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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영화 <대호>와 한국범 이야기
 
각본은 감독(박훈정)이 직접 썼는데, 저는 영화를 보면서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고전 『위대한 왕』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만주 밀림을 지배하던 왕대(대호)가 외부침입자(러시아 사냥꾼)에게 가족(암컷과 새끼)을 잃고, 외부침입자와 맞서 싸우다 총에 맞은 후 낭떠러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늙은 원주민 사냥꾼 퉁리가 지킨다.” 
 
 
 영화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에 대한 소개는 “만주 밀림 누빈 그때 그 한국호랑이”(http://ecotopia.hani.co.kr/128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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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왕(아모르문디 출간)의 표지사진 
 
배경을 지리산으로, 외부침입자를 일본군대로,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원주민 사냥꾼 퉁리 노인을 은퇴한 늙은 포수 만덕으로 바꾸었지만, 전반적인 느낌(특히 비장미)이 비슷했습니다. 실제로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박훈정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일제와 조선의 대립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뤘으며 『위대한 왕』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위대한 왕』의 주인공은 왕대(범)인 반면, 영화 <대호(?虎)>의 주인공은 만덕(사람)이고, 『위대한 왕』에서는 원주민 사냥꾼 퉁리가 죽지 않는다는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타뉴스 2015. 12. 11. http://star.mt.co.kr/stview.php?no=2015121108230521733
 
 
* 몸무게 400kg인 대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요? 
 
러시아 극동지역에 서식하는 아무르 수컷범의 체중은 200kg 남짓입니다. 그러나 1967년 인도에서 잡힌 벵갈범의 몸무게는 389kg에 달했으니, 영화 속 대호의 크기가 완전 허구는 아닙니다. 
다만, 몸무게 400kg의 범이라면 정상체중의 2배에 달하는 비만개체인 것이 분명하므로, 대호(?虎)보다는 비호(肥虎)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기네스북 홈페이지 http://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largest-feline-carniv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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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418kg의 라이거(호랑이와 사자의 잡종) Hercules 사진 
 
 
* 호랑이라는 표현 대신 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부분 글은 “십이지신 호랑이”(이어령 책임편집, 생각의 나무 2009년) 중 “호랑이의 어원(진태하 집필)”을 참고했습니다. 다만 표범을 갈범 내지 칡범이라고 표현한다는 내용은 명백한 잘못이므로, 정정했습니다.
 
 
‘호랑이’라는 말은 한자어 ‘호랑虎狼’에 접미사 ‘이’를 더하여 마치 고유어처럼 변한 말입니다. 여기서 狼은 늑대 혹은 이리(Wolf)를 의미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호랑이란 虎(Tiger)와 狼(Wolf)의 복합어인 셈입니다. 
훈민정음이나 용비어천가와 고려시대 우리말을 살필 수 있는 계림유사에서도 ‘虎’를 ‘범’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정확한 우리말은 ‘범’입니다. 다만, 통상 ‘범’이라고 할 때에는 ‘표범(豹)’까지 함께 일컫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虎(Tiger)를 ‘갈범, 칡범’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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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에서도 드러나듯이 한반도에는 갈범 외에 표범도 서식하고 있었으며, 우리 조상들은 이를 잘 구분하지 않고 “범”이라 통칭했다. 
 
영화 <대호>에서는 범을 “산군”이라고 부르고 그 새끼를 “개호주”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런데 범을 “대충(?蟲), 병표(炳彪), 산군(山君)”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서 일컫는 한자어입니다. 반면에 범의 새끼는 영화에서처럼 “개호주”라고 일컬으며 “갈가지”라고도 부릅니다. 갈가지는 소의 새끼를 송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갈범의 새끼가 갈가지로 변음된 것입니다. 
 
 
* 남한의 마지막 범은 언제 어디서 최후를 맞이했나요? 
 
영화 <대호>에서는 남한의 마지막 갈범(산군)이 1925년 지리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나옵니다. 남한에서 갈범(호랑이)이 서식했다는 최후의 확실한 증거는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잡힌 갈범의 사진입니다(매일신보 1924. 2. 1. 자, 사진 게재). 영화 <대호>와 시기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장소는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반면에 표범은 해방 후에도 남한에서 간헐적으로 포획되었고, 1970. 3. 4. 경상남도 함양군 여항산에서 사냥꾼에 의해 잡힌 것이 최후 기록입니다(조선일보 1970. 3. 6. 자, 사진 게재). 아직도 남한에 표범이 살고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1970년 이후 45년 동안 사진, 사체 등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범을 모조리 잡아 죽였나요? 
 
영화 <대호>를 보면 일본의 고급관료 마에조노(오스기 렌 분)가 조선인 포수대를 동원해서 범, 늑대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송창양행(松昌?行) 사장 야마모토 타다사부로(山本唯三郞)가 1917년 11월 한 달 동안 전국의 유명한 포수들과 몰이꾼을 총 동원, 무려 여덟 개의 사냥대를 조직해서 전국으로 원정 사냥을 떠났던 일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인들은 임진왜란 때 침략의 선봉에 섰던 가토 키요마사(加藤?正)가 조선에서 범 사냥을 한 영웅담을 선호했는데, 이는 에도시대 말기부터 싹튼 일본 민족주의 내지 패권주의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행(套行)으로 유명했던 벼락부자 야마모토가 대놓고 가토를 본받는다면서 “조선맹호정벌군”을 조직했던 것입니다. 그 때 지은 정호군가(征虎軍歌)는 아래와 같습니다. 
 
“가토 기요마사의 일이여/지금은 야마모토 정호군…/일본 남아의 담력을 보여 주자/루스벨트 그 무엇이랴/호랑이여 오라…/올해는 조선 호랑이를 모두 사냥하고/내년에는 러시아의 곰을 사냥하세”
 
최경국, 에도시대 말 대중문화 속의 호랑이 사냥, 『日本硏究』 第48號(2011).
 
 
그가 조직한 정호군(征虎軍)이 한 달 동안 전국에서 잡아들인 동물은 갈범과 표범 각 두 마리와 곰, 승냥이, 산양, 노루, 멧돼지 등이었습니다. 야마모토는 포획한 야생동물 고기로 각종 요리(함경도 호랑이의 차가운 고기, 영흥 기러기 스프, 부산 도미 양주찜, 북청 산양볶음, 고원 멧돼지 구이)를 만들어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고급호텔에서 시식회를 가졌고, 이러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정호기(征虎記)』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이 책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정호기(征虎記)』,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 이은옥 옮김, 에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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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야마모토 타다사부로(가운데)가 조선인 포수를 앞세워 사냥한 범의 기념촬영사진. 영화 “대호”에서 나오는 기념사진 촬영 장면도 이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그 외에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는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을 잡아 없앤다”라는 의미의 “해수구제(害?驅除)” 정책을 펼쳤는데, 이를 통해 한반도의 갈범(호랑이)은 거의 절멸상태에 몰리게 됩니다. 영화 <대호>에서 만덕(최민식)이 “산군이 없어지면 늑대와 도야지(멧돼지)가 활개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 갈범이 사라지자 그 대신 늑대가 크게 번성하면서 인간과 가축에게 큰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일제시대 말기인 1933년부터 1942년의 10년 동안 갈범(호랑이)은 8마리만 잡힌 반면, 늑대는 무려 1,141마리가 잡히고, 늑대에 의한 인명피해도 사망 125명, 부상 153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인명과 가축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착호군(捉虎軍)이라는 특별부대까지 설치하여 범을 잡아들였고, 해방 이후에도 범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포획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분위기는 계속 이어졌으므로, 남한에서 범이 멸종된 모든 책임을 일본인들에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표범은 해방 이후에도 남한에서 명맥을 유지했으나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인하여 결국 1960년대에 사실상 절멸을 맞게 됩니다. 
 
김동진, 『조선전기 포호(捕虎)정책 연구』, 도서출판선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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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경남 합천 가야산 일대에서 잡힌 표범. 표범은 갈범(호랑이)과 달리 해방 이후에도 남한에서 명맥을 유지했지만,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인해 결국 절멸되었다. 
 
 
 
 
* 북한에는 아직도 한국범이 살고 있나요?
 
북한에서는 해방 이후에도 갈범(북한에서는 ‘조선범’으로 호칭)이 간헐적으로 포획되었고, 마지막 포획기록은 1987. 12. 24. 자강도 화평군 양계리 오가산에서 포획된 수컷범입니다. 이 범은 북한 김일성대학교에서 박제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데, 조선범(오가산 갈범)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발자국 등의 발견소식은 있지만 현재 북한의 환경상황에 비추어 갈범이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 백두산 맞은편인 중국 장백산 자연보호구에서도 오fot동안 범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에 아직도 소수나마 표범은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이에 비하여 러시아 극동지방에는 아직도 갈범(호랑이)이 480~540마리, 표범은 60~80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잡힌 범 표본에 대한 유전자 연구 결과 러시아의 우수리/아무르범이 한국범과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영화 <대호>의 초반부에 마에조노가 상납된 호피에 대하여 ‘우수리 범’이라면서 무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수리범과 조선범(한국범)은 완전히 동일한 종류에 속하니, 잘못된 내용입니다. 
 
중국에서 범이 발견되는 지역은 길림성 훈춘(琿春) 등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입니다.
 
Mu-Yeong Lee et al, Subspecific Status of the Korean Tiger Inferred by Ancient DNA Analysis, Animal Systematics, Evolution and Diversity. 2012; 28: 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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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표범의 나라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야생 호랑이(갈범) 사진. 아마 영화 대호 주인공의 실제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표범의 나라 국립공원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한과도 가깝다 
 
범처럼 행동반경이 넓은 동물들에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국경선은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 수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와 중국의 범들이 북한의 백두산과 개마고원으로 넘어와 정착하고, 이들이 낳은 새끼들이 자유롭게 통일된 한반도의 남단까지 왕래하는 미래를 꿈꾸어 봅니다. 
 
 
* 마지막으로 범과 관련된 소송이 있었나요? 
 
1921년에 함경북도에서 잡힌 “대호”의 소유권을 두고 송사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사냥꾼 안국현이 호랑이를 쏘아 맞혔는데, 총에 맞고 달아나 죽은 호랑이 사체를 나무꾼 차병인, 방병손이 수거하여 소송이 벌어졌습니다. 안국현이 변호사를 선임하여 차병인, 방병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호랑이 사체를 확인했던 주재소 순사까지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꽤 큰 소송으로 번졌는데, 결과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소송은 당시 매일신보(1921. 5. 7. 자 기사 “千圓짜리 ?虎訴訟, 맞히기는 맞혀 놓고 남의 좋은 일을 시켰다”), 조선일보(1921. 5. 9. 자 “捕?虎의 返還청구소송. 신장은 팔척이오 가액은 천원이다. 함경북도 부녕군”), 동아일보 (1921. 6. 21. 자 “判官의頭痛=『虎』裁判”)에 모두 보도되는 등 큰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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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21. 5. 7. 자 기사 “千圓짜리 ?虎訴訟, 맞히기는 맞혀 놓고 남의 좋은 일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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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혁 변호사
사법시험 제41회(연수원 31기)
법무법인(유한)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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