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16년 세계법률가협회(International Bar Association)의 개최지로 서울이 선정되었다는 낭보를 듣고, 2013년도 IPBA(Inter Pacific Bar Association)총회 서울 개최 시 우리옷 패션쇼를 열어, 참가한 세계 각국의 법률가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린 ‘질경이 우리옷’의 이기연 대표님이 생각났다. 이기연 대표님은 홍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순수미술전공자로 민중미술 동아리인 ‘두렁’의 창립멤버이자, 최초로 생활한복이란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 분으로, 일상생활에서 우리옷의 대중화를 시도한 선구자이다. ‘질경이 우리옷’이란 브랜드로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네 자녀를 둔 워킹맘으로, 그야말로 슈퍼우먼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나는 이기연 선생님과 2011년 주역을 같이 배우면서 시작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한시도 쉬지 않고 전통문화를 연구하면서 그 근원을 인문사회과학적으로 탐구해 대중과 널리 공유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한 선생님을 보면서 항상 긍정적 자극을 받아왔다. 이기연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삼청동에 있는 질경이 문화원 한옥 “무봉헌”봉헌층에서 시원한 바람을 받으면서 이루어졌다.
Q: 선생님, 저희 변호사단체와 인연이 처음이 아니시지요? 지난 2013년도 IPBA 개최 시 문화행사로 열린 우리옷 패션쇼가 무척 인상 깊었다는 여러 변호사님들의 말씀을 들었는데, 어떻게 IPBA에서 우리옷 패션쇼를 하게 되었고, 이후 반응은 어떠했나요?
A: 기획사에서 왔었어요. 한 변호사님께서 IPBA 행사 참가자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이니 진행자들에게 우리옷을 입히자는 제안을 하셨다는 거예요. 저는 그 근본 취지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제안을 했어요. 아예, 우리옷을 제대로 보여 주고 그 취지를 느낄 수 있도록 행사를 만들자고요.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준비가 급물살을 탔지요. 회원들이 직접 모델로 참여하고, 치수, 피부색, 머리색 등을 사전에 알려 주면, 저희는 그에 맞는 옷을 준비하며, 단순한 패션쇼가 아니라 우리 문화를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문화판이 되도록 구성을 했지요. 24반 무예팀이 질경이에서 개발한 천연염색 무예복을 입고, 칼, 창 등 다양한 무기를 사용해 보여 주는 무예동작, 인간문화재 이애주 선생 제자들의 북춤 등이 출연진과 함께 어우러졌죠. 특히 시작할 때, DMZ 부근의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어두움에서 점점 밝아지며 바람과, 새떼와, 치성 드리는 사람들이 보이는 영상(이번에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번 수상 직전에 만든 작품이죠.)이 상영되는데, 지나고 보니 한국 최고의 판을 넘어, 세계 최고의 판을 보여준 셈이 된 건가요?(웃음) 또, 출연하게 될 외국 법률가들에게는 사전에 우리 전통옷의 아름다움과 우리옷에 담긴 철학에 대해 강의했고, 별도 사례비를 받는 대신 현장에 판매 부스를 설치해서 한복을 판매했는데 무척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 덕택에 미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까지 열게 되었네요.
Q. 선생님 이력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셔요. 저는 평소에 선생님께서 어떻게 순수미술전공자에서 이렇게 생활한복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기업가로 변신한 것인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연극도 하시고, 탱화도 배우시고, 민중미술 동아리 두렁, 생활문화운동, 민가협 등 다양한 활동도 하신 것도 그렇고요.
A: 이게 뭐 하루 가지고 되겠나.(웃음) 이 변호사님도 알다시피 제가 홍대에서 미술(조소)을 전공하면서 늘 밤을 샐 정도로 독하게 작업했었지만, 어떤 작품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이 시대, 이 땅에, 여자로 사는 작가가 꼭 해야 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예술이 사회·역사와 어떤 관계 속에 존재해야 하는지. 그러나 기존 학교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도, 토론을 할 수도 없었어요. 서구의 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좇으며, 알 수 없는 논리들을 만들어내는 미술대학이 제 숨통을 막았죠. 그래서 제대로 살아 보려 다양하게 몸부림을 친 거죠.(웃음)
그래서 우리 그림을 찾아 다니며 어깨 너머로 인간문화재 스님의 탱화도 배워 보고, 그래도 성에 안 차, 불교미술 전공자들과 새벽공부를 하며 분석도 해 보고, 후배들 모아서 공부하고, 그러다 이런 답답증을 공유한 서울대·홍대 여자 5명이 아예 집을 나와 같이 살며, 미학, 철학, 경제사, 역사 이런 공부를 죽어라 하기도 했었죠. 그 시대엔 하도 금서가 많아 책 구하기도 힘들었고 번역본도 별로 없어서 다른 학교 동아리 친구들의 번역에 의존해 토론을 하기도 했죠. 왜냐면 서구를 무조건 좇을 게 아니라, 그들이 왜 그리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홍익극 연구회에 들어가 3년간 뮤지컬 주인공도 하고, 졸업 때쯤엔 결국 탈반을 만들어 초대회장을 하기도 했지요. 졸업할 때가 되니까 이 학교에 들어와 저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이 찾아갈 곳이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못 말리는 오지랖이죠.(웃음) 결국 스스로 숙제를 다 하지 못했음을 질타하며, 학교를 일년간 휴학하면서 이런 일들을 하다가 광주 민중항쟁을 겪게 된 거죠. 그때, 그 분노가 제 눈을 뜨게 만들었고, 제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공부 끝, 실천으로.
처음으로 그림으로 광주 상황을 그리고, 판화로 밀어 수백장 뿌렸어요. 그리고 그 일을 한 친구들과 한동안 잠수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이른바 순수예술가였던 제가 그 일을 얼마나 완전하게 잘 해치웠는지 증거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아요.(웃음)
그러면서 한국의 산업화 과정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생활 속의 문화로 자리 잡고 삶 속에 기여하는 예술이 대단히중요하다고 느끼고 다양한 실천을 준비하게 된 것이죠.
Q: 선생님, 어떻게 남편 분을 만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결혼 및 출산, 남편 옥바라지 및 사업을 모두 해 내신 거잖아요.
79년쯤인가? 제가 극단 연우무대의 연극에 참여하게 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죠. 당시 서울대 연극반 사람들(김명곤, 박우섭, 김석만 등)이 주축이 된 연우무대에서 황석영 원작의 '장산곶매'라는 마당극을 연극사에 일대 획을 긋는다는 사명감으로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할 때였어요. 서울대 탈춤반이었던 남편이 군대에서 제대한 후 연습하는 것을 구경하러 왔다가 잡혀서 출연하게 되었고, 공연이 끝난 후 서울대 탈반 선배들까지 끌고 제 작업실로 찾아와 여자 5명의 선배 노릇을 했죠. 그 과정에서 남편은 곧 수배자가 되었고, 광주 항쟁을 알리는 다양한 일들을 같이 하면서 연애를 한 거죠.
결혼은 81년도에 했어요. 결혼 후 첫 숙제는 대책 없는 가난이었어요. 게다가 잠시 직장을 가졌던 남편이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연행을 당하고, 며칠씩 사라지는 바람에 찾아다니며 생사확인을 해야 하니, 최소한의 일상적인 삶도 불가능했어요. 저는 남편을 연행해 가는 형사들과 싸우다 첫 아이를 유산했어요. 그 후 남편이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창립준비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제게 이런 제안을 했어요. 자기가 1년을 벌었으니 저더러 1년을 벌라는 거예요. 1년 뒤에는 자기가 벌고, 그땐 너 하고 싶은 일 하고, 1년씩 바꾸자는 거예요. 주변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다들 웃어댔죠. 먹고사는 문제가 장난인줄 아냐고.
그러나 사실 그때 남편이 민청련의 창립에 목숨을 걸 각오였기 때문에 임무교대를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이후 33년 동안 남편이 다시 임무교대를 한 적이 없어요.(웃음) 민청련 활동 중 아들 둘을 낳았고, 그 뒤 감옥 갔다 나올 때마다 하나씩 추가.(웃움) 터울이 많게 딸 둘을 낳았어요.
▲2015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 '위초공단' 시사회에서
임흥순 작가(왼), 이지은 변호사(가운데) 이기연 대표(우)
Q: 제가 알기로는 백기완 선생님과도 각별한 인연이신데, 민가협을 하면서 만나신 건가요? 또, 민주화운동이나 남편 옥바라지를 하면서 인권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은 인연은 없으신가요?
A: 백 선생님은 제가 85년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창립총회 때 고문으로 모시고, 민가협 제호를 받으면서 처음 뵈었어요. 사실 문화패 활동 할 때부터 진즉 만났어야 하는데, 오히려 뒤늦게 만나게 된 것이죠. 백기완 선생님은 문화를 보는 혜안이 탁월하실 뿐만 아니라, 천재예요. 그런데 몸조리 못한 여자가 때만 되면 산후통을 앓는 것처럼 늘 때만 되면 고문후유증이 도지셨죠. 그 상태에서도 여러 차례 수배를 당하시곤 했고요. 지켜보는 것만 해도 눈물겨웠어요. 변호사님들도 여러 분 만났어요. 도움도 많이 받았죠. 그분들이 없었다면 민가협 활동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특정한 분 성함을 말하는 것은 좀 그렇고, 세월이 지나 보니 진심으로 하는 분들과 정치로 입문하기 위한 분들이 구별되더군요.
Q: 선생님은 남편 옥바라지를 하면서 혼자 아이 4명을 키우시고 많은 일을 하셨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요. 그 과정에서 생계는 어떻게 꾸리셨나요?
A: 제가 81년 결혼 후 83년, 84년 출산을 했고, 육아와 밥벌이를 하면서, 민중미술패를 창립하고, 우리옷 입기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고, 나중엔 옥바라지에다 민가협까지 만들었으니, 사는 게 당연히 말이 아니었죠. 미술학원도 하고, 삽화도 그리고 그랬죠. 그때, “새가정”이라는 기독교 잡지에서 30대 여자가 쓰는 문화칼럼을 기획하니 써 보라고 연락이 왔는데 제가 그걸 의, 식, 주 생활 속의 문화비평으로 바꾸자 제안했어요. 3번만 써 보고 재미 없으면 끝내자 했는데, 2년 반을 쓰고, 그걸 모아 책을 내게 되었죠. 그 책이 출판되면서(『날아라 장산곶매야』) 종로서적, 교보문고의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16년 동안 인세를 받았고, 8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600여 회의 생활문화 강의를 했어요. 전국대학에 생활문화운동이 퍼져 나갔고, 학생복지위원회가 만들어졌죠.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옷이 대중들의 집단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자재가 된 것이죠. 그걸 제안하고, 촉발시킨 것이 우리옷 입기 운동이었어요.작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인데, 하다 보니 대중운동이 된 것이죠.
Q: 선생님 그 과정에서 민중미술 동아리 두렁도 창립하신 것 아닌가요? 우리옷 입기운동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네, 제가 홍대에서 찾아도 배울 만한 선배가 없으니, 78년부터 후배들을 모아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같이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후배들과 함께 민중교육연구소 고 허병섭 목사님과 노동자 교육용 그림을 제작했어요. 또 다양한 노동자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미술을 해체해 노동자들이 쉽게 미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죠. 이런 성과들을 모아서 83년도에는 민중 미술패 두렁 창립 예행전을 하고, 84년도에 창립전을 한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예술이 일반인의 삶과 너무 멀다고 느끼게 되었고, 굳이 화랑에 가지 않아도, 옷에 이런 그림들을 그리면 움직이는 전시장이 되겠다 생각해서 시도해 본 것이 우리옷 입기운동을 민중미술운동과 같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Q: 선생님의 행보는 문화 운동 쪽이었는데 어떻게 질경이 우리옷이 법인화되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신 거죠?
제가 좋은 그림 하나 그리려다 결국 민주화 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데요. 올바르게 살려는 많은 사람들이 저 같은 고민을 할 텐데, 민주화 운동을 하려면 너무 무서운 거예요.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르니까 웬만한 뱃심 갖고는 명함을 내밀기 힘들고요. 그래서 평소 저력을 기르는 생활 속의 다양한 일상투쟁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지요. 84년부터 90년대 말까지 13년 동안 의, 식, 주, 놀이 등에서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강사로 모시고 생활문화학교를 운영했어요. 비상설이고, 장소도 비좁고 형편없었지만, 학생들의 열의와 강사진은 당시 최고였어요.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공해문제연구소시절의 최열소장, 민족건축의 김홍식 교수, 민족보건의 고 정민성 선생 등의 이름이 떠오르네요. 이때 졸업생들의 동아리 이름이 질경이였어요.
전 이일 저일 하다가 1년에 2번, 사람들이 잊을 만하면 우리옷 입기 운동 행사를 벌였어요. 몹시 귀찮고 힘들지만, 우리옷 입자고 제안해 놓고 모른 척 버려둘 수가 없어서요. 누군가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저는 잘됐다 하고,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그렸을 거예요.그런데 아무도 그 일을 안 하니까, 미대 나온 죄로 제가 계속하게 된 거죠.. 옷값은 옷감값과 봉제공임만 받았어요. 다음 번에 또 만들 비용만 받은 거죠. 디자인 비용이요?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그거야 당연히 재능기부죠.(웃음)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하면서 우리옷 맵시 선보이기 양식을 창작해 전국대학, 축제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유행시키기도 하고, 직접 지도도 해 주고, 전시회, 연극, 토론극 등 다양한 양식을 만들어내었죠. 그때는 우리옷을 입으면 불심검문을 당하기도 하고, 한 우체국장은 상부로부터 경고장을 받기도 했었는데 죄목이 “풍기문란”이었답니다.(웃음)
그러다 대중적으로 유행하게 된 계기는 사회민주화 분위기와 IMF 외환위기가 겹치면서였던 것 같아요. 김영삼 정권 때, ”우리옷 입는 날”을 지정하고, 공무원, 공공기관, 은행 이런 데서 단체로 입기 시작했어요. 불순한 옷이 갑자기 해금이 된 거죠. 그리고 시장은 외환위기로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어요. 외환위기에 대한 전 국민적 각성분위기 속에서 우리것을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대단하다고 각광받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시장엔 이 난국을 타개할 대안이 없었어요. 이 두 요인이 만나 비약적 상승작용을 한 것이죠.
그런데 그 한계는 이것을 하나의 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바라 볼 뿐이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해 왔는가는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는 거예요.그래서 대기업부터, 남대문 동대문 평화시장, 모든 도매상가에 이른바 개량한복이 깔리기 시작했고, 질경이에서 창작한 디자인들은 그들에 의해 싸구려로 복제 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 꼴이랄까? 질경이는 끝없이 훼손당하기 시작했죠. 이때, 천민 자본주의의 현실을 정말 끔찍하게 겪었습니다.
저는 94년부터 스승을 모시고 전통 천연염색을 전수받고, 그 연구작업을 기계화 실험하고 있었는데 그 작업을 여러 연구진과 추진하려면, 질경이가 주식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주변의 간곡한 여론 때문에 96년, 주식회사를 만들게 되었지요. 제가 제 인생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회사 사장이 된 거예요.
Q: ‘질경이 우리옷’의 상업적 성공과 함께 의장등록이나 디자인 관련 법적 분쟁도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 어떠셨나요?
천민 자본주의 맛을 보면서, 뒤이어 들이닥칠 일들이 바로 예견되었지요 그래서 생활한복에 진출한 제 제자, 후배들을 모아 우리옷을 지속적으로 살려나가기 위한 사단법인을 만들 준비를 하고, 공동으로 고문변호사를 선정해 매달 고문료를 지불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부도를 내고 망하고 하는 업체가 생기면서, 이 시도는 얼마 못 가 깨졌습니다.
저는 디자인 특허 관련 소송을 한 2~3년에 걸쳐 징그럽게 했습니다.일이 밀려 밤을 새다 법정에 가고, 아이 젖을 먹이면서도 가고, 한줌 돈에 도덕과 염치와 양심을 파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 때가 많았었습니다.
대기업과, 다단계판매업자, 전직 경찰관이 사장인 회사, 이런 상대와 한판 겨루게 되니, 모두들 제가 질 거라 생각했었나 봐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은 전부 사라지고, 저는 제가 생각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겐 성공, 실패 이런 개념이 없습니다. 32년 걸려 겨우 여기까지 온 것일 뿐이죠.
.Q: 선생님께서 이 무봉헌을 짓고 국내 대중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국문화를 알리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으신 것 같아요. 무봉헌의 소개 및 향후 계획에 대해 알려 주셔요.
우리옷을 만든 지 30년 되던 해 삼청동에 집을 지었어요. 집이 자그마해 집들이에 100명을 선정해 3부로 나누어 진행했지요. 어떤 분은 안 불러 줘서 울었다고 협박(?)까지 하시더라고요.(웃음) 지하와 1층은 매장이고 2층은 한옥인 집인데, 이 한옥에서, 생활문화 체험교육을 하고, 우리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과 시회를 하고, 우리 것을 고민하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작품전을 엽니다. 질경이가 3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나누려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을 키우려는 것이지요.
또, 해외 진출할 때 어떤 모습으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외국 유명 건축회사 사장단과 한국 건축가들, IPBA 참가자들, 한국학을 듣는 미국 대학생들, 유럽 명문대 학생들 등 외국인을 비롯하여, 한국인들에게도 다양한 생활문화 체험교육을 했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죠.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학생 23명과 교수 3분이 오셨을 때였어요. 교육이 끝나고, 덩치가 산만한 한 흑인학생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예요. 인솔교수님이 초청 강연을 즉석에서 제안하기도 했었어요.
1층은 옷 매장임에도 약간 어둡고 정면에 영상 작품이 상영되고 있어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탄 임흥순 작가의 작품인데요. DMZ 부근의 느티나무를 형상화 한 거죠. 절망의 땅에 서 있는 수백년 된 나무의 신령스러움을 보여 주고 있어요.해외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 질경이를 소개하는 작품이죠. 요즘 젊은 작가들하고 작품 얘기하고 참견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를 많이 애용하세요.(웃음)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기연 대표님의 삶과 철학을 보다 깊이 있게 알 수 있었고, 치열한 도전과 열정에 다시 한번 큰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인터뷰 / 정리 : 이지은 본보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