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를 돕고 있는 제 입장에서 ‘집행부 편지’라는 제목은 늘 낯이 섭니다. 글 쓰는 책임을 나누어지는 것도 돕는 일 중의 하나려니 생각하고 그저 개인적인 소회를 끄적거려 보겠습니다.
최근 변호사 세계의 실태를 보면 과도한 진영논리(陣營論理)에 몰입되어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상실해가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됩니다. ‘합리(合理)’는 ‘이성(理?)’과 통하는 의미입니다. 이성이란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한마디로 ‘따지는 힘’입니다.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바로 합리성입니다. 그런데 요즘 변호사 세계에서는 이런 합리성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대체할 의사와 능력도 없으면서 법조지망생은 물론 전 국민을 기망한 희대의 사기극은 반성 없는 진행형입니다. 그러나 로스쿨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언제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근거 없는 폄하와 동일시되어 버립니다. 폄하를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도 문제겠지만, 비판의 대상이 엄연히 다름에도 자신이 폄하 당했다고 결기를 드러내는 모습도 딱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법연수원의 서열화에서 시작하는 관료법관제의 폐해는 희망의 사다리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강력한 염원 뒤에 숨어서 “나 잡아봐라 용용”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진영논리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결속력과 전투력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변호사 세계에서 치열한 전투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얼마 전에 변호사단체장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견표명을 두고 1,000명 가까운 변호사들이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단체장은 얼마 후 전국 회원에게 사과메일을 발송하였습니다. 영혼도 내용도 없는 착문(搾文)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변호사단체 수장의 공개사과는 전례가 없다며 획기적인 일이라고도 합니다. 누군가 하릴없이 그 1,000여 명을 일일이 분석했던 모양입니다. 상당수는 모 단체 소속이고 또 상당수는 특정계층 출신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또 다른 상당수의 변호사들이 그 1,000여 명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분석불가로 마무리되었다는 후문입니다. 진영논리로는 이끌어낼 수 없었던 결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제 곧 20대 국회가 개원합니다.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법조유사직역의 해묵은 도전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또 다른 진영논리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合理)’에 바탕을 두고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도록 주권자인 국민을 섬기는 사법의 이념에 부합하는 제도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13,000 서울회 회원 모두가 한 달에 1분(分)의 힘만 모아 주셔도 8시간 기준으로 27일 치를 모을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대안을 연구하는 데에는 충분합니다. 진심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잘 되기를 원하신다면 집행부에 회원 여러분의 힘을 나누어 주십시오.
2016. 5.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 이광수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