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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이집트를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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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전날이었던 2014년 1월 26일, 카이로 시내에서의 폭탄 테러로 30여 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며칠 후에는 군사정권의 고위 관료가 저격당해 사망했다고 했다. 2015년 5월 16일 이집트 법원은 무르시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구체적인 내막이야 어떻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처음으로 당선되었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보복 테러가 일어났다. 테러로 인해 판사 2명과 검사 1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뒤를 잇고 있다. 

2014년 1월 27일, 두바이 공항을 뜨면서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카이로 공항이다. 워낙 평가가 좋지 않은 나라이다 보니 아무런 기대도 없이 천천히 비행기를 빠져 나와 입국장으로 향한다. 급할 것 없다는 생각 및 표정으로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그런데 어? 줄이 빨리 줄어든다. 여권을 내민다. 입국심사대 공무원은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듯이 비자를 여권 사증에 붙이고 도장을 쾅 찍는다. 중동아프리카 다른 나라를 많이 다녀 봤지만 입국이 이렇게 쉬운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생각보다도 훨씬 수월하게 공항을 빠져 나왔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로 오는 동안 성치 못하고 무질서한 차들과 길바닥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 더미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안타까움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호텔로 들어오니 다른 세상이다. 항상 그렇지만, 사회 인프라와 호텔의 수준을 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에 따라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집트는 후진국이 되어 있었다. 

이집트는 과거의 영광을 멀리하고 국민이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 하는 그런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인구 8천 5백만 명의 인류 문명 발상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태양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고대 강국이었던 이집트는 그리스, 로마, 투르크, 근대 프랑스, 영국 등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독립을 한 이후에 다시 중동의 맹주가 되고자 하였으나 ‘무바라크’의 독재 이후 사회는 정체되었고, 아랍의 봄을 타고 무바라크가 물러났으나, ‘무르시’ 민주 정권은 또다시 2013년 ‘엘시시’의 군부 쿠데타에 무너지고 말았다.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한 무슬림 형제단 배경의 무르시 대통령은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이 충분치 않았고, 카타르 왕정의 재정 지원과 ‘알자지라’라는 카타르 언론을 지원을 받아 국정안정을 찾으려 하였으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무바라크 당시의 고위관료들은 철저하게 복지부동 했고, 정부는 통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무르시의 힘으로는 한심한 이 나라를 다시 세우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무르시가 뽑은 ‘엘시시’라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난 2013년 7월경 이란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그 뉴스를 접한 것 같다. 쿠데타에 대해 전 세계는 관심을 가졌지만, 반민주적인 처사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칼을 들지 않았다. 

이집트 고위관료와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세력은 혼란하고 무정부한 상태의 무르시 정권보다는 엘시시를 위시한 강력한 군사정권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카타르의 역할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사우디, UAE, 쿠웨이트 왕정도 측면 지원을 했을 것이고, 그 뒤에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의 힘도 작용했을 것이라 한다. 

2010년 혁명 이후 외국 자본은 상당수 빠져 나갔고, 이집트의 경제는 매우 취약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해외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돈이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30% 이상)을 차지한다. 정체가 안정되지 않으니 투자가 이루어질 수 없고, 재정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기득권 층은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갈까 아등바등하고, 화난 국민을 달래기 위해 경제원칙에 반하는 재정지출을 감행한다. 휘발유 값이 400원, 주식인 아랍빵(난의 일종)은 1파운드(150원)에 4개. 억지로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원리대로 운영하자면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고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를 재분배하여 선순환 재정 운영이 가능해야 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국민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억지로라도 빵과 기름을 제공하는 것이라 위정자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중동지역에 법을 수출하고 법관과 정치인을 주변국으로 배출했던 나라, 지금도 법 자체는 잘 정비가 되어 있고 언제든 정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변호사만 약 50만 명에 달하는 나라, 훌륭한 위인 역시 많이 배출된 나라인데, 법 집행의 투명성이 떨어지고, 부패 때문에 사법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재판을 하면 몇 년이고 끝이 나지 않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현지 변호사들에게 이집트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잘 배운 자들이고, 돈 많은 자들이며,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들로부터도 지금의 상황은 안타깝다는 말을 들었다. 민주주의가 절대가치는 아니지만, 국민에 의해 뽑힌 대통령을 군부가 쿠데타로 전복하고 무바라크의 사람들이 다시 지배한다는 사실에 지식인들은 불안해한다.

보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들이 느끼는 삶과 국가에 대한 상실감이다. 이집트는 국가의 크기·역사·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중동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낮게 취급된다. 수천 년에 걸친 침략과 노예로의 전락은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공동체 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최우선으로 여기게 하였을 것이다. 이슬람 왕정으로 힘을 발휘하는 나라는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GCC·걸프 연안국가들이며, 모든 자원을 다 가지고 있는 이란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슬람 국가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집트가 그렇고, 파키스탄이 또한 그렇다. 종교가 삶을 통제하지만, 그들의 배고픔과 인권을 달래 주지는 못한다. 소수의 종교 지도자나 기득권자의 체제유지를 돕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본인들이 행복하다는데 왜 당신이 걱정하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이집트 사람들의 행복지수보다 꼭 높다고만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는 싸우더라도 도를 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동아프리카에서는 서로 다르다고 죽인다. 최소한의 관용이 없다. 이러한 형태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두바이 복귀를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길은 엉망이고, 여기 저기서 빵빵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아프다. 차선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막히는 길을 지나 고속도로라 할 수 있는 공항길로 접어 들었는데 또 막힌다. 길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도로의 한 복판에 한 여성이 누워있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치인 모양이다. 아직은 살아있지만 어려워 보인다. 

내가 너무 무디어진 것인가? 이집트를 위해 고민에 빠져 봤다. 문제가 무엇일까? 그들에게 어떻게 ‘회복’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을까? 강력한 군사독재를 통해 경제를 살리는 것이 우선 해야 하는 일일까? 아니면 이슬람의 교리를 신봉하도록 보다 강한 정교일치의 사회가 필요한 것일까? 당장 정답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중동아프리카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답을 찾기 전까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너나 잘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세 아이와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할 일이다. 


수정됨_서울변협 방문 사진.jpg

2015. 5. 17. 
김현종 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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