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건 웃지요
어릴 때 읽었던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한 대목이다. 해마다 송년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잘 지내지”이고 가끔 “왜 사냐”는 말도 듣는다.
왜 사냐는 말은 상대방이 없을 때 경멸 또는 저주에 가까운 표현으로 쓰인다. “저 인간 왜 사냐, 귀신은 뭐 하냐 저런 인간 잡아가지 않고.”
그런데 면전에서 왜 사냐는 말을 들으면 당황스럽고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관심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2015년 송년회에서도 세월호 목걸이를 한 내게 친한 벗이 그렇게 물었다. “왜 사냐,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적당히 해도 되지 않겠냐.” 시인처럼 웃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그리 하지 못한다. “왜 사냐,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 정색하고 답한다.
마음 편하고 몸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내 맘 편하고 몸 건강하려면 주위 사람도 편하고 건강해야 한다. 어렸을 때 “나서지 말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러나 그게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며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교황 프란치스코 말씀처럼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독재이고,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 별 생태계가 망가져 가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린 건 그만큼 정의를 갈구한다는 징표이다. 달리는 열차에서 중립은 없다. 부유하고 강한 사람들 편에 서서 이익을 추구할 것인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위해 일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생태, 환경에서도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이 그렇고 오염된 공기, 물, 먹거리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 나서서 사람 사이의 문제, 사람과 자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염려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말리지 말고 같이 나서면 어떨까. 이제 정년퇴임해서 여유도 있으니 정당에 입당하거나 사회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면 좋겠다. 더구나 나는 변호사다. 변호사법에 이렇게 쓰여 있다. 변호사는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였는데 송년회 자리에서 이렇게 정색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직 철이 덜 든 모양이다. 그러나 2016년 한해도 스스로 왜 사냐고 묻고 답하면서 하루를 살아 나가겠지.
이덕우 변호사
사법시험 제29회(연수원 19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