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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대중음악] 낙타, 바이러스 그리고 메르스(MERS)
나라가 온통 메르스 공포에 휩싸였다. 중동지역의 낙타를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우리나라를 강타한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신종 베타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증인 MERS는 2003년 SARS,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보다 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초기 치사율도 30%이상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높다고 한다. 14일의 잠복기가 비교적 길다는 점도 거대한 공포의 원인이며, 노약자뿐 아니라, 지병을 앓지 않고 있었던 젊은 연령층의 사망자까지 발생하였다는 점도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움츠려들게 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알력, 진료 거부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을 우왕좌왕 방황하게 만들었다. 결국, 당국과 병원의 미숙한 대처 때문에 메르스에 대한 초기 대응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직, 간접적인 희생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애꿎은 낙타가 마치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어 오명을 안아야 했고,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인류의 지상과제로 꼽히게 되었다. 하지만, 낙타도 바이러스도 그리 큰 잘못은 없다. 갑작스럽게 무시무시한 존재로 낙인이 찍혀서 억울한 낙타와 바이러스. 그들도 음악 안에서는 그저 따뜻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테마일 뿐이다. 

낙타.jpg

박원순 지자체 합동회견.jpg



메르스 발생 이후 서울대공원 낙타를 격리하는 조치까지 취해졌고, 낙타에 대한 패러디도 난무하고 있다. 그만큼 공포의 대상임을 반증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왕자”로 불리우며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가수 이승환에게 낙타라는 존재는 지금처럼 공포가 아니라, “자유”와 “저항”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20대의 뒤틀어진 희망과 기대에 대한 고통을 해소하는 탈출구로 중동지역의 은빛 사막을 유유자적 다니는 붉은 낙타를 찾아냈던 것이다. 이승환과 유희열이 작곡한 1997년 작 “붉은 낙타”는 당시로서는 금시초문이었던 파격적인 소재와 함께 대서사시 형식의 장엄한 악곡 구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앞날이 두려웠던 젊은 세대들에게 해방과도 같은 자유를 안겨 주었고, 기성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의식마저 키워줬다. 특히, 곡 후반부에 거칠게 몰아치는 하드록 부분 “난 가고 싶어♪ 은빛 사막으로♬, 난 가고 싶어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은 우리나라 관객들이 자랑하는 떼창의 단골 소재로 사랑받고 있다. 20년쯤 지난 오늘 날에도 이승환이 펼치는 격정적인 무대에서 붉은 낙타의 함성은 붉은 악마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아니하고 있으며, 붉은 낙타가 던져주는 메시지에 세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공감하고 있다. 락그룹 피아의 리메이크에 이어, 2015년 슈퍼스타K 준우승자 김필이 준결승 경연곡으로 붉은 낙타를 지목하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메르스를 이겨내려면 무작정 낙타를 멀리할 것이 아니라, “붉은 낙타”의 가사와 선율에서 느껴지는 자유와 저항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퍼렇게 온통 다 멍이든 억지스런 온갖 기대와
뒤틀려진 희망들을 품고 살던 내 20대 
그때엔 혼돈과 질주로만 가득한 터질 듯한
내 머릿속은 고통을 호소하는데 내 곁엔 아무도
나는 차라리 은빛사막에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
홀로 아무런 갈증도 없이 시원한 그늘, 화려한 성찬, 신기루를 쫓으며
어디 객기도 한번쯤 부려보며 살았어야 했는데 아까워 
안돼! 라고 하지 못한 건 허기진 내 욕심을 채울 착한 척 
하려한 나의 비겁한 속셈일 뿐이야
장미빛 미래는 저만치서 처절하도록 향기로운 냄새로 
날 오라하네 이리 오라하네
난 가고 싶어 은빛 사막으로, 
난 가고 싶어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

이승환 콘서트.jpg


중세의 유럽을 황폐화시켰던 페스트, 16세기 중남미의 붕괴를 가져온 천연두 등 각종 전염병부터 작년에 퍼졌던 에볼라 공포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오랫동안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루어 왔고 이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메르스도 결국 바이러스와의 대결전이다. 하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바이러스의 존재조차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전염병일 수도 있다. 2000년, 바이러스는 공포가 아니라 두근두근 사랑을 타고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3인조 그룹 롤러코스터는 “Love Virus”로 톡톡 튀는 젊은 감성에 몽환적 분위기를 나른하게 씌웠다. 

롤러코스터.jpg


이제는 이효리의 남편으로 더 유명해진 기타리스트 이상순과 중성적인 보이스톤의 리드보컬 조원선의 매력 덕분에 수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롤러코스터는 그들의 히트곡 “Love Virus”의 간주 부분에 국악기 아쟁을 절묘하게 배치시켜 이 노래의 감칠맛을 배가시킨 바 있다. 바이러스가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속성은 아이돌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었나 보다. 2008년 3인조 댄스그룹 타이푼은 산뜻한 댄스곡 “러브바이러스”로 차트 상위권을 오르내렸으며, 2013년 걸그룹 SKARF는 동명이곡 “러브 바이러스”와 함께 깜찍한 안무를 선보였다. 서태지의 연인으로 한 때 유명세를 탔던 이지아도 2008년에 “러브바이러스”라는 제목의 노래로 화제를 모았다. 그녀의 “러브 바이러스” 음원의 수익금 일부는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에 기부돼 필리핀과 각국의 불우아동을 위해 쓰였다. 

타이푼.jpg


스카프 러브바이러스.jpg

이지아 러브바이러스.jpg


이와 같이, 사랑이 듬뿍 담긴 바이러스는 선행의 기운을 널리널리 전파시키기도 한다. 메르스는 당장 퇴치하고 꼼꼼하게 치유해야 하는 악성 바이러스겠지만, 우리에게 행복과 웃음을 가져다주는 바이러스들은 부지런히 발굴하고 멀리멀리 퍼뜨려야 할 것이다.

이재경 변호사
사법시험 제35회(연수원 25기)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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