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에게 삶은 늘 질문 투성이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삶에 이성을 잃지 않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제는 거친 수풀을 헤쳐 내야 하는 고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숙명적으로 “이성의 세계”에서 살아야 했던 법조인의 자기고백서이다. 법률가는 심대하고 냉철한 법 이면에 “감성의 세계” 속에서 자비심과 지혜로움으로 그 실체적 정의를 실현해 나아가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저자는 이 책에서 열정적이면서도 지고의 삶을 고민하는 흔적들을 이야기한다. 열정을 뜻하는 ‘passion’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한다. 열정 뒤에 숨겨진 노력과 자제력, 고난을 통해 얻어진 지혜와 그의 자긍심이 흥미롭다.
이 책은 크게 6장으로 나누어 법조인이 단순히 법률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종교, 문화를 이해하고, 보편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직업임을 서술하였다. 1장은 책을 쓰게 된 동기를, 2장은 법조인으로서 40여 년을 보낸 소회, 검사시절 한 달된 영아를 업은 산모를 구속하면서 인간으로서 가진 고뇌, 단순절도범 조세형을 의적으로 미화시킨 언론의 무책임성, 평생 장발장을 뒤쫓다가 장발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자베르 경감이 자살할 수밖에 없는 고뇌에 대한 공감 등을 가슴에 와 닿게 썼다. 특히 정의(正義)에 관하여 고대 트라시마코스부터 근세 칸트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의 견해의 편면성을 지적하고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평화라고 개념하였다. 3장에는 동서양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또는 통시적으로 개관하면서 역사의 반복성과 반전성, 전쟁의 무의미성, 역사 속에 나타난 여인들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에 대해 여성을 기다림, 남성은 그리움으로 파악하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영웅의 조건으로 상위 계급출신, 사명의식, 실천의지, 시대적 요청, 장열한 최후 다섯 가지 조건을 들면서 이에 들지 않으면서도 영웅행세를 하는 자기과시적 인간군상을 측은히 여겼다. 이념은 인간 이성의 결정체이자 신념의 집합체이지만 현대에 들어 이념의 폭력화, 폭력의 이념화를 경계하라고 지적한다. 역사의식의 자기반성만이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4장에서는 저자의 종교학과 문학에 대하여 해박한 탁견을 보이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악마가 존재하므로 신이 존재한다’는 글귀를 통해 이성을 통한 신의 존재입증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기독교인이면서도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인용하면서 에큐메니칼운동을 지지하는 포용성을 보이고 있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5장에서는 저자의 음악, 미술, 서예 등 예술에 대한 열정을 그리고 있다. 다만 일에 치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기회마저 멀리하였던 젊은 날을 후회하고 있어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하는 현대 젊은이에게 교훈이 된다. 끝으로 다시 법조인으로 돌아와 자연법과 법신학의 입장에 서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인간공동체를 살아가면서 이성으로서의 법, 역사와 종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인간을 평화롭게 한다는 점을 잘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기도하고, 소설과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다하지 못한 일말의 아쉬움도 여운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날개를 편다”는 헤겔을 인용하면서 미래의 설렘과 이상을 꿈꾸고 있다.
신현호 변호사
사법시험 제26회(연수원 16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