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커뮤니티 회원기고
[특별기고] 존치와 폐지, 그 전에 우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변호사들이 가장 싫어한다고 들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법정에 서서 ‘박봉숙 변호사’ 같은 이의 도움을 받은 적 없으니 나는 표면적으로는 ‘법 없이’ 혹은 ‘법조인들과 무관하게’ 살아온 셈이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변호사들 논의에 끼여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처럼 법 제도에 무지한 사람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불러 변호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해 보자고 하니 이거 참 딱하다는 느낌부터 들었다. 나는 말하자면 ‘일반 사회인 대표’ 격으로 변호사들의 주장들을 듣고 내 느낌을 말하는 역을 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생애 가장 소통하기 힘든 모임이었다고나 할까.

다소 무리일지 모르겠으나 문제를 간단히 정식화하면,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 로스쿨 체제로 이행했고 조만간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이 시점에서 그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따지는 것이리라. 모임에서 만난 많은 변호사들은, 여러 부가사항들을 제시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시 부활 혹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사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사시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는가, 그렇지만 또한 얼마나 많은 장점도 있는가, 현재의 로스쿨에 얼마나 부실한 측면들이 많은가, 그럼에도 그 방향으로 가자고 한 데에는 또 얼마나 많은 합당한 이유들이 있는가. 그런데 로스쿨안이나 사시안 중 어느 한쪽이 100% 옳다면 문제가 아예 제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양쪽 다 상당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데에 난점이 있는 것이다. 

로스쿨 대신 사시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현재 로스쿨이 너무 비싼 등록금 때문에 일종의 귀족학교처럼 변질될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 개천에서 용 나는 기회가 막혔다고 주장한다. 현재 법학대학원 과정에서 능력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 충분한 양질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도 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인원이 배출되어 그야말로 먹고살기 힘들 정도로 변호사들의 사정이 열악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로스쿨에 찬성하는 쪽 이야기를 경청해 보면 이 비슷한 정도로 타당한 이유를 아흔아홉 가지 정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튼 여기에서 내 느낌을 말하라면 (아마 나를 부른 분이 서운해 할지 모르겠으나) ‘시험보다는 양성’이라는 로스쿨 쪽 주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문외한이 가지고 있는 느낌에 불과하다. 나는 이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고, 단기가 아니라 장기의 전망을 살피는 일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내 주장을 강하게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여러 논의를 듣는 과정에서 내가 설득당하고 내 원래 생각을 바꾸는 경험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게 속마음이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그런 경험을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러니 아마 로스쿨 쪽에 선 사람들이 설득당할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에서 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로스쿨 제도로 변화해 간 것이 대학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혹시 헤아려 보았는지 모르겠다(이는 의학전문대학원도 그렇고 약학대학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학생들을 빨아들이는 이런 종류의 제도들이 대학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그리고 그 제도가 바뀔 때마다 초강력 태풍들이 몰아치고 대학 사회는 황폐화된다. 사시에서 로스쿨로 갔을 때에는 원래 목적했던 훌륭한 장점들이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몇 년 시행해 보고 문제가 심각하니 다시 바꾸자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에 그런 문제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처럼 어마어마한 변화를 감행한 것인가? 만일 로스쿨을 없애면 그것이 또 어떤 문제들을 일으킬 것인지 지금은 예상하고 준비를 하는 중인가? 대학 사회만 아니라 사회 일반이 계속 강한 충격들을 감내해야만 하는가? 

어떤 주장이든 힘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상대방을 혹은 국민을 설득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법과 무관하게 살고 싶어도 우리 삶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법조인 양성 제도와 같이 중요한 문제를 손바닥 뒤집듯 몇 년마다 이리저리 바꿀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바꿀 때 바꾸더라도 큰 시각에서 여러 다양한 측면들을 신중하게 고려하며 일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Cap 2015-09-02 13-57-41-181.jpg

주경철 교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