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대로 할 수 있냐고요? 그 순리도 공짜 아니에요.” 종종 착각합니다. 순리대로 일이 흐르는 건 당연하다고 말이지요. 또 당연히 이뤄져야 할 것들이 실현되는 과정에 비용은 필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합니다. 그게 ‘순리’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라는 걸 드라마 ‘삼식이 삼촌’의 이 대사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수로가 잘못돼 민가로 향하는 물의 방향을 틀기 위해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의 혐의를 벗겨내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그러진 일을 순리대로 흐르게 하려고 할 때 더 큰 비용이 들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검찰과 법원은 법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순리를 찾는 기관입니다. 제가 지망해서 온 첫 출입처이기도 합니다. 법적으로 순리를 판단하는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이곳엔 역리(逆理)를 겪어 억울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조직적으로 다단계 사기를 친 사기꾼에게 법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자신의 의사와 반하게 성범죄에 휘말린 사람들, 최근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를 일으킨 티메프(티몬 · 위메프)의 피해자들이 그렇습니다.

 수사와 재판을 통해 역리를 순리로 돌려내는 과정은 지난하고 부단한 노력이 동반됨을 체감합니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피해자와 피의자, 참고인의 입을 통해 진술을 모읍니다. 압수수색으로 단서가 될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도 하지요. 변호사는 변호로, 판사는 판결로 법적 순리를 찾아갑니다. 현장에서 만난 법조인들은 스스로의 직업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출입하는 검찰청만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 검사 1인당 담당하는 사건 수는 1,064건인데요. 이는 일본의 2.4배이고, 유럽국가 평균보다는 4.5배 더 많은 수준입니다. 형사부 검사 1명은 매달 150건 넘는 사건을 처리한다고 합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건 다른 법조인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일까요. 복잡한 사건의 증가, 법관 수 부족,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상실 등 환경적 · 제도적 요인이 겹치며 사법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하염없이 길어졌습니다. 법원이 발간한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형사공판 합의 사건은 1심 선고까지 평균 6.8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2018년(4.9개월)보다 1.9개월 늦어진 셈이죠. 항소심의 경우 고법은 5.2개월, 지방법원은 7.2개월이 소요됐습니다. 상고심은 3.2개월이 걸렸는데요.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면 평균적으로 1년 3개월이 넘는 시간을 소송에 써야 하는 셈입니다.

 재판이 길어지면 담당 법관도 바뀌고, 피고인의 구속 기간이 도과돼 풀려나는 등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당사자와 국가의 소송 비용도 증가하지요. 어떤 사건은 피해자의 존재가 잊혀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여름 폭우 때 경북 예천군 실종자 수색 작전에 나섰던 한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수사 외압 의혹이 불거졌지요. 1년도 더 지났지만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입니다. 
 
 법조계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법적 순리’를 찾는 과정은 더 없이 중요하단 걸 느끼는 요즘입니다. 수사와 변론, 공소유지와 판결을 통해 내려진 법적 결과가 당사자의 인생과 주변인의 삶,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형사사법에서의 순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그 피해가 지대하단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북한 간첩으로 몰려 1967년에 사형 당한 故오경무 씨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건 지난해 10월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억울하게 사라진 지 56년 만이지요. 정치인들이 얽혀있는 각종 권력형 사건의 수사 · 재판 결과는 정치 지형 재편과 그 지지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지금도 전국의 검찰과 법원에서는 전 · 현직 대통령과 정당 대표가 얽혀있는 수사와 송사가 진행 중입니다.

 여러 역리들을 바로잡으며 사법절차는 성장했습니다. 법조인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법조 출입 기자들의 견제와 감시도 역할을 했으리라 감히 자부합니다. 더 나은 내일이 될 수 있도록, 법조 출입 기자로서 순리를 찾는 과정에 함께 힘쓰겠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감시와 취재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순리를 찾아나가는 지난한 과정에 뛰어드신 여러 법조인들을 응원합니다. 두려움도 편견도 없이 검찰과 법원에서 함께 하겠습니다.
 

양수민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