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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송이야기] 변호사님, 변호사법 위반하셨습니다.
변호사들은 변호사법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이제는 세부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 오래된 사건에서 나는 상대방 변호사님의 변호사법 위반행위를 보고야 말았다. 당시 나는 신참변호사의 냄새가 여전히 풀풀 새어나오는 풋내기였고, 상대방 변호사님은 전관출신의 경력이 오랜 베테랑이셨다. 

사건은 어느 지방도시에서 벌어졌다. 그 도시에는 구도심 재개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고 홍길동(가칭)은 재개발 예정지역에 조그마한 집을 갖고 있었다. 홍길동 형제는 그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주변에 부는 재개발 바람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재개발 시행사는 다른 주택 소유자들의 집을 하나씩 하나씩 사들이면서 이제는 홍길동의 집만 남겨 둔 상태였다. 홍길동은 재개발 시행사에 집을 팔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수십 년 살아온 내 집에 계속 살고 싶으니, 자기 집이 있는 곳만 빼고 아파트를 짓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시행사는 안달이 났다. 홍길동의 집을 제외하고 개발 계획을 세워 보았으나, 그건 안 될 말이었다. 홍길동의 집이 위치한 곳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했다. 홍길동에게 앞집의 두 배, 옆집의 세 배를 주겠다고 했으나, 홍길동은 독설을 퍼부으면서 내 집 건드리지 말라고 거절했다. 결국 시행사는 주변 시세의 몇 배를 넘는 대금을 주고서 홍길동의 집을 샀다. 홍길동으로부터 소유권을 완전히 이전받자 시행사는 소송을 제기했다. 궁박 상태에서 홍길동에게 대금을 지급했으니 무효라면서... 그리고 홍길동이 거래하는 은행의 계좌를 모조리 가압류했다. 물론 그 계좌들 중 하나에는 시행사가 지급한 수십억 원이 들어있었다. 

홍길동은 어느 날 은행을 방문했다가 계좌들이 가압류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좌들은 시행사가 열거한 대로 전부 다 가압류되어 있었다. 단 하나의 신탁계좌만 제외하고서. 아뿔싸, 시행사는 홍길동의 신탁계좌가 있다는 것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홍길동은 그 신탁계좌 하나에 시행사가 지급한 수십억 원을 전부 넣어 두었다. 

내가 맡은 소송은 재밌게도 홍길동과 홍길동의 돈을 보관하고 있던 은행과의 그것이었다. 홍길동은 양도소득세를 내기 위해 은행에 출금요청을 여러 번 해도 은행 직원이 ‘압류되었다’고 얘기하며 자신의 돈을 내주지 않는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은행 담당자의 얘기는 달랐다. 홍길동은 영업점에 찾아와서 ‘압류가 풀렸냐’고만 물어보았을 뿐, 가압류되지 않은 신탁계좌에서 출금할 의사를 보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증거는 없었다.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CCTV 필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은행 때문에 양도소득세를 제때 납부하지 못했다며 억울하다는 홍길동의 주장이 담긴 진술서만 계속 법원에 접수되었다. 

1심 재판부는 홍길동의 손을 들어 주면서 은행은 1심에서 패소하였다. 은행은 항소하였고, 나는 2심과 3심에서 은행을 대리하였다. 

2심이 진행되면서 은행 담당자의 수심이 늘어가고 있는 중에, 뜻밖의 통지서를 받았다. 이 사건에서 은행에 대한 채권자인 홍길동은 자신의 소송대리인과 채권양도계약을 체결하였고, 이 사건에서 받을 수 있는 은행에 대한 손해배상금채권을 자신의 대리인에게 성공보수로 양도한다는 채권양도통지였다. 

무언가 이상했다. 아무리 내가 경력이 짧은 변호사라도 ‘촉’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무슨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은행 법무담당자를 급하게 만류시켜 놓은 채, 대표변호사님께 의견을 구했다. “이건 변호사법 위반이야. 변호사는 계쟁물을 양도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분은 경력이 어떻게 되시길래, 이런 실수를 하셨지?”

변호사법 제32조에는 “변호사는 계쟁권리를 양수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같은 법 제112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그 다음 기일부터 상대방 변호사님은 더 이상 대리인이 아닌 ‘본인’이 되었다. 계쟁물을 양수하였으니 본인이 되었고, 재판부도 그렇게 호칭하였다. 본인의 변호사법 위반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 상대방 변호사님은 법정에서 무척이나 당황해하셨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변호사협회에 상대방 변호사님을 고발할 수도 있었으나,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실수한 것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치르셨고 그만큼의 마음 고생을 하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나는 그 분의 성함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 또한 이 사건으로 크게 느낀 것이 있다. 순간적인 실수였겠지만, 과연 변호사들은 변호사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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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변호사 
사법시험 제49회(연수원 39기) 
법무법인 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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