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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달로 간 자전거

달로 간 자전거

                                                             양진채

자전거의 은빛 륜이 햇살을 받아 빛나는 순간
벚꽃이 날려도, 어후
눈이 쌓여도, 어후
좋다
그 말이 전부였던 그

까치발처럼 펼친 손가락 끝에서
따끔거리며 물이 새어 나왔다

제가 조립하던 성안상회 스티커가 붙은 자전거
빈 소리를 내며 헛바퀴만 돌았다

얼마전
그 소리에 홀려
그는 페달도 없이 달 속으로 바퀴를 굴렸다

이른 새벽,
허공에 은비늘 물고기 한 마리 지나간다
 



그는 영화 를 좋아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ET와 도망칠 때, 한 순간 자전거가 붕 떠오르고, 둥글고 환한 달을 배경으로 지나가던 장면을 잊지 못했다. 그때부터 그는 자전거가 등장하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흥행한다는 엉뚱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 소설에도 자전거를 집어넣으면 대박날 거라고 했다. 한 번은 소설 속에 정말 자전거를 슬쩍 넣기도 했다. 
그는 소설을 쓰는 내게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나오는‘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거나,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유명한 구절을 경건하게 말하곤 했다. 술에 취해 시인은 천 년을 내다보고 걸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어지러운 시절,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복학도 하지 못한 채 자전거포 포쟁이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하던 일이었고, 어머니가 어렵게 그 뒤를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평 같은 것은 없었다. 중독될 만큼 콜라를 자주 마셨다. 그냥 갈증이 난다고 했다. 그의 손에는 시집 대신 언제나 육각렌지나 전동드라이버 등이 들려 있었다. 목장갑은 검은 기름때에 절어 있었다. 그 장갑을 벗지 않은 채 마시던 콜라가 목울대를 타고 들어가며 내던 소리를 기억한다. 그가 지친 몸으로 기울이던 소주와 닮아 있었다. 
그의 왼쪽 허리춤에는 십여 개 가까이 되는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형제들의 자잘한 집안 문제는 모두 그가 해결해야 했다. 그 열쇠로 열어야 하는 많은 문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자주 한쪽으로 기울었다. 힘든 삶이었다. 

그는 지난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봄을 맞지 못했다. 막 벙글기 전의 목련이, 벚꽃이 날리는 거리가 그로 인해 더 환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추운 겨울, 꽃 피워 낼 생각조차 못한 채 아득한 상처로 신음했다. 날숨과 들숨으로 오르내리는 배를 보면서 숨을 쉰다는 일이 생의 모든 것을 담아낸 듯 귀하게 여겨졌다. 그동안 아무 의미 없이 내쉬었던 내 호흡들을 모두 그에게 주고 싶었다.
나는 그가 떠나고 자주 먼 길을 가는 새를 떠올렸다. 시린 하늘을 가르고 홀로 날아가는 새였다. ET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론가 떠밀려만 가는 것 같았다. 고립무원이니, 절대고독이니 하는 말 앞에서 저절로 무릎이 꺾였다. 나는 살려고 하니 눈물이 나는 삶에 아직 가닿아 있지 않았다. 다만 뒷말을 잇지 못하며 삶이란…, 하고 중얼거렸다. ‘가혹하다’라는 말도 떠올린다. 

모진 생을 살아왔으면서도 우리는 또 그 생의 한 파편을 쥐고 살아간다. 다만 붙들고 살 수밖에 없는 그 파편이 가혹한 운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서 나온 것이길 비는 마음은 온 천지 가득한 꽃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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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채 시인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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