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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변호사의 조언] 이호선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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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교수님 약력

1987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89 제31회 사법시험 합격
1992 사법연수원 제21기 수료
2004 리즈대학교(영,University of Leeds) LL.M
법무법인 CHL 구성원 변호사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사단법인 대한법학교수회 사무총장
유럽연합대학원(EUI) 방문교수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현)
한국입법학회 기획이사(현)


1. 법조경력이 올해로 23년이 넘으셨는데, 법조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구미전자공고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3주 만에 자퇴하였고, 그 무렵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그 해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어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이후 국민대학교에서 학부 및 대학원까지 장학금과 생활비를 저에게 지원해 줘서 진학하였습니다. 
대학교 시절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어 법조인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대 휴가 때 뵙게 된 지도교수님께서 한국의 학벌 사회로 인해 설령 외국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고 온다고 해도 학교에 자리 잡기는 쉽지 않다는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 때 현실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운이 좋게도 1988년도에 1차를, 1989년도에 2차를 응시해서 합격했습니다. 

2. 198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시다가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보람을 느끼시는지요? 
2003년 영국에 가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1년 뒤 2004년에 돌아왔을 당시에는 학교로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익힌 내용들을 나눌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때 마침 모교인 국민대학교에서 강의를 해 달라는 제의가 와서 비정년트랙으로 EU법과 회사법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때는 겸직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변호사업무는 계속 하면서 학교에 나갔었는데, 2007년경 로스쿨 도입으로 실무교수진을 확충할 때 규정상 휴업계를 내고 학교에 계속 눌러앉게 되었던 겁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학생들을 상대로 법학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함으로써 전공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 또 나름대로 방황하고 불안해하는 그들과 같이 공감하며 방향을 잡아주는 데서 학교에 남아 있는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법학이라면 재미없는 학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특히 법조문 해석 위주의 공부는 그런 위험성이 크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이를테면 법은 식당에서 손을 닦을 때 물을 적셔 부풀려서 사용하는 둥글게 말아 놓은 일회용 작은 손수건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엑기스만 있는 것이지요. 음식으로 치면 비타민 알약에 해당한다고나 할까요. 그 뒤에 정책과 이념이 법조문 하나로 엑기스만 남은 것인데, 법을 입체적으로 보려면 누락되었던 것들을 다시 붙여 봐야지요. 시대적 배경과 법제 비교도 들어가야 할 거고요. 이런 것들이 들어가면 마른 수건은 원래 크기보다 커지고, 비타민정은 식기에 담긴 음식이 되는 것이지요. 제 강의에서는 되도록 학생들에게 법을 그렇게 보여 주려 노력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1990년부터 지금까지 출간한 법학 관련 책들이 1,400여 권 정도 됩니다. 여기엔 제휴하고 있는 다른 주요 출판사들 책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그 정도로 법학은 방대한 학문이라는 것이지요. 
‘여행을 가면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법을 입체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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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재 국민대학교 법학과에서 상법, EU비즈니스 및 국제통상을 가르치시는데, 위 분야에 대한 전망과 교수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처음에 로펌에서 변호사생활을 하다가, 유학을 보내 준다고 하여 미국 대신 유럽을 택하였습니다. 주변에서 미국에 가면 어느 주 변호사자격이라도 딸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유럽이냐고 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 해도 업무를 하면서 대기업, 금융권 법무팀 사람들과 일을 해 보면 뉴욕주 변호사자격증들을 장롱면허로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자격증보다는 공부 분위기에 젖어 보고 싶어 영국으로 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선택을 잘 했다 싶습니다. 
제가 영국 리즈대학 석사과정으로 들어간 전공이 ‘EU법’과 ‘국제비즈니스법’인데 그 곳에서 EU법을 접하면서 그 중에서 ‘경쟁법’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쟁법은 EU가 독자적으로 입법하고 배타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EU 통합의 대표적 상징이자, 법적 통제의 실효성이 담보된 몇 안 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쟁법뿐 아니라 EU법 자체가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라는 법적 접근이 상이하고, 각 회원국들의 이해관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타협을 통해 정책을 형성하고 결국 법제화하는 지혜의 산실로 생각됩니다. 실정법만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시야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실정법을 뛰어넘어 정책과 국가 간 정치적 충돌이 맞물려 조율하는 과정의 그 이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EU법은 법조인들의 시야를 넓혀 주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작년에는 학교에서 연구년을 얻어 이태리 피렌체에 있는 유럽연합대학원(EUI)에서 일 년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평소의 이런 생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EU법을 한번 공부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4. 법조인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사실 변호사로서 우리가 자괴감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고용된 총잡이’잖아요. 그걸 떠나서 할 수 있다면 보람이 있을 텐데, 그 질문을 받고 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예전에 네팔 근로자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입는 산재사건이 있어 제가 무료로 변론을 해 주었습니다. 
일정 기간을 정해 들어온 외국인 취업근로자라 일실수입을 본국(네팔)법에 의하면 별로 받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사정이 딱해 우리나라 기준으로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했고, 판사님께서도 그런 방면으로 열린 분이시라 조정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근로자 기준보다는 못 미치지만 상당한 정도로 인용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그 네팔 근로자는 영어교사를 하다 왔다고 하더군요. 상당히 인텔리였는데 그 산재보상금으로 수도에 중형아파트 하나를 사고도 남는 돈이라고 말하면서 매우 고맙다며 편지를 보내와 기억에 남습니다. 

5. 현재 사법시험 존치에 대한 사회각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평소 생각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보통 사법시험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전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법개혁의 시작부터가 사실은 원인 진단과 분석, 처방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사법시험이 폐지가 될 경우 가장 심각한 문제가 ‘공무담임권’침해 문제라고 봅니다. 사법시험하에서 변호사를 배출하지 못하던 대학에서 로스쿨 제도하에서 변호사를 배출할 수 있다는 건 본질이 아니지요. 따지자면 판,검사로 임용되는 사람들의 출신 대학이 더 다양해지고 있느냐, 아니면 소수 대학으로 더 집중되느냐의 문제로 가야 됩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로스쿨 나온 사람들만 판, 검사가 되는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그런 심각한 헌법상 기본권 침해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법시험을 존치하자는 주장이 소위 로스쿨 죽이기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로스쿨이 제대로 되려면 적어도 150명 내지 200명 규모의 정원이 되어야 교육이 정상화된다고 보는데, 그걸 위해서라도 사법시험은 꼭 남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체적으로 교육의 정상화, 균질화가 담보되지 않는 로스쿨의 경우 장기적으로 유지가 어려울 것이고, 그로 인해 나중에 돌아올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사법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150명 내지 200명 규모의 몇 개 로스쿨들에 당초 도입 취지대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입학하고, 사법시험은 법학을 학부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응시하여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이원화된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시험은 사법시험뿐만 아니라 로스쿨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제가 MBC ‘100분 토론’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듯이, 로스쿨이 완전히 기능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사법시험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실 비용문제는 로스쿨이 따라올 수 없습니다. 자꾸 로스쿨이 ‘희망의 사다리’라고 하는데, 어떤 로스쿨에 계신 분이 ‘희망의 동아줄’이라고 하신 말씀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다리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어 보고 갈 수 있지만, 동아줄은 하늘에서 떨어지잖아요. 누구한테 내려올지 모르는 겁니다. 왜 1년에 160명만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야 합니까? 그건 아닌 것이지요. 로스쿨이 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그것도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해당되는 얘기이기 때문에 아무한테나 늘 열려 있는 사다리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몇몇에 국한되는 ‘희망의 동아줄’인 것이지요.

6. 평소 하시는 일 외에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교수들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하므로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꽤 바쁜 직업입니다. 여가는 주로 독서와 영화 보는 일로 보내는데, 요즘은 주로 책 읽는 데 시간을 쓰는 편입니다. 
최근에 우연히 이승만 전 대통령이 청년 시절 러일전쟁 직전 모반죄로 구속되어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잘 모르고 오해했던 부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한말 스물아홉 살 청년의 넓은 식견과 미래를 보는 혜안에 놀랐습니다. 내친김에 그 분이 쓴 책 중 일본의 진주만 공급 직전에 출간되었던 『Japan Inside Out』(우리말로는 ‘일본 내막기’로 번역)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일본의 속성을 이 분처럼 꿰뚫고 위험성을 경고한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책들을 접하면서 ‘비단 이승만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가 선대들을 바라보는 평가가 너무 인색하거나 심지어 편향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 분들을 우리 시대 기준에서 볼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회상, 그 분들이 접하고 참고했던 지식의 틀 속에서 이해해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는 거죠. 과거를 욕하기보다는 과거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후손들 입장에서 그 분들이 처한 상황에서 한 선택이 어떻게 보면 최선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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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지막으로 선배변호사로서 후배변호사님들께 꼭 하고 싶으신 조언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합격하였을 당시에도 변호사시장은 좋지 않았습니다. 요새 사법연수원 강의를 나가 보면 젊은 법조인들이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는 두 가지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실무형 지식인’ 또는 ‘실전형 지식인’에 그 정체성이 있다고 봅니다. 변호사는 어떠 학회든 다 가입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쓰면 실릴 기회가 얼마든지 주어져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라는 건 변호사의 현장성에 기인합니다. 물론 여기에 윤리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요. 사회의 중심을 잡아 주는 지식인으로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긍지를 갖고 좀 더 넓게, 멀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장 돈이 안 되고 실무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자기 분야 하나를 정해서 하루에 한 시간이나, 30분이라도 ‘시간 저축’을 꼭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 제자들에게도 권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 중 식사 시간 전에 30~40분간 제 전공과 무관한 분야인 책(종교, 정치, 철학, 윤리학)들을 다양하게 보고 어느 한 주제를 정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러한 분야들도 제 공부에 연관되어 도움이 되곤 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은 것 하나를 골라서 꾸준히 투자하면 3년이나 5년 내에 전문가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변호사는 발표할 기회도 많으니 꼭 시간 저축을 권해 드립니다. 


인터뷰/정리 : 최정민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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