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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성교제 금지약정의 유효성
 
 
2. 우선,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던 소녀(당시 15세)의 이성교제가 발각되었다는 이유로 기획사(매니지먼트 회사) 등이 소녀와 부모에게 합계 509만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도쿄 지방재판소는 2015년 9월 18일 이성교제금지 규약에 대한 위반을 인정해 소녀에게만 65만 엔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했다(같은 날 요미우리신문). 피고 소녀는 2013년 3월 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남자친구와 둘이서 노는 것·사진을 찍는 것은 일체 금지하며, 발각되었을 경우에는 즉각 예능활동의 중지 및 해고」 라는 이성교제 금지를 정한 규약을 받아들였고, 그 해 7월에 6명 그룹으로 데뷔했다. 이후 라이브 공연이나 캐릭터 상품 판매 등으로 220만 엔의 수익을 올렸으나, 데뷔 수개월 만에 남성 팬과 호텔에서 찍은 사진이 발각되어 그 해 10월 기획사는 일방적으로 그룹을 해산시켰다. 
 
소송의 진행 과정에서 소녀 측은 “교제하지 않는 것이 여성 아이돌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코지마 재판관은 “아이돌인 이상, 남성 팬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교제를 금지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교제 금지를 알면서도 이에 위반함으로써 그룹의 해산으로 기획사는 투자에 대한 향후 회수가 어렵게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즉 기획사가 그룹의 해산을 결정한 것이 합리적이며 해산의 책임은 소녀에게도 있다고 판단하면서, 의상과 레슨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명한 것이다(산케이신문 9월 18일 자 보도). 다만, 기획사 측의 지도·감독이 충분하지는 않았음을 인정하여 배상액은 청구한 509만 엔에서 대폭 감액되었다.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 이처럼 연예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계약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사실, 더구나 재판소마저 “소녀가 이성교제에 이른 것 자체가 불법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 판결에 대해 소녀 측 소송대리인은 “남성과의 교제가 아이돌 그룹에 대한 평판을 해쳤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고, 교제금지 규약이 유효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고, 보도를 접한 일본의 인터넷상에서도 이 판결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일본에서는 2013년에도 유명 걸그룹 AKB48의 멤버 미네기시 미나미가 연애 금지령을 깬 것을 이유로 삭발을 해서 눈물로 사죄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AKB48 연애금지 규칙은 인권 침해라는 기고를 발표한 바 있었던 이토 카즈코 변호사는 이 판결에 대해서도 “판결은 아무 전제도 없이 ‘아이돌인 이상, 교제 금지가 필요함’을 인정한 것으로, 이것은 ‘재판소가 모든 아이돌의 교제를 금지해야 할 필요성·정당성을 보증해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는 평석을 내놓았다. 
 
 
3. 그런데, 2016년 1월 18일 도쿄 지방재판소는 동일한 내용의 소송에서 위와 상반된 결론의 판결을 선고했는데, 아이돌 그룹의 일원이었던 여성(23)이 팬과의 교제를 금지한 규약에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획사가 여성과 교제 상대인 남성 등에게 약 990만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었다(같은 날 아사히신문 디지털판). 피고 여성은 19세였던 2012년 4월, 기획사와 「팬과 교제했을 경우는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라고 정한 계약을 체결하고 그룹의 일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2013년 12월경 남성 팬과 교제를 시작하여 2014년 7월에는 그룹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예정되어 있던 라이브 공연에 출연하지 않았다. 이에 기획사가 “계약 위반으로 신용이 손상되었고 손해도 입었다”라는 이유로 제소한 사안에서, 하라 카츠야 재판장은 “이성과의 교제는 행복을 추구할 자유의 하나로, 아이돌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금지는 지나치다”라며 기획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판결은 “팬들은 아이돌에게 청렴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매니지먼트 측의 입장에서 교제금지에 일정한 합리성은 있다”며 이해를 표시하는 한편, “이성과의 교제는 인생을 자신답고 풍부하게 사는 자기결정권 그 자체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것은, 아이돌이 회사에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고의로 교제사실을 공표한 경우 등에 한정된다고 판단했다.
 
금년 판결이 확인해 준 바와 같이 현행 일본법의 해석으로도 연애·교제의 금지는 헌법 제13조가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인격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사인 간의 계약이라 할지라도 민법 제90조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사건에서 소녀 측의 변호사가 공서양속 위반을 주장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4. 한편 명시적인 계약에 의한 구속은 아니지만, 우리 연예계에도 이성교제를 금지하는 관행이 공공연히 존재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소속 연예인들에게 데뷔 후 3년 동안 연애금지령을 내리고 있음을 버젓이 밝히고 있으며(2015년 가수 백예린의 인터뷰 기사 참조), YG의 경우도 무언의 연애금지령이 존재하고 있음을 가수들이 인터뷰에서 암시한 바 있다. 이러한 연애금지 사규에 대해 우리 법원도 해당 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는 취지의 판시를 하였는바, 연예기획사 소속 연습생인 원고가 같은 기획사 연습생과 연애를 한다는 이유로 피고 기획사로부터 전속계약해지 통고를 받고 같은 기획사 동료 연습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건에서, “이성교제 사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추상적이고 일방적인 지휘·감독 규정을 매개로 연예인의 이성교제를 전적으로 금지하고, 피고 회사의 일방적인 판단에 따라 연예인에게 불리한 처분을 하는 것은 자칫 연예인의 인격권, 일반적 행동자유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기획사에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했다(서울중앙지법 2014. 4. 17. 2012가합102235 등). 
 
일반적으로 연예인 전속계약의 법적 성질은 고용·도급·위임의 혼합적 성격을 지닌 비전형계약이지만, 미성년 아이돌 가수들이 기획사와 체결하는 전속계약은 그 특성상 노무종속성이 극심하여 고용계약의 성격이 매우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이돌과의 전속계약에는 상기 공서양속 외에도 근로기준법(제64조, 제67조 등) 위반의 문제도 있을 수 있으며, 18세 미만의 아이돌이 단독으로 체결한 전속계약은 계약 자체가 무효로 될 여지도 있다. 특히 불공정계약을 통한 청소년 아이돌의 장기간에 걸친 인격적 예속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에 대한 헌법적 판단은 엄격해야 하며, 불공정성의 원천 봉쇄를 위해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청소년 연예인 보호조항’(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 제8조)의 적용범위도 이 문제에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5. 지금까지 연예인의 이성교제를 금지한 사안과 관련하여, 일본과 한국의 판결례를 중심으로 법적으로 문제되는 바를 살펴 보았다. 헌법재판소가 명시적으로 “남녀 간의 이성교제는 남녀 간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17조에 의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로서 보호된다”고 판시했던 우리와 달리, 일본은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하여 최고재판소의 명시적 판단이 없는 관계로 재판부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연예인에 대한 투자금의 회수가 어려운 현실을 들어 이성교제 금지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광고계약 등에서 연예인의 스캔들로 인해 이미지가 훼손될 경우에 대비하여 손해배상 약정을 하는 이른바 ‘스캔들 금지’ 조항과 이성교제 금지를 혼동한 견해일 뿐이다. 계약의 당사자인 연예인도 비즈니스를 위한 상품이 아니라 인권을 향유하는 주체이므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으로서 교제나 연애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 자유(자기결정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그 위반을 해고나 손해배상의 사유로 삼는 경우에 있어서는, 우리 민법 제103조·104조 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가능성도 적극 검토해 볼 시점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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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중혁 변호사
변호사시험 1회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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