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역사학자들의 단호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2015년 11월 3일,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한다고 확정 고시했다. 교육부총리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역사교육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국민들도 “올바른 역사교과서 개발에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정’ 또는 ‘단일한’ 교과서라 불리던 새로운 교과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명명되었다. 일본의 “올바른 역사를 전하는 국회의원연맹”(1994년), “편향된 교과서를 바로잡는 모임”(1996년)이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2002년 편찬하여 검정을 통과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연상시킨다.
국정제를 통해 구현하려는 ‘올바른 역사교과서’에는 어떠한 역사상(歷史像)을 담으려는 것일까? 논자에 따라 다르지만 그동안 국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학사관이 아닌 긍정사관”, “좌편향사관(민중사관)이 아닌 자유사관”,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역사”를 추구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아직 충분히 거론되지 않았지만 상고사를 대상으로 한 국수주의 사관이 앞으로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교과서의 국정화라는 형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이제는 그 교과서에 담길 내용에 대해 더 우려하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자학사관이 아닌 긍정사관에 입각한 역사는 일본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명치유신 이후의 근현대사를 이웃 나라들을 침략한 대외침략전쟁이라 ‘자학’하지 않고 성공한 국력 신장의 시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해 식민지 근대를 미화하고 침략전쟁을 아시아해방전쟁으로 옹호했다. 그런데 이를 모방한 우리의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지향하는 긍정사관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식민지 근대화를 미화하며 독립운동을 외면하는 방향이다. 그 탈출구로 분단체제하의 대한민국 ‘건국’을 강조한다. 그것은 친일의 치부를 은폐하면서 진정한 민족주의 세력은 물론 건전한 국가주의 세력까지 배제하는 길이다. 이러한 역사관으로 어떻게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고 일본국가주의의 대외정책이 초래할 재앙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둘째, 좌편향사관 또는 민중사관을 배척하고 자유사관에 입각해서 역사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점차적으로, 우파 중심의 독립운동사에 민족독립을 위해 싸운 사회주의자들의 활동도 추가하고, 해방 후 좌익세력의 활동도 기술하고, 한국전쟁 중의 양민학살이나 이승만의 독재도 수록하고, 북한의 실상도 소개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교과서의 내용이 ‘균형’을 잡아왔다. 현 시점에서 이러한 서술을 국정화론자들은 ‘좌편향’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조선의 ‘백성’이 개화기에 자각한 ‘인민’이 되고 삼일운동 이후 ‘민중’으로 형성되며 오늘날 ‘시민’으로 거듭났다. 민중사관은 지배층만의 역사가 아닌,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역사적 성취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아래로부터 형성된 민중의 역량이 민주주의 사회의 도래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넒은 의미에서의 민중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검정교과서는 이러한 범위를 결코 벗어나 있지 않다.
셋째,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역사는 어떤 것일까? 국정화론자들은 헌법적 가치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시장경제”를 지목하고 이에 입각해 남한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고 북한을 비판하라고 한다. ‘자유사관’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행 검정교과서의 집필기준에는 이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시장경제”에 의거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북한의 역사에 대해서는 가치판단과 해석을 보류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할 것도 제시되어 있다. 그러니 현재의 검정교과서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너무나 과도하고, 그렇다면 검정한 교육부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첨언한다면 뉴라이트의 교학사판 한국사 검정교과서가 시장에서 실패했다고 하여 국정화를 추진한 것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헌법적 가치에 아주 어긋나는 셈이다.
그런데 헌법적 가치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시장경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전문에는 삼일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으며, 더구나 그것은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한 김구의 노선과는 경쟁관계에 있던 이승만이 제헌의회에서 앞장서 주장한 것이다. 이승만 자신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역할을 맡았으니 대한민국이 그것을 계승한다고 하여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은 1919년 ‘건립’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망명정부를 청산하고 자기의 영토에서 국민의 정부를 수립한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므로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려면 이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일제에 협력했던 세력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건국의 시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오를 덮으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점이 문제이고, 그러한 역사적 평가를 현재에 활용하고 미래를 전유하는데 밑거름으로 삼고 싶은 정치적 목적이 문제이다.
헌법적 가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언급할 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전근대의 역사로 소급하면 간접적 의미밖에 지니지 않는다. 모든 역사를 현재주의적 관점에서 재단할 수는 없다. ‘한국사’를 마치 ‘대한민국 역사’ 쓰듯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영호 교수
인하대 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