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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대륙의 통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이스탄불, 터키
이스탄불 공항은 (두바이를 제외한) 여타 중동 공항과 달랐다.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직원들은 저마다 맡은 일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입국심사가 조금 지체되었지만 60대 기사분이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태우고 이스탄불 시내를 향해 달린다. 한참을 지나다 보니 저 멀리 멋진 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를 비롯한 그림 같은 야경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가 보이지는 않지만 보스포루스 해협을 잇는 다리를 지나고 있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 다리 하나를 건너 넘어가는 기분이 묘하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는 동양과 서양이 왜 그리도 멀었는지… 공부를 할 여력도 없고 생각도 없이 출발한 일정이라 역사와 전통의 이스탄불에 조금은 미안할 정도이다. 

높은 건물이 많지는 않지만,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는 이스탄불. 천오백만 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임을 증명하듯 이스탄불의 교통체증은 악명이 높다. 시내 한 호텔의 46층에 묵게 되었다. 레지던스 호텔이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야경이 아주 멋있다. 조금 피곤했지만, 그래도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이 하고 싶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현지 맥주인 Efes를 세 잔 마셨다. 

사무실 출근 후 회의. 항상 그렇지만 바쁘게 이곳 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점심은 항상 맛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레스토랑. 호박 수프 한 그릇에 배가 부르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나누는, 서아시아·동유럽의 보고인 흑해를 지중해와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아름다운 모습을 한 대동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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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 해협의 터키 전통식당에서의 점심시간. 가지 요리가 다양한데, 참 맛있다. 2014년 1월]


로마, 비잔틴 제국,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심에 위치했던 이스탄불. 동양과 서양을 잇는, 기독교와 이슬람 역사의 하이라이트를 함께 한 도시답게 웅장하고 아름답다. 지중해 여타 도시들처럼 특유의 분위기가 있지만, 모스크와 성당을 중심으로 한 배경이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웅장함을 보여 준다. 

한-터키 FTA가 체결되었지만, 한국인 중에 아직도 터키 전문변호사가 없다는 사실이 필자를 이스탄불변호사협회로 이끌었다. 서울의 명동 거리와 유사한 ‘탁심’ 거리 한 편에 자리 잡은 협회는 초라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래되고 낡은 한 건물의 두 층을 사용하는데, 그마저도 전혀 정비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중세시대에나 사용했을 법한 낡은 것이었다. 손으로 문을 여닫는다. 다행이 그 엘리베이터가 우리를 협회 사무실까지 무사히 안내해 주었다. 

국가 재정이 거의 파탄에 이르다 보니, 변호사협회 역시 가난하다. 회비로 운영이 되는 것은 한국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재정 규모나 운영 방식이 열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이스탄불변호사협회 간 교류를 위한 창구를 마련하고, 청년변호사 교류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이스탄불변호사협회의 반응 자체는 좋았으나, 문제는 해당 사업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이스탄불로 청년변호사를 보내는 것은 될 것 같은데, 터키변호사를 서울로 데려올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생각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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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변호사협회 방문, 국제이사를 비롯한 운영진과 협의 중, 2014년 1월] 

저녁식사는 LG전자 터키법인 사람들과 현지 식당에서 했다. 숯불 양고기와 전통 요리를 한 상 차리고, 화덕에서 갓 나온 ‘케밥’에 술도 한잔 했다. ‘아락’이라는 술에 물을 타니 우유 빛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역한 고무 냄새가 났지만, 한 잔, 두 잔을 연거푸 들이키니 이 또한 즐겁다.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심지어는 태어나자마자 모든 주민등록에 종교는 이슬람으로 기재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현지 변호사에 확인하니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90% 이상은 무슬림이다)인데도, 국민들 대부분은 터키가 유럽의 일부라 주장하며 술을 허용한다. 

정치적으로도 흥미롭다. 많은 국민은 유럽의 문화·사회제도를 받아들이고자 하나, 정권의 핵심에는 무슬림 종교지도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권력을 향한 종교지도자의 사투가 국민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현실이 한국의 정치를 보는 것과 비슷해서인지 안타깝다. 고·중세사는 한국의 역사와 다르지만, 근대사는 한국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타튀르크 케말파샤(터키의 아버지)가 1923년 터키 독립 후(공화정을 선포한 후)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고, 정교분리, 산업의 근대화, 유럽의 법제 및 시스템 도입으로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되는 군사쿠데타와 쿠르드족과의 분쟁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 정당의 이합집산, 정치권력의 이슬람화 등으로 사회 발전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고 있다. 

한-터키 FTA가 체결되었음에도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정치 현실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최근에는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 이슬람 중심 사회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EU로의 합류 가능성은 점점 낮아져 가는 형국이다. (대통령제가 가미된 내각책임제의) 현 대통령 및 총리는 헌법개정과 총선?대선을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려 하고 있지만 다수의 국민이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으며, 정의개발당의 국가 이슬람화 노력 및 국가 재정파탄에 반대하는 세력이 전국적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것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일이다.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군부, 야권, 심지어는 법조계조차도 정부비판을 쏟아내고 있으며, 다수의 고위군인 및 야권인사들이 구금 및 정부탄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난 2014년 8월 치러진 터키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에르도안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3년 이상 집권을 계속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터키를 혼란으로 몰아 넣을 것인지 모르지만 2015년 6월 최근에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 과반의석 획득에 실패함으로써 극우세력의 민족주의행동당이나 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과 연정을 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당들이 정의개발당에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 변화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의개발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함으로 인해 독재로 흐를 수 있는 ‘전권 대통령제’로의 전환에는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다. 

쿠르드 족을 비롯한 민족 문제, 지역 간의 갈등 문제,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간의 갈등에 국가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터키도 여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가 난무하다. 정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국민들이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와 형제의 나라이어서인지, 여러 가지로 닮은 점이 많다. 


수정됨_서울변협 방문 사진.jpg

2014. 6. 15.
김현종 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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