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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다르질링에서 쓰는 엽서

 다르질링에서 쓰는 엽서

이것은 그러니까 이번 생애 가장 멀리 띄우는 소식
하관이 긴 벵골 출신의 우체국 직원은 한 달이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약속할 수 있다는 것도
약속할 게 없다는 것도 죄다 유한한 사람의 일

엽서 속 칸첸중가엔 허기진 밥물 같은 안개가 고여 있다
이국의 언어를 주소란에 적어 넣는다
당신과 분배할 빚이 사라져서 지난 이별은 고통스러웠어,
붉은 꽃과 붉은 불과 무채색의 기도
시바*를 부르며 푸자** 행렬 속에서 생을 다하는 문맹은 선량할 거야

구애에 실패한 독수리들이 회오리바람을 몰고 날아오른다
유서 없는 죽음들이 아침저녁으로 만개한다

엽서 한 장에 다 쓰지 못할 말도
엽서 한 장에 다 쓸 수 있는 말도
내게는 없어서

나마스테, 당신의 이름만 쓰기로 한다

우체국 문을 나서면 기차역 기차역을 지나면 푸른 차밭
차밭을 지나면, 칸첸중가를 지나면, 오늘 밤을 지나면, 내일과 글피를 지나면……

이상하고 슬픈 돌림노래는 누가 부르는 것인지

검푸른 삼나무 숲을 달리고 달려도
가장 느린 자전거를 타고 나온 여행자처럼
이번 생 우리는 내내 별거 중이다

어떤 편지는 후생에야 닿고

어떤 이는 매일밤 유실(流?)되는 꿈을 꿀 것이다


*시바(Siva) : 파괴자인 동시에 재건자인 힌두교의 신(神).
**푸자(Puja) : 힌두교의 제사 의식.



사랑에 빠질 때마다 편지를 쓰곤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짝사랑하던 남자애에게 보냈던 편지를 비롯해서 수많은 편지들이 쓰였고, 보내졌고, 때론 버려졌다. 눈이 오고 비가 올 때도, 제주 서귀포에서도, 머나먼 인도 다르질링에서도 편지는 어김없이 쓰이고 부쳐졌다. 오래 전 봄날엔 딱 한 번 본 남자에게 편지를 썼었다. 편지는 여행지였던 거문도의 우체국에서 부쳐졌고, 편지봉투 속엔 터질 듯한 그해 봄의 동백 꽃잎 한 장이 동봉되었다. 하지만 그 남자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겁(劫)’이라는 단어가 있다. 헤아릴 수조차 없이 길고 긴 시간을 일컫는 말. 동양에서는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오랜 시간을 이르는 말이고, 힌두교에서는 43억 2천만 년을 ‘한 겁’이라고 헤아린다. 불교에서는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2천 겁의 세월이 지나면 사람과 사람이 하루 동안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얼마나 까마득하고도 놀라운 일인지. 사막을 걷는 당나귀였다가, 나비였다가, 까마귀였다가, 조용한 거미 한 마리였다가 마침내 인간이 되어 우리는 서로 만났을지도 모른다. 결별은 늘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가혹했지만 떠올려보라. 사랑에 빠졌던 그때 우리의 만남은 얼마나 눈부셨던가, 뜨거웠던가. 

몇 달 전 본 신문 기사에는 ‘나쁜 이별’의 사례가 소개돼 있었는데, 요즘엔 모바일 메시지 한 통으로 연인에게 일방적 결별을 고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거였다. 단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상대방이 이별을 인지하고 수긍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헤어진다면 남은 사람에겐 얼마나 큰 폭력일까?

돌아보면 어떤 연인 관계에서도 이별이 미덕이었던 적은 없었다. 마음을 주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생채기는 남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만약 이별에도 예의를 다할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설명과 대화로 상대를 배려할 수 있다면 우리는 최악의 이별을 피할 수 있다. 그리한다면 이별의 과정을 마음과 영혼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건 내가 피해자였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쁜 이별을 선언했던 적이 나라고 없었겠는가.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침묵으로 일관하며 돌아서지는 않았을 텐데. 이별의 이유를 그 사람에게 납득시키려 최소한의 배려는 했을 텐데.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집행유예라는 제도가 있는데 하물며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에 나는 왜 그토록 냉정했을까. 하루빨리 털어 버리려고, 이별을 선언하는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나는 그때 얼마나 매몰차게 그 사람을 외면했던가.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연애를 한다고 사랑을 아는 것도 아니고, 이별을 했다고 헤어짐의 의미를 완독한 것도 아니다. 훈련을 아무리 해도 늘 결핍투성이인 게 사람의 일이다.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 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고 한다. 보내는 사람이 편지의 도착 날짜를 정할 수도 있어서 한 달 혹은 몇 년, 아니면 몇십 년 뒤에 받을 수 있기도 하다고 들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오늘 나는 고백한다. 그때 미처 쓰지 못했던 결별의 편지를 지금에서야 쓴다. 받는 당신들이여, 이 편지는 그러니까 20년 전에 혹은 15년 전에 ‘느림보 우체국’에서 쓰였지만 이제야 가까스로 당신에게 당도한 것이다, 그리 생각해 주길. 내 깨달음이 느리고 느려서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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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불량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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