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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파키스탄의 찬란한 역사와 답답한 현실, 그리고 미래
두바이 6년 차. 중동은 내가 살아가는 활동 무대가 되었고, 두바이는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아침마다 출근을 하면서 지나가는 공사 현장에는 70~80년대 선배님들께서 고생하셨던 것처럼 서아시아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측은하기도 하다. 내가 발을 딛고 있고, 가족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두바이의 인구 구성 상당 부분(6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사람들이다. 특히 파키스탄은 비행기로 2~3시간 거리라는 지리적인 근접성과 이슬람 수니파 국가(인구의 96.4%가 이슬람 교도로 수니파 76%, 시아파 20%)라는 종교적 연관성, 두바이라는 신흥 제국 건설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의 공급지라는 여러 가지 이점 덕분에 UAE 진출이 상대적으로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고국에 두고 이곳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파키스탄(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Pakistan)은 인구 1억 9천만 명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이슬람 교도가 많은 나라이다.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가인 무하마드 알리 진나가 파키스탄을 구성하는 다섯 개 지역인 펀자브(Punjab), 아프간(Afghan), 카슈미르(Kashmir), 신드(Sindh), 발루치스탄(Baluchistan) 지명의 두문자를 따서 만든 조어라고 한다. 현재 파키스탄은 4개의 주요 지역(펀자브, 신드, 발루치스탄과 연방통치 북부지구)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지만, 경제중심지는 인구 2천 4백만 명이 모여 사는 카라치이고, 라호르 역시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2천만 명이 모여 살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카라치 한 도시에 2천 4백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회 기반 시설 없이 대부분 노동자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면 도시 전체가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 같은 분위기라고 이해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파키스탄은 한국전쟁 때 우리에게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했고, 당시 개발계획차관은 우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에 대해 조언을 해 준 고마운 나라였으나 2015년 현재 연간 국민소득은 1,500달러이고, 양국 간 교역의 양은 12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거리에는 걸인들이 가득하고,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이다. 출장 중 묵었던 호텔에서 내려다본 카라치 시내의 부자들이 사는 집들은 담을 3미터 이상 쌓아 놓고, 대문이나 대저택 입구에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을 한 경비를 세우고 있었다. 종교의 차이, 빈부의 격차, 권력의 부패가 만들어낸 ‘아무도 믿지 못할 상황’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2013년 5월 집권한 나와즈 샤리프 총리 정부와 군부가 합심하여 테러 및 종파주의 근절을 위한 ‘대테러 국가행동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러한 테러들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연계되어 있거나 무슬림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간 고질적 분쟁에서 발원하다 보니 다른 중동 국가와 마찬가지로 안전한 국가로 거듭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 필자가 카라치와 라호르를 방분했던 2011년에는 카라치에서만 정치적인 내분으로 인해 타겟킬링(target killing)이나 폭탄테러(bomb blasting)로 수백 명의 시민이 생명을 잃었고, 등에 장총을 메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았다. 카라치 공항에 입국하던 날, 필자 이외에 외국인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상황이 낯설고 불안했지만,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외국인들을 보게 되고, 장총을 맨 사람들이 나에게 총구를 겨눌 가능성은 없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이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고대 4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모헨조다로 도시 유적이 파키스탄 남부의 신드 주(州)에 남아있을 만큼 고대 파키스탄은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으나, 불운한 근세사가 파키스탄 사람들의 DNA를 바꾸어 놓은 것 같다고 파키스탄 출신 변호사 친구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1858년부터 시작된 영국 식민통치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를 비롯한 힌두교도의 지도 아래 1885년 소집된 국민회의와 이슬람 교도들이 1907년 결성한 이슬람 동맹의 독립운동을 바탕으로 세계 2차대전 후인 1947년 종료되지만, 그 이후 파키스탄은 종교적 이유로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 1947년~1948년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58년 군사 쿠테타, 1965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71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71년 전쟁으로 방글라데시 독립, 1979년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의 실각 및 사형, 이후 이슬람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 베나지르 부토가 선출되었으나 부패 혐의로 실각, 1990년 쿠테타 발생, 1999년 5월 인도와 카슈미르 분쟁, 같은 해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의 무혈 쿠테타, 베나지르 부토의 남편이었던 자르다리 대통령 당선 등 숱한 사건 사고를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지도자의 부패, 정치권력의 세속화, 개혁의 실패, 종교를 이용한 정치권력의 횡포를 이기지 못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해외로 빠져나갔고, 국내에서 부와 권력을 잡은 세력조차도 상당부분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이를 지켜본 일반 국민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슴 깊이 안고 있는 가난과 상실감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워 보인다. 조국에 대한 기대를 져버린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서는 상식 이하의 모습을 많이 볼 수밖에 없다.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네트워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여 ‘파키스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고 단정짓는 경우가 많고 이는 적절치 않지만, 필자가 자문을 하거나 협상을 할 때도 외국인들의 현지인들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따라서 모든 거래가 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 빠른 문제 해결과 정부 협상을 위해 agent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그 agent에게서 기대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정부기관을 바로 접촉하려 해도 일의 속도가 매우 낮고 부패 수준이 높아 적법절차를 통해 일을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바이에 거주하면서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 같던 파키스탄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유세프(Yousaf, 파키스탄이 이슬람 국가이다 보니 대부분이 아랍식/무슬림 이름이다.)라는 파키스탄인 영국 변호사 친구와 5년 가까이 알고 지내면서, 가족들과 종종 식사도 같이 한다. 유세프의 부모님은 외국에서 대사까지 지낼 정도로 명망 있는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두바이에서 변호사이자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다고 한다.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자 참 좋은 친구가 조국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아름다운 부인과 딸 하나에 만족하면서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타국이기는 하지만 동포가 함께 있는 두바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외롭지 않아 보인다. 불안하고 복잡한 자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두바이에서 살면서 자주 고국을 찾는 방식으로 타협을 한 것 같다. 

파키스탄에도 희망이 있다. 인더스강 유역 주변은 영국 식민지 시절 만든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는 평원지대이다. 석탄, 구리, 금, 철광석 등 풍부한 광물자원과 세계 상위권의 농축산물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영국식민지배의 영향이기는 하지만) 영어와 컴퓨터에 능한 1억 명이 넘는 청장년층 노동력이 있다. 또한, 파키스탄은 육로로 서남아, 중앙아, 중국, 중동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란,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주변 강국과 국경을 접하고 살아가면서도, 올해는 국민총생산 성장률이 5.5%가 되어 신흥경제국가로 유엔, 세계경제기구와 신용평가기관들의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2015∼2017년 경제협력자금에 관한 기본약정’을 서명을 비롯한 남동발전에서 진행 중인 굴푸르 수력발전 공사, 대우건설이 진행 중인 파트린드 공사, 펀잡 주(州)에 대한 에너지공단 지원 등 일련의 협력 상황에 한국 건설/플랜트 기업 진출이 늘어가는 것을 보자면, 한국과 파키스탄 간의 관계는 상당히 고양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파키스탄 정부, 기업 및 사업가들과 한국기업간 업무도 점점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고, 두바이에서 만난 많은 파키스탄 친구들이 법률서비스 시장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기회제공자가 될 것 같다. 작은 소망이지만, 파키스탄 국민들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어 서로를 믿고 살 수 있는 때가 속히 오기를 바란다. 



수정됨_서울변협 방문 사진.jpg

김현종 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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