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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김창국 변호사님을 추모하며
김창국 변호사님께서 2016년 4월 6일 새벽 4시경 타계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민변에서 회원으로서, 1993년 2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제82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하실 때 인권위원으로서, 1999년 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제40대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을 하실 때 법제위원장으로서 같이 일했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 위원장을 하실 때 행정소송 사건과 위헌소원 사건을 맡겨 주셔서 진행한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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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님은 민변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창립 3개월 후인 1988년 8월 민변에 가입하셨습니다. 1990년 정기총회에서 제1총무간사로 선임되어 3년간 민변의 내실을 다지셨습니다. 민변 회원 중에 검사 출신이 많지 않은데, 부장검사 출신으로는 유일하셨습니다. 

김 변호사님은 민변 창립 선배들과는 달리 변호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셨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에 출마해 달라는 젊은 변호사들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당시 선거운동 일선에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적극 참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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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님은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 인권과 공익 옹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한편, 변호사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변호사단체의 사회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재임 중에 당직변호사제도를 도입했고, 외국인노동자법률상담소를 개설했으며, 서초동의 변호사회관을 구입했습니다. 저는 외국인노동자법률상담소 개설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회장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장 재임 중에는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전관예우 방지, 변호사의 공익활동 의무화, 징계공공성 강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변호사법 개정을 이뤄 냈습니다.

김 변호사님께서는 법조의 틀을 넘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공동대표, 초대 국가인권위원장, 희망제작소 이사장, 친일재산조사위 위원장 등도 역임하셨습니다. 정부의 노골적인 비협조 속에서 첫 출범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모범적으로 운영하여 유엔을 비롯한 세계가 주목하는 기구로 만들었습니다. 친일재산조사위 위원장으로서 친일재산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국가에 귀속시켜 민족정기를 확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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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님께서는 항상 목소리에 자신감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 주셨습니다. 불의에 대해서는 거칠 것 없이 단호한 태도를 취하였으나, 같이 일하는 후배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인자하게 말씀하시며 다가오실 것만 같습니다.

김 변호사님은 사진에 조예가 깊어 민변 총회 등 모임에 카메라를 들고 와서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도 직접 찍으신 사진 두 장을 보내 주셨습니다. 바둑도 강1급의 실력이어서 교류회 차 일본에 갔을 때 그쪽 변호사회장과 바둑을 두신 기억도 있습니다.

“먼저 손들고 나설 일은 없겠지만, 제 역할이 필요하고 제 힘이 필요한 데가 있으면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회피하지는 않겠습니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된다면 오히려 제가 고마울 따름이지요.”

김 변호사님께서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변호사로서 새겨야 할 자세입니다. 큰 발자취를 남기고 가신 김 변호사님의 뜻과 실천을 이어가는 것은 저희의 과제입니다. 역주행하는 시대에 세상을 하직하신 것이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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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수 변호사
사법시험 제27회(연수원 1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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