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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아버지는 다섯 딸 중
나를 먼저 지우셨다

아버지께 나는 이름도 못 익힌 산열매

대충 보고 지나칠 때도 있었고
아주 유심히 들여다 볼 때도 있었다  

지나칠 때보다
유심히 눌러볼 때 더 붉은 피가 났다

씨가 굵은 열매처럼 허연 고름을 불룩 터뜨리며
아버지보다 내가 곱절 아팠다  

아버지의 실실한 미소는 행복해 보였지만
아버지의 파란 동공 속에서 나는 파르르 떠는 첫 연인

내게 전에 없이 따뜻한 손 내밀며
당신, 이제 당신 집으로 돌아가요, 라고 짧게 결별을 알릴 때  

나는 가장 쓸쓸한 애인이 되어

내가 딸이었을 때의 미소를 버리고
아버지 연인이었던 눈길로 

아버지 마지막 손을 놓는다      





아버지가 나에게 ‘당신’이라고 불렀다. 그 순간 나는 딸로서 지워졌다.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실실하게 웃었으나 처음 공항으로 갈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셔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매일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의 치매증을 견디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구원병처럼 나선 나는 요양병원보다는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그러나 하루 만에 다시 부산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집을 자꾸 나가시니 혹시 길을 잃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낯선 거리의 외출을 막던 내게 아버지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버지의 웃는 모습도 낯설었지만 폭력적인 모습은 더욱 생소했다. 

탑승시간이 좀 남아서 공항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수호씨, 식사비는 제가 낼게요” 아버지의 수줍은 제안이었다. 장난을 하는 걸까, 아님 착각을 하는 걸까. 나의 의혹 자체가 나 스스로를 당혹스럽게 했다. 비행기에 탑승 후 나는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아 드렸다. 이륙할 때 당황하고 놀랄까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체온이 고스란히 내게로 건너왔다. 아버지는 한 번 잡은 손은 좀처럼 놓아 주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뭔가를 잡는 신생아처럼 악력이 대단했다. 

김해공항에 내려서 친정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좀처럼 손도 놓지 않았고 내 눈빛도 자주 들여다보았다. 아버지는 환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평생 첫 행복을 누리는 듯 보였다. 이미 어두워진 마당을 지나 친정집 거실로 들어섰다. 모든 의문은 그때 풀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더니 내게 다가왔다. “당신, 이제 당신 집으로 돌아가요!” 짧고 단호했다. 그리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엄마께 내가 동행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내가 수고한 것도 강조했다. 나는 그제야 아버지의 행복을 이해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이제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떠난 연인이었다. 

아버지는 웃음이 없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를 잃고 우울하게 성장한 탓도 있겠다. 또한 한국전쟁 때 한쪽 청력을 상실한 것도 큰 이유일 게다. 그런 아버지의 몇 시간, 그 행복한 첫 연인과의 이륙은 아버지께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

어제가 아버지의 첫 기일이었다. 아버지의 사진 앞에 앉아 선량한 눈빛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아버지께도 그런 사랑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주방 쪽에서 늙은 아내의 기척이 들리는지, 들여다볼수록 그렁거리는 눈빛으로 아버지는 내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당신, 이제 당신 집으로 돌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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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시인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로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현재 명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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