워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계속 해 오던 과정에서 “서울시 탈북자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드디어 진실을 밝히고 국정원과 검찰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제 인생의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4. 그 동안 많은 변호사들이 시국사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열심히 변론하여 헌법과 형사소송법적 쟁점을 부각시키고 형사소송절차를 인권친화적으로 개선하는데 기여하였다고 보여집니다. 변호사님께서 변론하신 사건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제가 2000년 개업 후 수임한 첫 사건이 소위 “백두청년회 사건”이었습니다. 북한 관련 자료를 백두청년회라는 명의로 불특정 다수에게 이메일로 발송한 이적표현물 반포죄 혐의로 국정원에 체포된 의뢰인이었습니다. 제가 당시 수임 후 국정원에 매일 접견을 갔습니다. 혹시나 해서요. 그때 국정원이 변호사나 피의자를 농락하는 능숙하고 교묘한 기법을 현장에서 경험하며 아마추어 신참변호사로서 일일이 이의제기하며 다투었습니다. 매일매일 살얼음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제가 첫날 접견을 다녀간 후 저녁 조사과정과 그 다음날 오전 조사과정에서 의뢰인이 구타를 당하였다는 이야기를 다음날 오후 접견에서 듣고 당시 제가 느꼈던 무기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의뢰인을 보호하지 못했고 변호사로서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이후 정말 더 열심히 변론활동을 하였습니다. 고문 증거를 보존하기 위하여 의사를 대동하여 국정원을 찾았고, 법원에 증거보전신청도 하였습니다. 형사고소까지 하였고 거의 10여 년에 걸쳐 무혐의, 항고, 재기수사명령, 무혐의, 항고, 재항고, 재정신청을 통해 끝내 고문 수사관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비록 재판에서는 고문 증거 부족으로 고문 수사관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겁니다. 제가 신참내기 변호사로서 국정원과의 다툼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5. 간첩으로 기소되었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사건 재판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사실이 밝혀지면서 법조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을 밝혀내는 데 숨겨진 뒷얘기가 있을 법도 합니다. 언론에 미쳐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있다면 좀 부탁드립니다. 

“서울시 탈북자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간첩의 탄생』(문영심 지음, 시사인북)이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이 나왔습니다. 뒷얘기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제가 공동변호인단에 회람하며 쓴 이메일도 그대로 게재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회원분들을 위해 몇 가지 생각나는 뒷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게 뒷얘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유우성 씨의 법률구조를 민변에 요청했던 천주교 관계자 분들은 제가 유우성 씨의 변론을 담당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는 말을 아주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왠지 아세요? 제가 너무 과격하다는 소문나서였습니다. 그런데 유우성 씨의 말에 의하면, 국정원 수사관들도 제가 접견을 다녀간 후에 유우성 씨에게 제가 변론을 맡게 되면 3년 정도 받을 형량도 7~8년 형량이 나온다고 말하며 다른 사건의 예도 들었다고 합니다. 국정원 수사관들이 저에 대하여 안 좋은 뒷얘기를 많이 하는 모양입니다. 
중국에 있는 유우성 씨 아버지, 그리고 외삼촌 부부를 만나기 위해 연길을 방문하였을 때도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여러 변호사들이 중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유우성 씨 가족들은 수임료도 주지 않았는데 저렇게 외국까지 여러 변호사들이 온 것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희 일행을 처음 만나고 나서 유우성 씨 가족들은 저희를 국정원 관계자로 오해하고는 그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깨고 전화도 받지 않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국정원이 중국에까지 따라와 가족들을 상대로 저희를 만나지 못하게 회유하며 어디로 데려갔는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가족들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국제전화를 참 많이 했습니다.
유가려 씨가 인신보호구제절차에서 저희 변호인단을 하루 따라 나온 그날은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유가려 씨는 다시 중앙합동신문센터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공포에 질려 있고 저희 변호인들도 제대로 믿지를 못했습니다. 당시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도 유가려 씨를 취재하기 위해 민변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유가려 씨는 연길에서 함께 알고 지내던 지인 언니가 민변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때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때가 거의 밤 10시경이었고 그 시간부터 다음날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기자회견 제목과 순서를 정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고 여러 실무를 준비하였습니다. 기자회견 제목은 “탈북 화교 남매 간첩 조작 사건 긴급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다음날 기자회견 걱정에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기자회견 전에 국정원에서 유가려 씨를 데려가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 돼서 후배변호사에게 부탁해 유가려 씨의 숙소를 다. 뒷얘기로 이정도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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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우성 씨와 그 가족들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 우리 사회와 국가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듯한데요, 옆에서 지켜봤던 변호인으로서 그 분들이 겪었던 가장 큰 고통은 어떤 점인가요?

여동생 유가려 씨의 허위진술로 오빠 유우성 씨가 간첩으로 조작되는 과정에서 두 남매의 아버지는 한국의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노이로제에 걸려 계셨습니다. 도우러 온 변호사들도 의심했을 정도니까요. 모두 아시겠지만, 1심 무죄가 나오자 국정원은 정말 큰일이 났다고 생각하여 중국의 공문서도 위조해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증거로 냈다가 이것마저도 저희 변호인단과 뉴스타파, 한겨레신문의 취재로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유우성 씨, 유가려 씨가 간첩으로 조작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흑의 터널에 갇혀 보낸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두 남매는 제게 새해 인사를 하면서 지옥에서 자신들을 구출해 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송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 편하게 말씀드리지만, 유우성 씨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현장에 함께 있었던 저에게 있어서도 지옥과도 같은 고통의 날들이었습니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채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여동생을 고문하고 회유하여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을 하게 하였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은 증거조작이 드러났음에도 사과는커녕 유우성 씨를 어떻게든 흠집 내고자 악의적으로 여론몰이를 했습니다.
국가폭력의 추악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입니다. 유우성 씨, 유가려 씨, 그 가족에게 미안합니다. 

7. 유우성 씨는 최근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님과 화촉을 밝히신다고 보도가 났는데요, 참 축하할 일입니다. 이러한 부부탄생은 흔치 않는 일일 듯한데요, 아름다운 사랑얘기를 주변에서 지켜 주어야 할 듯합니다. 유우성 씨의 행복한 내일을 위해 지면을 통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제가 유우성 씨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만나 이룬 사랑의 결실인 만큼 두 분의 가정은 이기적 가정이 아니라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일구어 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8. 화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작년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명의로 대한변협에 변호사님에 대해 징계청구가 있었지요. 민변 소속변호사 7명에 대해 검찰이 변호사단체에 징계를 청구하면서 상당히 파란이 일었습니다. 장 변호사님에 대한 징계청구사유는 ‘허위진술 종용’이었는데, 이 점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으실 텐데요. 

제가 탈북자 여간첩 사건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종용하였다는 이유를 내세워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법에 따른 징계개시를 신청하였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불개시결정을 하였고 이에 검찰에서 이의를 제기하여 대한변협 징계위원회에서 다시 검찰의 이의제기에 대해 기각결정을 하자 검찰에서는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다 현재 이의를 제기해 놓은 상황입니다.
검찰의 행태는 피의자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변호권에 대한 침해행위입니다. 형사소송의 한 당사자인 검찰이 대립당사자인 변호인의 변론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려는 부당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강력히 대응해 나갈 생각입니다. 

9. 변호사법 제1조, 변호사윤리장전 등에도 변호사의 최고의 덕목은 여전히 ‘인권옹호’에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가 인권활동을 주업으로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그 동안 인권변호활동을 하시면서 겪었던 많은 경험이 있으실 텐데, 인권영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려는 후배변호사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부당한 공권력의 횡포로부터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변호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소외된 이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들어서자마자 중앙합동신문센터(현재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개칭)에 수용되어 독방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탈북자들의 인권옹호를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계획입니다. 

10. 변호사님께서 현재 계획 중인 인권활동사업이나 장래 꼭 하시고 싶은 사업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요즘 저는 “민들레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란 비영리 민간단체을 널리 알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고,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탈북자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통하여 탈북자들이 잠재적인 간첩으로 취급 받으며 공안 정국을 유지하는 부품으로 사용되는 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억울한 여간첩을 위한 재심 등 법률지원과 영치금 후원,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제도적 개선 등을 목표로 하는 단체입니다. 특히 탈북자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기 위한 법률지원 활동을 주되게 하고자 법률기금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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