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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인문학두드림] 유배지의 꿈, 소동파의 적벽부
인간 소동파(蘇東坡)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장원급제한 고위관료로서 조정에서 신종황제를 모실 때일까, 항주에 가서 선정을 베풀며 동파육(東坡肉)을 즐기던 때일까?
어쩌면 당송팔대가 중 최고문인인 소식(蘇軾)의 전성기는 그 뒤가 아니었을까? 조정으로부터 버림받고 난생처음으로 삶의 굴곡을 경험하던 시기에, 문학사에 빛나는 영롱한 글귀들을 많이 남기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아도 되는 건가? 아무튼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긴긴 유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동파에게 물었다. 
“당신의 일생을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노쇠한 동파는 이렇게 답한다.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토막이고, 몸은 매어 놓지 않은 배입니다. 제게 평생의 공적(功勣)이 무엇인가 물으면 황주, 혜주, 담주라고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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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황주, 혜주, 담주(하이난)는 모두 그가 경험한 유배지다. 조정에서 세상을 호령하던 귀족관료가 평소 접할 수 없었던 곳, 지독한 시골마을이거나 절해고도였다.
명문대가의 자손으로서 대대로 고관대작을 이어온 사람이 새삼 유배지의 일들을 삶의 공적으로 삼게 된 영문은 무엇일까?
만연한 정쟁의 복판에서 정치적 몰락과 복귀를 반복한 소동파. 그런 상황에서도 인생을 비관하지 않고 희망을 품은 채 묵묵히 유배지를 전전한 그였다. 몰락을 거듭할수록 인품은 성숙해졌고, 그 고매한 인품이 그를 지탱하게 했을 것이다. 
이후 소동파의 명문장은 부쩍 많아진다. 산속에서는 진면목을 볼 수 없다는 ‘여산진면목(여산의 진면목은 쉽게 알 수 없다는 뜻)’이라는 문구나, 자신의 총명함으로 일생을 그르쳤다는 ‘아총명오일생(자신이 총명하여 일생을 버렸다는 뜻)’이라거나, 가혹한 수탈정치를 비판하는 ‘매우납세절옥취(소 팔아 세금 내고 집 뜯어 밥 짓는다는 뜻)’, 삶을 멋지게 비유한 ‘인생도처지하사(인생도처가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라는 뜻)’나, 대자연의 위대함을 표현한 ‘무진장’, ‘창해일속’ 등의 문구들은, 세상과 만물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하는 좋은 글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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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하면 떠오르는 적벽부는 고문진보의 여러 글 중 으뜸자리에 있고 고금을 통해 사랑받는 명문장인데, 제목이 주는 무게감과는 달리 가을 밤 퉁소소리에 애상을 느끼고 삶에 대하여 다시금 돌아보는 소소한 일상이야기다.
“임술년 가을에~ (壬戌之秋)”라고 시작하는 글은 달밝은 밤의 뱃놀이에서 왁자지껄 주연을 즐기는 뻔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그런데, 누군가 퉁소를 부는 사람이 있어 분위기는 반전되고 동파는 옷깃을 여민 후 ‘어찌하여 그리도 구슬프게 퉁소를 부는 거요?’라고 말을 건넨다.
여기부터 적벽부의 명문장들이 이어지는데, 그 다음부터는 손님과 동파의 문답으로 허무(虛無)와 초연(超然), 비통(?痛)과 담담(??)이 대비되고 있다(옛 동파의 문장을 음미하며 풍월을 읊는 것보다는, 진솔한 문답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표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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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크게 기쁨을 나눈 두 사람은 한 동이 술에 수작(酬酌)을 걸고 배에 쓰러져 동 틀 때까지 잠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한문글귀(賦)의 명료한 상징성이라든가, 아름다운 대구를 모두 이해하려면 오래도록 그 문구들을 원문으로 읽어야겠지만, 이처럼 소동파와 손님이 나눈 대화를 살짝 엿보기만 해도 동파의 청초하고 고아한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실은 당시에 동파는 외로운 유배객이었다. 지독한 인생의 쓴맛을 체험하고 있었을 게다.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손님(客)의 말은 동파의 또 다른 속내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적적한 시골에 묶여 뱃놀이에 빠져있는 자신이 슬프고 한심스러웠기에 사라진 조조 같은 영웅을 빗대어 세상사의 짙은 허무를 노래하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청고고아(맑고 높으며 예스럽고 우아함을 간직함)한 성품을 기르게 된 동파거사는 허무와 슬픔을 멀찍이 보내려는 듯, 대자연 속의 삶을 기뻐하면서 사물과 자신이 하나 되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표출한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만물제동, 물아일체의 경지를 아름다운 글귀로 설명하고 있는 점도 높이 칠 만하다. 

이처럼 유배지 황주에서도 담담하고 관조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적벽부라는 명문장을 남긴 그였다. 그 후에도 동파는 유배지를 전전했지만 늘 고고한 기품을 간직한 채 달콤하고 아름다운 꿈을 이어갔다. 유배생활 마지막에 쓴 ‘화자유’라는 글을 보면, 외롭고 비천하게 버려진 문인(文人)의 삶을 잠시나마 애잔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깊은 성찰을 담아 아름다움을 희구하는 동파의 꼿꼿한 자세를 보면 참으로 흠모의 마음이 든다. 
유배지에서 삶의 전성기를 보내면서, 머무는 곳마다 남기는 글마다 방향(芳香)을 남긴 소동파. 동파거사는 비루한 처지를 극복해 나가면서 어떤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요즘 들어 무척 청연해진 가을하늘을 보면서, 문득 그의 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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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유(자유에게 화답하다)
[ 和子由 ] 

동파거사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인생은 이르는 곳마다 무엇과 같은지 아세요?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날아가는 기러기가 눈밭을 밟는 것과 같을 겁니다.
雪上偶然留指爪(설상우연유지조)
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더라도
飛鴻那復計東西(비홍나부계동서)
날아간 기러기가 동으로 갔는지 서쪽으로 갔는지 어찌 알겠어요.
老僧已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노승은 이미 죽어 새로운 탑이 세워지고
壞壁無有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허물어진 벽에서는 우리가 쓴 옛 시를 찾을 수 없겠군요.
往日岐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우리가 걷던 험난한 길 아직 기억이나 할까요.
路長人困蹇驢嘶(노장인곤건려시)
먼 길에 사람은 피곤하고 나귀는 절뚝거리며 울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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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5회(연수원 35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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