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세월호 재판을 기록하느라 날마다 법원을 들락거렸다. 새벽 5시에 버스를 타고 광주 법원에 갔고, 안산에 중계법정이 열린 후엔 자전거를 타고 안산 법원에 갔다.
기자들과 달리 노트북이 허락되지 않아서 나는 매 공판마다 수첩 하나씩을 샀다.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 피고인 진술, 전문가 증언, 피해자 가족의 질문을 수첩에 기록하느라 내 손은 벌새처럼 바빴다. 증거 사진이나 동영상이 법정에 제출되면 몇 초 안에 스케치를 했다. 그렇게 선원 재판 33차례 공판과 청해진해운 재판 및 해경 재판의 주요 공판을 기록했다. 나중에 세 보니 꽉 채운 수첩이 40여 개였다. 그 수첩 페이지엔 방청하다 생겨난 수많은 물음표가 박혀 있다. 어떤 의문은 다음 공판에서 풀렸고, 어떤 의문은 오랫동안 머리를 싸매게 했다.
시간이 흘렀다. 어떤 이들은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다”고 말한다.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이만하면 다 밝혀졌다. 교통사고일 뿐이다”라고 한다. 나는 둘 다 아니라고 하고 싶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며 밝혀야 할 진실이 아직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진실에 한 발도 못 다가간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에는 기업의 이윤지상주의와, 훈련받지 못하고 직업적 사명감도 없는 선원의 무책임이 있었다. 상습적인 과적, 고박 불량, 평형수 감축은 배의 복원성을 정상치보다 한참 떨어뜨렸다. 배의 문과 창은 제대로 수밀(水密)처리 되어 있지 않았고, 사고 시 자동으로 구명정을 펼치는 장치도 고장이었다. 정부의 나태한 안전관리도 한몫했다. 이런 배의 취항을 허가하였으며 주기적인 안전 점검은 형식적으로 처리했고 운항 시 과적?과승하는지 여부는 선원의 보고에만 의존했다. 요컨대 이런 참사가 전에 일어나지 않은 게 이상한, 총체적으로 부실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세월호 전복의 직접적 원인에 대해 2심재판까지의 결론은 “모르겠다”이다. 복원성이 나쁜 배가 급변침한 것이 원인이라지만 왜 급변침을 했는지 확실치 않다. 1심에선 선원 과실이라 했고 2심에선 기계 고장의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인양을 해 보아야 사고 원인에 관한 최종 판정을 내릴 수 있다. 해경의 구조 실패에 관해 재판부는 해경 현장 지휘관을 업무상 과실치사로 처벌했다. 구조기관의 과실에 형사 책임을 물은 사례는 처음으로, 이 판결이 확정된다면 국민에 대한 국가 책임의 범위를 넓히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경이 ‘왜’ 구조조치를 안했는지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진실 규명의 수레바퀴가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가족과 양심적 시민?기록자?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재판부와 정부를 압박했기에 진실은 그나마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드러난 진실의 조각은 새로운 의문을 낳고, 의문은 다시 숨은 진실을 끌어낼 고리가 된다. 지금까지의 진실로 만족한다면 이 참사의 보다 구조적인 원인과 실제적인 책임 소재를 영원히 모르게 된다. 한편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고만 생각하면 무력감에 빠진다. 우리가 먼 길을 왔음을 확인하고 서로 격려하며, 진실 규명의 수레바퀴를 끝까지 밀고 갔으면 한다. 별이 된 희생자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오준호 작가
『세월호를 기록하다-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의 세월호 재판기록』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