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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상념]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요즘 사회의 트렌드 중 하나는 ‘요리’인 듯하다.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요리사들이 저마다 화려한 ‘작품’을 선보여 스타 셰프로 자리매김하는가 하면 어설픈 요리 로 훅 무너져 내릴 뻔하기도 했고, 밥 한 끼 해먹기 위해 여럿이 시골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예능이 인기를 끌며,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한 육아 프로그램에서도 아빠들이 자녀들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실제 이러한 움직임은 방송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요리 열풍’으로 이어져 마케팅이나 일상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들 한다.

알콩달콩한 가정을 꾸린 지 몇 달 되지 않은 나 또한 요즘의 ‘요리 열풍’은 어떻게 해서든 쫓아가야 하는 흐름임을 매일 실감한다. 스타 셰프들의 묘기에 가까운 요리 솜씨에 감탄하든, 매회 탈락이 결정되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결과에 손에 땀을 쥐든, 또는 천생 연예인들인 출연자들의 어설픈 실력에 낄낄대든 여하튼 간에, 요리 프로 시청 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허기라는 증상에 몇 개월 전까지 나에게는 유효했던 ‘라면이라는 처방’이, 이제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유효하지도 또 유효해서도 아니 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요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영역이었다. TV나 인터넷에서 가르쳐 준 비법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음식들이 완성되었고, 준비과정이나 치우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조리과정이란 것도 꽤나 박진감 넘치고 스펙타클한 순간임을 알게 되었다. 신혼이라 아직 시퍼렇게 날이 선 식도를 들고 어설픈 놀림으로 채썰기, 어슷썰기, 깍둑썰기 등을 하다 보면 다른 잡다하고 쓸데없는 생각들 역시 말끔하게 썰려나가기 마련이다. 잡다한 상념보다는 내 손가락 한 마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겠지.

허접한 잡담들이 길어지긴 했지만, 어쭙잖게 요리를 따라해 보다 얻은 것들은 맛있는 밥상만은 아니었다. 나 혼자야 식은 밥에 라면 하나라도 감지덕지였지만, 내 옆 사람의 배고픈 눈초리엔 뭔가 금방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를 하나쯤 갖고 싶었다. 또 왜 우리 엄마는 그토록 배부르다는 아들놈에게 더 먹어라 노래를 부르셨는지 그 1절 정도는 이해할 듯도 하고, 혼자 먹는 밥상이 앞으로는 점점 외로워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뭐, 사실 ‘만렙 유저는 아이템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왠지 멋있어 보이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커다란 중식도도 하나 주문했다. 그걸로 마늘 한 번 내리쳐 부숴 보는 게 내 로망이지만, 그랬다가는 내 등짝 또한 부서질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쩝.

하지만 무엇보다 요리가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빠듯한 시간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집에서 저녁을 먹기도 어려운 판에 요리라는 건 어불성설이 아니던가. 나도 지금이야 없는 주말이라도 쪼개서 멸사봉공의 마음으로 요리를 바치지만, 이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싶기도 하다. 과연 나의 엑스칼리버, 중식도는 몇 번이나 쓸 수 있을까? 그 칼로 짧게만 느껴지는 휴일 저녁 시간도 푸짐하게 썰어낼 수는 없을까?


수_한승훈 증명사진.jpg

한승훈 변호사
사법시험 제51회(연수원 4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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