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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변호사의 조언] 이광수 변호사 인터뷰
 
이번 선배변호사의 조언 코너에서는 위 TF에 참여하였고, 변호사회 회무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고 있는 이광수 변호사(연수원 17기)를 만나 보았다. 인터뷰를 자처한 내 입장에서는 그는 꼭 한번 만나서 대화해 보고 싶은 법조선배였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즐겁게 시작할 줄 알았던 인터뷰는 초반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번 인터뷰의 첫 번째 목적이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발빠른 대응을 하여 회원들에게 많은 칭찬을 듣고 있는 TF 활동의 다양하고, 또는 숨은 이야기를 이광수 변호사의 입을 통하여 듣고 싶었는데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절당하였기 때문이다. 역시 인생은 예상대로 되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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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사건수임계약서 TF의 일원으로 형사성공보수 없는 형사수임계약서 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우선 그 TF에서 완성된 수임계약서 모델을 만들기 위하여 어떤 논의와 대화가 위원들 사이에서 오갔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6명 중 1명의 위원으로 참석한 제가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지금 질문은 제가 아닌 조용준 위원장님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임원 3명과 저 같은 일반변호사 위원 3명으로 구성된 TF팀에서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여 4개의 모델계약서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제공하였다는 정도입니다. 
 
◎ 주위에서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 빠르게 움직여 TF를 구성하고, 대법원 판결로 혼란에 빠져있는 회원들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이 대단합니다. 이번 작업에 보람을 느끼는지요? 
 
솔직히 답하라면 보람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든 이 계약서들이 회원들에 의하여 잘 사용될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에서 일괄적으로 모든 형사성공보수가 무효라고 선언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회원들에게 기준을 제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임계약서 모델을 만들어 냈지만 대법원 판결이 절반의 타당성만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과연 모델계약서대로 회원들이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형사사건약정을 의뢰인과 체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과도하고, 논란이 되는 형사성공보수를 무효라고 선언한 대법원의 선의는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형사 성공보수를 무효라고 한 것은 너무 많이 나간 경향이 있습니다.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모든 변호사 보수를 지급하지 않고 변호사 보수의 일부를 성공보수라는 이름으로 위험분산, 비용분담을 시키기도 하고, 변호사의 열심을 유도하는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이런 다양한 성격을 가진 성공보수를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하였고, 그것도 한 명의 반대의견도 없었습니다. 개별적인 사건에 관하여 구체적인 규범통제를 해야 하는 대법원이 마치 헌법재판소처럼 장래를 향하여 모든 형사성공보수가 무효라는 판결이 아닌 정책적인 판단을 한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법원이 왜 이렇게 무리한 판결을 하였다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대법원은 상고법원의 설치를 최우선 과제로 하고 있습니다. 상고법원 설치는 대법관 수 증원의 반대를 전제로 합니다. 지금의 대법원은 대법관 수의 증원을 거부하면서 대법원의 성격을 정책법원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규범통제라기보다는 정책적인 선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 이전의 다른 사건에서도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을 가지려는 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선은 3심제의 정점으로서의 구체적인 규범통제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눈에는 대법원이 헌재와의 경쟁구도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런 대법원의 태도는 옳지 않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지금의 대법원에 대한 비판적인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건의 “판결”을 통하여 즉, 구체적인 규범통제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나갈 방향 즉,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려면 대법원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창구로서의 기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면 경험의 다양화와 가치관의 다양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결국 이 경험의 다양화와 가치관의 다양화는 새롭게 임명되는 대법관의 출신성분의 다양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엘리트법관 위주의 대법관 구성은 문제가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형사성공보수는 무조건 무효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새로운 형사약정서처럼 맞추어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대한변호사협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처럼 대항하여 싸워나가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최근에 헌재에서 재판 결과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하였으므로 협회의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형사성공보수약정이 사회상규에 어긋나서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의 논지에는 승복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성공보수에 관련된 많은 소송이 제기될 것인데 저는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이번 대법원판결이 수정 내지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한 우리 변호사들은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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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라 걱정은 그만하고 변호사님 개인 이야기 좀 해 보죠.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개업한 이후에 변함없이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고집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처음 개업한 동부지방법원 앞에서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사법연수원 17기입니다. 88년부터 고용 2년을 하다가 90년에 동부법원 앞에 개업을 했습니다. 서초동 법원이 89년에 생겼습니다. 그전에는 강남, 서초는 동부 관할이었습니다. 제가 동부 앞에 개업한 이후에 서초동 법조타운이 생기고, 많은 변호사들이 서초동으로 이사갈 때 저는 그냥 이곳에 남아 있다 보니 계속 동부를 지키는 꼴이 되었지, 이곳을 고집한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저도 개인사무실이 아닌 몇사람 모여 법무법인을 구성하여 보았고, 변호사직을 계속 유지하는 전제하에 4년간 국민대학교 교수 생활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렇게 개인변호사로 돌아왔습니다. 조직 부적응자의 기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 저는 행동과 의사를 다른 사람들과 통일하여야 하는 조직생활에는 맞지 않습니다. 친한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많이 관여하고 있지만 제가 민변에 가입하지 않았던 이유는 민변의 설립정신에는 동조하였지만 가입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제 의사가 전체의 의사에 매몰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그런 것이 제 성격상 솔직히 견딜 수가 없고, 받아들여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할 말은 해야 되는 성격 때문에 제 행동에 제가 책임지는 개인변호사가 저에게는 맞습니다. 
 
◎ 변호사 회무를 조금 아는 사람은 이광수 변호사는 회무가 직업이라고 농할 정도로 맡은 회무에 열심입니다. 특히 대한변협과 서울회의 법제위원으로서 활동이 대단합니다. 보통은 회장 선거를 도와 주면서 회무에 관여하게 되는데 어떻게 회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제 입으로 열심히 한다고 하면 쑥스럽지만 그 계기에 관해서는 전에 서울회 회보 칭찬합시다 코너에 밝힌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서울회 회원으로서 자원하여 법제위원회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사니 당연히 법률의 개폐에, 즉 법제위원회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별로 활동이 없었습니다. 제가 활동이 없었다기보다는 그 당시 서울회 법제위원회의 활동은 미비했습니다. 서울회 법제위원회가 활성화된 것은 하창우, 김현 회장님 때에 와서입니다. 한편 박재승 협회장님 때 연수원 동기인 김갑배 변호사님이 법제위원장을 하면서 도와 달라고 하여 대한변협 법제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제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권문제에도 관심이 가서 인권위원회 활동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법제와 인권은 동전의 양면처럼 법률가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인 것 같습니다. 인권이 선동이 되지 않으려면 법제적 관점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법제가 보수에 주저앉지 않으려면 인권적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일부 언론에서 법조인이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되는 것을 문제삼은 것은 그런 관점에서 적절한 비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자식에게 법조인이 되라고 권하시나요? 
 
결혼이 늦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들이 고3, 딸이 중3입니다.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직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자율에 맡깁니다. 그렇지만 저는 고3인 아들이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저의 어린 시절 소명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준모태신앙입니다. 그 속에서 자라면서 ‘내 것을 남들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과였으면 의대에 갔을 것이고, 지금쯤은 국제의료봉사 같은 것을 꿈꾸었을 것 같습니다. 법률가는 국제적 봉사에는 취약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자식에게 투영하고 싶은 바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 꿈을 아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웃음) 
 
◎ 회무에 관심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이나 충고의 말을 부탁드립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나 대한변호사협회에 많은 위원회 활동이 있습니다. 젊은 회원들이 관심이 있는 위원회에 적극 참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위원회에 관심을 가지면 변호사단체 이외에 외부활동에도 참여할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위원회에 참여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어쩌면 저 자신에게도 여전히 하는 말입니다, “변호사는 말로 먹고 살려고 하지 말고 글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단체의 위원회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우선은 미리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그 자료에 대한 글로 된 의견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버릇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회의석상에서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변호사단체 회의도 시간이 길어지고 내용이 없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글로 승부를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말로 승부를 걸려면 정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내가 왜 이광수 변호사를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오늘의 세상에서 나름대로 확실한 자신의 잣대와 기준을 가지고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선배를 보면 기분이 좋다. 한편으로 처음 인터뷰 요청전화를 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이 귀를 맴돈다. 편집위원장인 내가 명심할 내용이다. “요즘 서울회 회보를 보면 나는 선배가 아니라 "원로"급인데 좋은 인터뷰이가 되겠느냐”면서 인터뷰 승낙을 해 주었다. 아무래도 다음 인터뷰는 이 변호사가 스스로 원로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느낄 만한 분을 찾아 봬야겠다.
 
 
 
학력사항

1980. 우신고등학교 (宇信고등학교) 졸업 (제4회)
1984.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제38회)

경력사항

1985. 사법시험 합격 (제 27회)
1988. 2. 사법연수원 수료 (제 17기)
1988. 3. ~ 변호사 이광수 법률사무소 개업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위원회 위원(2003~현, 2008. 1. ~ 2015. 2. 부위원장)
인권위원회 위원(2007. 3. ~ 현) 위 위원회 사법인권소위원장(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2012~현)
총무위원회 위원 (2013.~ 현)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 (2003~현)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회 위원(2005~2015.2.)
위 위원회 위원장(2007. 3.~ 2013.2)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자문변호사단 소속 변호사 (성동구 2011~현)
기획위원회 위원(2007. 3.~2009. 2.)
법조제도연구위원회 위원 (2003~2004)
윤리위원회 감찰위원 (2006. 2. 13.~2007. 1.)
서울지방변호사회 심사위원회 위원장(2015.3.~ 현)
조사위원회 위원 (2012.~2014., 2015. 3.~ 현)
법제이사 (2013. 7.~ 2014.10.)
법제연구원 부원장 (2013. 4.~ 2014.10.)
법제위원회 위원 (1999~ 2015.1.)
인권위원회 위원 (2009~2011. 1.)
교육위원회 위원 (1993~1995)
소비자보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 (1995~1997)
환경보전특별위원회 위원(1995~2001)
중소기업고문변호사단 소속 고문변호사 (1995~현)
개인파산면책변호사단 소속 변호사 (2006~현)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 (2011. 5.~ 2015. 4.)
사법개혁위원회 전문위원 (2003~2004)
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 (2007. 6. 11~현)
민법개정위원회 위원 (2009. 2. 4.~2010. 2.)
민원제도개선위원회 위원(2004~현)
법조직역제도개선특별분과위원회 위원 (2007. 2.~ 2008.)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심의위원(2005. 8. 10. ~2009.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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